차가운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퀴퀴한 먼지와 녹슨 철제 빔들이 뿜어내는 혼합된 악취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강하는 손전등 불빛을 최대한 낮춰 바닥을 더듬었다. 발밑의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밟힐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젠장, 여기가 진짜 버려진 곳 맞아?”
뒤따르던 유진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미약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유진의 손에 들린 구식 스캐너가 불규칙하게 깜빡거렸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했지. 하지만 제국 놈들은 중요한 건 절대 그냥 안 내버려 둬. ‘버려짐’이라는 건 그들의 가장 큰 위장술이야.”
강하의 말에 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르던 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움직임이 조용하고 신중했다. 그의 어깨에는 오래된 자동소총이 메어져 있었고, 손에는 이미 칼날이 뽑힌 단검이 들려 있었다.
이곳은 한때 제국의 에너지 연구 시설이었던 ‘구역 7’의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붕괴 이후 모든 지도에서 지워진 곳이었지만, 오래전 제국에서 탈영한 한 기술자의 증언으로 이곳에 ‘핵심(코어)’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핵심’이 무엇이든, 제국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것이라면 평민들의 반란에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강하는 손짓으로 멈춰 서게 했다. 희미한 불빛이 닿는 저편, 거대한 강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옅은 푸른빛이 주위를 으스스하게 밝혔다.
“저 안이야. 스캐너로 확인해 봐, 유진.”
유진이 스캐너를 강철 문에 바싹 가져다 댔다. 스캐너의 액정 화면에 복잡한 회로도와 함께 희미한 에너지 파형이 나타났다.
“미쳤어. 아직 가동 중이야. 내부 전력이 살아있어.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려진 시설치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비는?”
택이 낮게 물었다.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원 감지는 안 돼. 그런데… 뭔가 이상해. 움직임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깨끗해. 뭔가 보호막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였다.
지잉- 하는 낮은 기계음이 발아래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푸른빛이 새어 나오던 강철 문이 서서히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들켰어!”
강하가 외침과 동시에 모두의 몸이 벽 뒤로 바싹 붙었다. 낡은 콘크리트 벽은 차갑고 거칠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길고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옆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붕괴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복도 중앙에 서 있는 그림자.
“오랜만이군, 강하.”
나지막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림자는 천천히 빛 속으로 걸어 나왔다.
제국 특무대의 검은 제복. 어깨에는 금빛 독수리 문양이 선명했다. 얼굴은 차갑고 무감각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응시하는 사냥꾼의 그것과 같았다.
제국 특무대, ‘검은 매’의 대장, 칼릭스였다.
“네놈이 여길 지키고 있었을 줄이야.”
강하의 목소리에도 싸늘함이 서렸다. 칼릭스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네놈이 이 개미굴 같은 곳에 기어들어올 줄 알았다. 감히 ‘핵심’을 탐낼 줄이야. 네놈들이 그걸 만지는 순간, 이 제국의 심장을 건드리는 꼴이 될 텐데 말이지.”
“그 심장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다. 더 이상 이 땅을 짓밟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하! 허튼소리. 네놈들의 헛된 반란은 여기서 끝이다. 이 구역 7의 심연 속에서.”
칼릭스는 손짓 한 번으로 양옆에 서 있던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특무대원들은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그들의 총구에서 섬뜩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에테르 충전탄’이었다. 한 발만 맞아도 생명력을 빨아먹는다는 악명 높은 무기.
“유진, 택! 목표는 ‘핵심’이다! 저 녀석들은 내가 맡는다!”
강하는 외침과 동시에 은닉하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이 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택은 이미 몸을 날려 가장 가까운 특무대원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가 맹수처럼 돌진하자, 특무대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목에 단검이 꽂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특무대원은 쓰러졌다.
“강하! 뒤다!”
유진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강하의 등 뒤에서 에테르 충전탄이 발사됐다. 쉭-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푸른 탄환이 강하의 어깨를 스쳤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강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사이 유진은 재빨리 복도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구식 스캐너가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복도에 있는 기계들을 향해 전자기 펄스를 방출했다. 지직-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불꽃을 튀겼다.
“흥미롭군. 저 구식 장비로 제국의 기밀 시스템에 손상을 입히다니.”
칼릭스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눈빛만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특무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가 강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칼릭스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복도 안쪽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어! 깊숙한 곳에 반응이 와! 움직이는 중이야!”
‘핵심’이 움직인다? 강하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그것을 파고들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적들을 처리해야 했다.
강하의 칼날이 특무대원의 목덜미를 베었다. 피가 뿜어져 나오기도 전에, 다음 적의 방패에 칼날이 부딪혔다. 챙-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렸다. 특무대원들은 강하의 공격을 예측하고 능숙하게 방어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네놈의 반란은 늘 그렇듯 헛된 저항에 불과하다.”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총이 없었다. 대신, 그의 몸 주변에서 희미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진동 능력자’… 칼릭스는 제국이 자랑하는 가장 강력한 특수 능력자 중 하나였다. 그의 능력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뒤로 물러서라, 택!”
강하가 소리쳤다. 택은 이미 3명의 특무대원을 쓰러뜨린 후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가 튀어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택이 강하의 옆으로 달려오자마자, 칼릭스의 능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웅-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천장의 낡은 구조물들이 삐걱거렸고, 먼지와 잔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강하와 택은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진동은 마치 거대한 망치로 땅을 두드리는 것처럼 격렬하게 이어졌다.
“핵심이… 움직임을 멈췄어! 칼릭스 저 자식 때문에!”
복도 깊숙한 곳에서 유진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하는 진동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칼릭스를 노려봤다. 칼릭스는 그 어떤 진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완벽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마치 진동 그 자체가 그의 일부인 것처럼.
“네놈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제국은 영원하며, 너희 같은 잡것들의 시체 위에서 더욱 견고해질 테니.”
칼릭스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진동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이대로라면 시설 자체가 붕괴될 터였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강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 개미 같은 반란이, 고작 여기서 끝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광기 어린 결의가 그의 눈빛 속에서 빛났다.
“택! 유진! 들려? 계획을 변경한다! 저 자식은 내가 붙잡을 테니, 너희는 ‘핵심’을 가지고 탈출해라!”
“무슨 소리야, 강하! 혼자서는 무리야!”
택의 목소리가 진동 속에서도 찢어질 듯 울렸다.
“명령이다! 유진! ‘핵심’은 우리가 가진 마지막 희망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져와라! 살아서 돌아가서, 이 제국을 무너뜨려야 해!”
강하의 외침이 진동을 뚫고 모두의 귓가에 박혔다.
그는 다시 칼날을 고쳐 쥐었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칼릭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그의 발걸음은 불안정했지만,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한 줄기 희망을 향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칼릭스는 그런 강하를 비웃듯이 바라봤다.
마치 죽음으로 돌진하는 벌레를 보듯이.
“멍청한 짓. 네놈의 죽음이 동료들의 탈출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으냐?”
“적어도 너 같은 놈의 발목은 잡을 수 있겠지!”
강하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진동으로 흔들리는 공간 속에서, 그의 칼날이 번뜩였다.
그것은 단순한 칼날이 아니었다.
수많은 평민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 담긴 칼날이었다.
그리고, 그 칼날은 칼릭스를 향해 거침없이 떨어졌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와 함께, 둘의 격렬한 충돌이 시작되었다.
복도 깊숙한 곳에서 유진의 스캐너가 다시 격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핵심’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 ‘핵심’을 강제로 이동시키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제국이었을까, 아니면 이 구역 7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존재였을까.
어둠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