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칼데라 행성에는 언제나 짙은 흙먼지 냄새와 타는 듯한 쇳내음이 섞여 있었다.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드넓은 황무지 위로 제국 감시선의 날카로운 탐조등만이 어둠을 가르고 지나갔다. 거대한 광산 설비들이 뿜어내는 기계음은 행성의 맥박처럼 끊임없이 울렸고, 그 소음 아래로 수많은 이름 없는 삶들이 소리 없이 닳아 없어졌다.
세린은 낡은 환풍구 통로를 기어 올라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뺨에는 땀과 먼지가 뒤섞여 얼룩져 있었고, 손바닥은 거친 철근에 쓸려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불꽃처럼 강렬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저 아래 광산 지층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한 폭발음이 그녀의 심장을 흔들었다.
“젠장, 또 저들이었나.”
이는 제국 집행군이 광산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행하는 ‘숙청’의 신호였다. 자원 쿼터를 채우지 못했거나, 반항의 기미를 보인 자들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끌려가 ‘처리’되는 소리. 그 소리는 세린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마침내 통로의 끝, 좁은 비상구 해치를 열고 그녀는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폐쇄된 정제소의 거대한 잔해들이었다. 이곳은 한때 제국의 황금알을 낳던 곳이었지만, 새로운 광맥이 발견된 후 버려져 이제는 ‘황야의 메아리’라 불리는 반군들의 비밀 거점이 되어 있었다.
“왔어, 세린?”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이였다. 그는 낡은 통신 장비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밤샘 작업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늦었어. 아래층에서 소란이 있었던 모양인데.”
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숙청의 밤이 시작됐어. 서른 명 정도가 끌려갔다고 들었어. 광산 책임자가 최근 쿼터 미달을 빌미로 빌미로 제국에 잘 보인 거지.”
카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망할 제국 놈들! 우리의 피와 땀을 전부 빨아먹고도 모자라 이젠 생명까지 농락하는군!”
그때,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인물, 키 큰 젊은 여인 리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로 세린을 응시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야. 오늘 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해.”
셋은 낡은 철제 테이블 주위에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칼데라 행성의 허술한 지도와 제국 시설의 배치도가 펼쳐져 있었다.
“현재 상황은 최악이야.” 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국은 최근 광물 운송선을 두 배로 늘렸고, 행성 방어선도 강화했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식량 배급은 반으로 줄었어. 이대로 가다간 반란은커녕 굶어 죽을 판이야.”
카이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지난번에 확보한 제국 보안망 정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에 고위 사령관 발레스 제독이 시찰을 온다고 했지?”
세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발레스 제독. 칼데라 행성의 모든 억압과 고통의 상징. 그의 이름만 들어도 그녀의 내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그는 제국의 심장부에 직접 보고하는 인물이야. 만약 그를 제거하거나, 최소한 망신이라도 줄 수 있다면…….” 리나는 말을 흐렸다. 제국 사령관을 상대로 하는 작전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미친 짓이야.” 카이가 잘라 말했다. “그는 최소한 스텔스 구축함 세 척에 둘러싸여 움직일 거야. 게다가 그가 머무는 제독 관저는 행성 방어막의 핵심 지역에 있어. 우리 몇 명이 그걸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
세린은 지도를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특정 지점을 짚었다. “관저를 직접 노리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관저로 향하는 보급선을 노린다면?”
카이와 리나가 동시에 세린을 바라봤다.
“보급선?” 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도 중무장한 호위선에 둘러싸여 있을 텐데.”
“아니.” 세린이 고개를 저었다. “발레스 제독은 항상 과시욕이 강했어. 아마도 그는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관저로 들어오는 식량과 개인 물품들을 가장 눈에 띄는 중앙 운송로를 통해 보낼 거야. 그리고, 그 보급선은 아마도 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비무장 수송선일 가능성이 높지.”
리나의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았다. “무슨 뜻이야?”
“비무장 수송선이라면, 호위함들도 조금은 방심할 거야.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최고급 진미들이 실려있을 테지. 그걸 탈취하는 거야.” 세린의 목소리에 확신이 깃들었다.
카이가 탁자를 내리쳤다. “미쳤어! 그걸 탈취하면 제국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장 대대적인 수색과 보복이 들어올 거라고!”
“맞아. 하지만, 역으로 이용할 수 있어.” 세린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단순한 도적이 아니야. 우리는 ‘황야의 메아리’. 우리는 제국에 맞서는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이다. 만약 우리가 발레스 제독의 최고급 식량과 물품들을 빼앗아, 굶주리는 광산 노예들에게 나눠준다면?”
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국은 폭군이고, 우리는 정의의 반군이라는 메시지를 온 칼데라에 퍼뜨릴 수 있다는 거군.”
“그래.” 세린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건 단순한 보급선 습격이 아니야. 이건 제국에 대한 우리의 선전포고이자, 칼데라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잃을 것도 없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데, 뭘 망설여?”
카이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눈빛 속에서 갈등과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결의로 바뀌었다. “좋아. 계획은 세린 네가 짜. 내가 함선 조종을 맡을게. 리나, 넌 병력 배치와 정보 수집을 담당해 줘.”
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발레스 제독은 내일 정오에 도착한다. 보급선은 대략 두 시간 뒤에 관저에 도착할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해.”
***
다음 날 정오, 칼데라 행성 대기권을 가르며 발레스 제독의 스텔스 구축함 세 척이 웅장하게 나타났다. 그 위용은 행성 전체를 압도하는 듯했다. 광산 깊숙한 곳에서 일하던 노예들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들의 눈에는 희망 대신 절망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절망의 그림자 아래, ‘황야의 메아리’는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세린은 낡은 고물 수송선을 조종하는 카이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수송선, ‘메아리 1호’는 마치 날벌레처럼 제국 감시망의 틈새를 비집고 은밀하게 이동했다. 리나는 다른 소규모 분대들과 함께 요격 지점 근처에 매복해 있었다.
“카이, 제국 보급선 경로 확인됐어?” 세린이 물었다.
“거의 다 왔어. 빌어먹을 제독 놈, 과시욕 하나는 알아줘야 해. 정말 중앙 운송로를 고스란히 쓰고 있군.” 카이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잠시 후, 전방 홀로스크린에 거대한 제국 수송선 한 척이 나타났다. 무장은 거의 없었지만, 그 뒤로는 중무장한 제국 호위함 두 척이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호위함들이 너무 가까워.” 세린이 읊조렸다. “정면으로는 힘들겠어.”
“내가 주의를 끌게.” 카이가 말했다. “네가 그 틈을 타서 수송선에 잠입해. 목표는 화물칸이야.”
“혼자 갈 거야?” 세린이 놀란 듯 물었다.
“아니, 우리 둘 다 가는 게 더 위험해. 여긴 내가 가장 잘 아는 고물선이야. 이 낡은 고철 덩어리로 저놈들의 눈을 잠시라도 속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카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건 나의 고향이야. 내가 지켜야 할 땅이라고.”
세린은 카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살아 돌아와야 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어.”
“걱정 마, 세린. 난 이 고물선만큼이나 끈질기니까.”
카이는 ‘메아리 1호’를 조종하여 제국 호위함들의 시야에 노골적으로 들어섰다. 낡은 엔진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오며, 마치 고장 난 함선처럼 지그재그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미확인 비행체 발견! 접근 중!” 제국 호위함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젠장, 너무 낡아서 신호도 불안정하군! 저거 뭐야?”
카이는 일부러 전술적인 실수를 하는 척하며 호위함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이 ‘메아리 1호’에 집중하는 사이, 세린은 미리 준비한 소형 탈출 포드를 타고 몰래 제국 수송선으로 향했다.
탈출 포드가 수송선의 하부 도킹 해치에 찰싹 달라붙었다.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세린은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부는 예상대로 조용했다. 고급 식자재와 예술품, 그리고 발레스 제독의 개인 물품들이 질서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제독 놈, 사치 하나는 끝내주는군.” 세린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손은 망설임 없이 가장 큰 화물 컨테이너를 향했다. 미리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여기에 가장 귀한 것들이 실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부 통신에서 격렬한 교전 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저 고물선이 미끼였어! 반란군이다! 당장 수송선 내부를 봉쇄하고 침입자를 찾아라!”
세린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준비해 온 소형 폭탄을 컨테이너 잠금장치에 부착했다. 폭탄이 터지면서 굳건하던 잠금장치가 산산조각 났다. 컨테이너 안에는 예상대로, 수많은 보석과 고대 유물, 그리고 최고급 술과 식량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는 칼데라에서 강탈당한 희귀 광물로 만든 제국의 상징물도 보였다.
“찾았다.” 세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미리 장착해 둔 전송 장치를 활성화했다. 이는 ‘황야의 메아리’가 어렵게 확보한 저급 전송 기술이었다. 화물칸에 미리 숨겨둔 소형 전송기에 에너지가 집중되자, 컨테이너 안의 물품들이 하나둘씩 빛으로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리나와 다른 동료들이 숨어있는 폐쇄된 광산 지구로 전송되는 과정이었다.
“침입자 확인! 중앙 화물칸!”
제국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화물칸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세린은 전송 작업이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총을 들었다.
“늦었어, 제국 놈들.”
세린은 병사들과 교전하며 재빠르게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의 움직임은 광산에서 단련된 민첩함과 전투 기술로 가득했다. 몇 명의 병사를 쓰러뜨린 후, 그녀는 미리 열어둔 도킹 해치를 통해 다시 우주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밖에서는 ‘메아리 1호’가 여전히 제국 호위함들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카이는 능숙하게 함선을 조종하며, 압도적인 화력을 피하고 있었다. 그의 조종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세린! 잡았어?!” 카이가 소리쳤다.
“물론이지!” 세린은 재빨리 비상 수신호를 보냈다.
카이는 그 신호를 확인하고는 갑자기 ‘메아리 1호’를 전속력으로 회전시키며 제국 호위함 한 척의 약점을 노려 돌진했다. 자살 공격처럼 보이는 움직임에 제국 호위함은 순간 당황했다.
“저 고철 덩어리가 미쳤나!”
하지만 그것은 카이의 절묘한 전술이었다. 그는 호위함의 포탑 사각지대로 파고들어, 미리 준비해 둔 EMP 폭탄을 투하했다. 거대한 섬광과 함께 호위함의 엔진이 먹통이 되었다.
“젠장! 엔진 다운! 전력 불안정!”
그 틈을 타 카이는 ‘메아리 1호’의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내 세린을 태우고는 초공간 도약 버튼을 눌렀다. 희미한 푸른 빛과 함께, ‘메아리 1호’는 우주 저편으로 사라졌다.
제독 수송선 내부에서는 발레스 제독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진미가 사라졌다고? 감히 누가 내 물건에 손을 대! 당장 저 반란군 잔당들을 씨를 말려버려라! 칼데라 행성 전체를 뒤져서라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폐쇄된 광산 지구. 리나와 다른 반군 동료들은 전송되어 온 제독의 최고급 물품들을 보며 경악과 환호를 터뜨렸다. 특히 발레스 제독이 아끼던 개인용 은수저 세트까지 전송되어 왔을 때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해냈어! 세린이 해냈어!”
곧이어 초공간 도약을 마치고 나타난 ‘메아리 1호’에서 세린과 카이가 내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지만, 눈빛은 승리의 빛으로 반짝였다.
“이게 다 제독 놈의 개인 물품이라고? 우리가 이걸 훔쳤다고?!” 한 반군 대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세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이걸 어떻게 할지는 너희들이 결정해. 우리가 먹든, 팔든, 아니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위에 모여든 광산 노예들과 반군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희망과 흥분이 가득했다.
“우리가 이걸 훔친 이유는, 우리가 굶주려서가 아니야. 저 놈들에게도 보란 듯이 보여주기 위함이지. 평민들의 반란이 시작됐다는 것을.”
세린은 제독의 최고급 와인 한 병을 집어 들고는 땅에 내던졌다. 병은 산산조각 나며 붉은 액체를 쏟아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이들이지만, 우리에겐 잃을 것도 없어. 저 거대한 제국에 맞서 우리의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폐쇄된 광산 지구를 넘어, 칼데라 행성 전체에 메아리치는 거대한 외침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