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심장부를 짓누르듯 솟아오른 강철 첨탑, 그 아래 펼쳐진 제1 격납고는 고요했다. 거대한 기동병기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조명 아래 잠들어 있었다. 육중한 강철의 비늘을 자랑하는 ‘기간트’부터 날렵한 ‘팬텀’까지, 인류의 수호자들이 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는 한 줌의 비명으로 산산조각 났다.
경고음이 격납고의 돔형 천장을 가득 메우고, 비상등의 붉은 섬광이 기동병기들의 표면을 훑었다. 수십 명의 보안 요원과 기술자들이 혼란에 빠진 채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격납고 중앙,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검은 그림자. 아직 정식 명칭조차 부여받지 못한 최신형 프로토타입 기동병기, 코드네임 ‘펜리르’였다.
박 준영 대위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의 굵은 팔뚝에서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그는 보안 통제실 유리벽 너머로 펜리르의 조종석을 노려보았다. 투명한 강화 유리 안에는 개발 책임자, 닥터 강이 싸늘한 주검으로 앉아 있었다. 헬멧은 벗겨져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박 대위가 옆에 선 보안 팀장에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보안 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 대위님.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출입구는 전원이 끊긴 상태에서도 완벽하게 봉쇄되었고, 격납고 전체의 생체 신호 감지 시스템도 닥터 강 외의 어떤 이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조종석은…… 내부에서 자가 잠금 시스템이 작동했습니다.”
박 대위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내부에서? 그럼 닥터 강이 스스로 조종석을 잠그고 죽었다는 건가?”
“기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보안 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조종석은 생체 인식 시스템으로만 개방되며, 외부에서는 최고 등급의 마스터 키를 통해서만 강제로 열 수 있습니다. 닥터 강이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었고, 그 외에는 단 두 명만이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 있는 저와 대위님뿐입니다.”
강화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조종석 내부에는 어떤 전투 흔적도, 외부 공격의 징후도 없었다. 닥터 강은 그저 조용히, 마치 잠든 것처럼 앉아 있었다. 단지 그의 얼굴에 새겨진 고통만이, 평범한 죽음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 대위는 깊은 한숨과 함께 낡은 홀로그램 패드를 열었다. 화면에는 심드렁한 표정의 사내가 담배 연기처럼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며칠 밤을 새운 듯한 다크서클, 그리고 그 아래 빛나는 예리한 눈동자. 그의 이름은 이안. 사람들은 그를 ‘회로의 명탐정’ 혹은 ‘고철 탐정’이라 불렀다.
“이안 씨, 또 당신입니다.” 박 대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홀로그램 속 이안은 하품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박 대위님 목소리가 이렇게 가라앉아 있을 땐 영 좋은 소식이 아니던데. 이번엔 또 무슨 고철 덩어리가 문제를 일으켰습니까?”
“고철 덩어리라뇨? 인류 최후의 보루를! ……아니, 됐습니다. 사건입니다. 살인 사건.”
이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하품기가 사라지고, 눈빛에 미세한 긴장감이 돌았다. “밀실입니까?”
“완벽한 밀실입니다.” 박 대위는 말을 이었다. “제1 격납고, 프로토타입 펜리르 조종석 내부에서 닥터 강이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외부 침입 없음, 내부 잠금, 외부 강제 개방 흔적 없음. 게다가 사망 원인도 불분명합니다.”
“흥미롭군요.” 이안은 짧게 대답했다. “몇 시에 데리러 오실 겁니까?”
“이미 출발했습니다. 3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빨리 좀 오지. 이런 사건엔 뜨거운 커피가 필수인데 말이죠.”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홀로그램을 툭 끊어버렸다.
***
30분 후, 격납고 입구에 낡은 수송선 한 대가 착륙했다. 낡고 긁힌 외관과는 달리, 내부의 충격 흡수 장치는 최상급이었다. 박 대위는 수송선에서 내리는 이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안은 흐트러진 코트 차림에, 한 손에는 왠지 모르게 비싸 보이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늦었군요.” 박 대위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길이 좀 막혀서.”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격납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눈이 거대한 기동병기들을 한 번 훑는가 싶더니, 곧장 펜리르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어디가 ‘완벽한 밀실’이라는 겁니까?” 이안은 펜리르를 올려다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 조종석입니다.” 박 대위가 손가락으로 펜리르의 머리 부분을 가리켰다. “조종석은 이중 격벽으로 되어 있고, 외부에서는 오직 특수 생체 인식 마스터 키와 비밀 번호 조합으로만 열립니다. 닥터 강은 사망 직전, 혹은 사망 직후 조종석을 내부에서 잠근 것으로 보입니다. 조종석의 자가 잠금 시스템은 외부에서는 해제할 수 없습니다.”
“재밌네요. 그럼 닥터 강이 자살했다는 건가요?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 외부의 누군가를 막으려 했다는 건가?” 이안은 펜리르의 육중한 다리 아래를 지나 기체 중앙으로 향했다. “사망 원인은요?”
“현재로서는 불분명합니다. 외상은 전혀 없고, 독극물이나 전파 무기 흔적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사인은 아직 부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습니다.”
이안은 펜리르의 발목 부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강철의 질감이 손끝에 닿았다. “조종석에 들어가는 방법은요?”
“전용 통로가 있습니다.” 박 대위가 펜리르의 옆구리쯤에 나 있는 작은 출입구를 가리켰다. “보통은 저기로 들어가서 기체 내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하지만 닥터 강은 조종석에 앉아 있었고, 조종석 자체는 격벽으로 완전히 밀봉된 상태였습니다. 기체 내부 통로도 잠겨 있었고요.”
“좋아요. 조종석 개방 절차는?”
“마스터 키를 사용하겠습니다.” 박 대위가 자신의 홀로그램 패드를 꺼내 보안 코드를 입력했다. 펜리르의 조종석 주변에 설치된 센서들이 활성화되고, 인식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의 강화 유리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진공 상태가 풀리며, 조종석 내부의 답답한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안은 그 냄새를 한 번 맡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조종석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잠깐, 이안 씨!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박 대위가 외쳤지만, 이안은 이미 조종석 의자에 앉아 있는 닥터 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어차피 완벽한 밀실이라면서요? 지문이 좀 더 묻는다고 달라질 건 없을 텐데.” 이안은 닥터 강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 끝을 자세히 살폈다. 닥터 강의 손은 경직되어 있었지만, 손톱 밑에는 미세한 검은 부스러기가 끼어 있었다.
“어떤 보고서에도 손톱 밑 이물질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이안이 중얼거렸다.
박 대위는 이안의 행동에 당황하며 조종석 문턱에 섰다. “아직 정밀 조사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곧 법의학 팀이 도착할 겁니다.”
이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조종석 내부를 훑고 있었다. 수많은 버튼, 스크린, 복잡한 제어 장치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닥터 강이 마지막까지 평화롭게 앉아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안의 시선은 한 지점에 멈췄다. 조종석 바닥의 아주 작은 틈새. 강화 플라스틱 패널 사이의 벌어진 공간이었다. 너무나도 작아서 육안으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거.” 이안이 손가락으로 그 틈새를 가리켰다. “이 틈은 원래 이런 겁니까?”
보안 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설계도에는 저런 틈은 없습니다. 완벽하게 밀봉되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닥터 강의 손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검은 부스러기를 틈새 주변에서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보니, 아주 미세한 금속 가루였다.
“닥터 강은 죽기 직전까지 이 틈을 열려고 애쓴 것 같군요.” 이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난제를 풀어낸 과학자의 미소와도 같았다. “혹은…… 무언가를 그 안에 숨기려 했거나.”
박 대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숨기려 했다고요? 무엇을요?”
이안은 조종석 바닥 패널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둔탁한 금속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다시 닥터 강의 얼굴로 향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기이하게 경직된 손가락.
“박 대위님.” 이안이 고개를 돌려 박 대위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문제는, 누가 언제, 그리고 무엇으로 닥터 강을 죽였는지가 아니라…… 닥터 강이 죽기 직전까지 무엇을 하려 했는가, 그리고 범인은 왜 그에게 그 행동을 강요했는가, 입니다.”
이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펜리르의 거대한 동체 너머로 보이는, 침묵하는 강철 기동병기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 살인은 단순히 한 천재 과학자의 죽음이 아닙니다. 이 거대한 기동병기 시대의 심장에 박힌 칼날이죠. 그리고 그 칼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박혀 있을 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격납고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밀실은 깨졌다. 하지만 진실은 이제 막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