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화: 숲의 속삭임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에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고독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연은 굳게 닫힌 창문 너머의 밤을 응시하며 손에 들린 태블릿의 화면을 다시 읽었다. 찌릿한 오한이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번지는 느낌이었다.
**[속보] 달그림자 숲 인근, 세 번째 실종자 발생…경찰 수사 난항**
‘또…?’
벌써 세 번째였다. 한 달 사이, 모두 달그림자 숲 근처에서 젊은 여성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단서 하나 없이. 사람들은 이 도시를 오랫동안 감싸고 있던 옛 숲의 저주를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강하가 떠올랐다. 그는 유독 달그림자 숲을 신성시했고, 종종 며칠씩 그곳으로 사라지곤 했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강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그는 깊은 숲 속에 있을 때는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버리곤 했다.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강하… 설마 그 실종 사건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거겠지?’
그녀의 머릿속에 강하의 모습이 그려졌다. 짙은 눈동자, 신비로운 미소, 그리고 세상의 소음과는 동떨어진 듯한 고요한 분위기. 그는 자신을 ‘오래된 것’이라 칭했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서연은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특별하고, 세상 어떤 남자와도 다르다는 것만 어렴없이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치명적으로 끌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은 서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기에는 너무나 선명하고 날카로운 의문들이었다.
결국 서연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대로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겉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하가 가끔 일을 돕는다는 작은 고서점, ‘밤의 서재’였다. 강하는 그곳에 가면 늘 자신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그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밤의 서재는 도심의 번화가와는 동떨어진, 낡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간판조차 없는 그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종이 냄새와 알 수 없는 향초 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어둠 속에 파묻힌 서점 안은 더욱 음산했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 낡은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들 사이로 길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누구…세요?”
어둠 속에서 나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은 깜짝 놀라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서점 안쪽 깊숙한 곳, 마치 그림자의 일부처럼 녹아든 한 여인이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얼굴. 서연은 그녀가 강하에게 서점을 맡겼다는 주인아주머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윤서연이라고 합니다. 혹시 강하 씨… 한강하 씨 계신가요?”
여인은 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따뜻함 대신 묘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강하 도련님은… 글쎄요. 지금은 안 계시는데.”
도련님이라니. 강하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딘가 어색한 호칭이었다.
“혹시 어디 가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연락이 안 돼서요.”
여인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요 며칠 숲으로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 듯하던데.”
‘숲으로…’ 서연의 불안감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실종 사건이 일어난 달그림자 숲.
“혹시… 달그림자 숲 말씀이신가요?”
여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아직도 그 숲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그녀의 말투는 서연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서연이 숲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요즘 그 숲 근처에서 자꾸… 실종 사건이 일어나서요. 강하 씨도 걱정되고…”
서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서연을 응시했다. 그 시선은 마치 서연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견딜 수 없는 침묵이 서점 안에 맴돌았다.
“그 숲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여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삼켜왔죠. 알면서도 탐하는 자들에게는 특히.”
섬뜩한 말이었다. 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삼키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궁금하면… 더 깊이 파헤쳐보든가.” 여인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모든 진실은… 그 무게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죠. 특히 도련님과 얽힌 일이라면 더더욱.”
더 이상 질문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연은 쭈뼛거리며 서점을 나섰다. 하지만 몇 발자국 채 떼지 못하고 다시 멈춰 섰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자, 서점 창문 너머로 여인이 서연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마치 서연이 어떤 운명의 문턱을 넘고 있음을 지켜보는 듯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연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강하의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대신 알 수 없는 경고만을 얻은 셈이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서점 근처를 배회하는 시선을 느꼈다. 발걸음을 재촉해 골목을 벗어나려던 찰나, 낡은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급히 몸을 숨기는 듯한 움직임이 보였다.
‘누구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서연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그때, 그녀의 발밑에 무언가 걸렸다. 얇고 긴 나뭇가지였다. 달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그 나뭇가지의 끝이 마치 뾰족한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끝에, 핏자국처럼 보이는 검붉은 얼룩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순간, 싸늘한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나뭇가지에서 느껴지는 기이하고 섬뜩한 기운에 서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놓쳤다.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부터, 숲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비명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뼈를 깎는 듯한 절규처럼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서연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여기까지 발을 들였군.”
몸이 굳었다. 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검은 그림자. 그 그림자의 실루엣은 낯설었지만, 그 시선은 얼어붙을 듯이 차갑고 섬뜩했다.
“윤서연 씨… 우리는 당신이 ‘그’와 너무 깊이 얽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그림자의 손에는… 익숙한, 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강하가 늘 지니고 다니던, 오래된 펜던트였다. 하지만 펜던트는 반으로 쪼개져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연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펜던트를 쥔 그림자의 손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끝이 향하는 곳은, 방금 전 비명소리가 들려왔던, 달그림자 숲의 방향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강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리고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의 금지된 사랑을 찢어놓으려는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의 눈앞에는 오직, 핏빛 펜던트와 짙은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숲의 입구만이 아찔하게 펼쳐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