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애니메이션 대본 & 스토리보드: 틈새의 살인

## 프롤로그

**시퀀스 1: 황폐한 도시, 최후의 거점**

**[장면 1]**

**화면:** 어두운 밤, 낡은 고층 건물들이 그림자처럼 솟아 있다. 도시 전체를 뒤덮은 정적은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신음소리에 의해 깨진다. 폐허가 된 도로에는 부서진 차량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사이로 무언가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이 보인다. 한때 찬란했을 도시의 불빛은 모두 꺼져 있고, 오직 달빛만이 차갑게 대지를 비춘다.

**내레이션 (천지호, 나른하고 건조한 목소리):**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죽었다. 인간도, 희망도, 법도… 모두. 하지만 죽음 속에서도 삶은 기어코 뿌리를 내렸고, 그 삶은 다시 죽음을 낳았다. 모순적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장면 2]**

**화면:** 어둡고 습한 골목을 따라 카메라가 이동한다. 낡은 벽에는 “희망은 없다” 같은 낙서들이 보인다. 이윽고 거대한 강철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의 외벽이 나타난다. 촘촘히 박힌 철조망과 감시탑, 그리고 작은 문 하나만이 유일한 출입구임을 알린다. 문 위로는 희미한 불빛이 깜빡인다.

**사운드:** (멀리서 들리는 좀비들의 낮은 신음소리, 바람소리, 감시탑의 삐걱이는 소리)

**[장면 3]**

**화면:** 건물의 내부. 로비는 텅 비어 있고, 간이 바리케이드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희미한 비상등 불빛이 복도를 따라 이어지지만,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몇 생존자들이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서로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의 얼굴에는 피로와 불안감이 역력하다.

**사운드:** (사람들의 낮은 발소리, 웅성거림, 희미한 발전기 소리)

## 1화: 밀실의 비명

**시퀀스 2: 평화롭지 않은 아침**

**[장면 1]**

**화면:** 낡은 사무실을 개조한 듯한 작은 방. 책상은 너저분하고, 침대 대신 간이 야전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 위에는 낡고 때 묻은 트렌치코트를 걸친 **천지호**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의 얼굴은 야위었고, 눈꺼풀 아래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다. 창문 밖으로 희미한 아침 햇살이 비치지만, 방 안은 여전히 어둡다.

**사운드:** (멀리서 들리는 좀비들의 흐느낌, 간헐적인 발전기 소리, 조용한 숨소리)

**강슬기 (OFF):** (문을 두드리는 소리,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 천지호. 일어났나?

**[장장 2]**

**화면:** 문이 열리고, **강슬기**가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전직 군인답게 단정한 자세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다. 허리에는 권총과 탄창이 잘 정돈되어 있다. 그녀는 지호의 자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강슬기:** (작게 한숨 쉬며) 이 양반은… 이놈의 세상이 망했든 흥했든 자기 페이스는 절대 안 잃어버리지.
(천지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강슬기:** 지호 씨, 일어나. 문제가 생겼어.

**천지호:** (나른하게 눈을 뜬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슬기를 응시하다가 이내 초점을 맞춘다.)
무슨 문제? 식량이 또 바닥났나? 아니면… 보급로가 끊겼나?

**강슬기:** (단호하게) 살인 사건이야. 밀실 살인.

**천지호:**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다. 그의 눈빛에 순간적인 흥미가 스친다.)
호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런 사치를 부릴 줄 아는 인간이 아직 남아있었군. 누가 죽었지?

**강슬기:** 박정민. 식량 창고 관리자. 5층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시체로 발견됐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완전히 막혀 있었지.

**천지호:** (작게 읊조린다) 박정민… 탐욕스러운 쥐새끼.

**강슬기:** (지호의 야전 침대 옆에 있는 생수병을 집어 건넨다.)
빨리 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 리더님도 난리시고.

**천지호:** (생수병을 받아 한 모금 마신다. 여전히 나른한 말투)
불안. 흥미롭군. 이 세상에서 불안은 이미 일상 아니었나?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특별한’ 불안에 더 크게 동요하는군.

**[장면 3]**

**화면:** 5층 복도. 몇몇 생존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다. 복도 끝, 박정민의 사무실 문 앞에는 리더 **김영호**가 초조한 얼굴로 서 있다. 주변에는 무기를 든 경비 대원들, 그중에는 **최현우**도 보인다.

**김영호:** (현우에게) 다른 경비병들은 어디에 배치했나? 혹시 모르니 각 층에 인원을 더 늘려라! 패닉이 오면 끝장이야!
**최현우:** 알겠습니다, 리더님!

**사운드:** (사람들의 웅성거림, 불안한 발소리)

**[장면 4]**

**화면:** 천지호와 강슬기가 복도에 나타난다. 천지호는 낡은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마치 세상 모든 일에 흥미 없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걸어온다. 슬기는 그의 옆에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김영호:** (천지호를 발견하고 안도하는 표정)
천지호 씨! 드디어 오셨군요! 박정민이… 죽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이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천지호:** (말없이 사무실 문을 바라본다.)
들었습니다. ‘밀실’이라고 하더군요.

**김영호:** 네. 문은 안에서 걸쇠까지 채워져 있었고, 창문은 박정민이 직접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철판으로 완전히 막아뒀습니다. 환기구도 사람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좁고요. 이건… 외부 침입자의 소행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 한 명이라는 건데…

**천지호:** (김영호의 말을 끊고 나직하게 묻는다.)
시체는 건드리지 않았겠지.

**김영호:** (화들짝 놀라며) 아, 그럼요! 발견한 그대로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확인했고, 아무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천지호:**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열어.

**강슬기:** (김영호에게) 열쇠는 어디 있습니까?

**김영호:**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낸다.)
이게 박정민 사무실 열쇠입니다. 하지만 안에서 잠겨 있어서… 경비병들이 문을 부수려고 했는데 제가 막았습니다. 지호 씨가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천지호:** (열쇠를 받아들지 않고, 손짓으로 슬기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한다.)
슬기 씨가 열어.

**강슬기:** (열쇠를 받아들고 문에 다가선다.)
지호 씨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드물죠. 기대되는군요.

**[장면 5]**

**화면:** 강슬기가 조심스럽게 열쇠를 돌린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내부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운드:**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 사람들의 낮은 탄식)

**천지호:** (문을 열자마자 바로 들어가지 않고, 틈새로 내부를 훑어본다. 그의 눈은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스캔한다.)

**[장면 6]**

**화면:** 박정민의 사무실 내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책상, 벽에 걸린 낡은 지도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박정민의 시체. 그의 심장 부위에는 녹슨 철근 조각이 깊숙이 박혀 있다. 바닥에는 붉은 피웅덩이가 퍼져 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열쇠 하나가 쥐어져 있다.

**사운드:** (정적, 슬기의 낮은 숨소리)

**강슬기:** (숨을 들이쉰다.)
젠장… 이렇게 끔찍하게…

**천지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럽지만 망설임이 없다.)
음… 끔찍하다는 표현은 인간만의 사치지. 저들은 매일 더 끔찍하게 죽어나가지 않나.

**[장면 7]**

**화면:** 천지호가 시체 주변을 맴돈다. 그는 시체를 직접 만지지 않고, 오직 눈으로만 모든 것을 관찰한다. 그의 시선은 피웅덩이, 철근 조각, 박정민의 굳게 쥐어진 손에 있는 열쇠, 그리고 심지어 벽의 작은 흠집까지 놓치지 않는다.

**천지호:** (나지막이 읊조린다.)
철근… 익숙한 무기로군. 이 건물 자재 중 하나겠지.

**강슬기:** (주변을 살피며) 정황상 강도 살인은 아닌 것 같아요. 특별히 없어진 물건은 없는 듯하고…

**천지호:** (창문으로 다가간다. 철판으로 단단히 막혀 있는 창문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본다.)
완벽하게 막혔군. 외부 침입은 불가능해.

**천지호:** (시체 옆에 쭈그려 앉아 박정민의 손에 쥐어진 열쇠를 응시한다.)
이 열쇠는… 문 열쇠가 아니군.

**김영호:** (놀란 얼굴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지호:** (열쇠를 건드리지 않고, 눈으로만 확인한다.)
문 열쇠는 슬기 씨가 가지고 들어왔지. 이 열쇠는 이 사무실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의 열쇠일 거야. 박정민이 죽기 직전,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려 했거나, 혹은… 범인이 의도적으로 여기에 두었거나.

**최현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범인이 누군지 알 수만 있다면… 당장 끌어내서…! 박정민 그 인간 쓰레기가 죽었다는 건 솔직히 속 시원하지만… 우리 내부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건 너무 불안합니다!

**천지호:** (현우를 힐끗 본다.)
불안… 좋은 감정이군. 범인에게는 좋은 무기가 되고.

**천지호:** (시선을 천천히 방 전체로 옮긴다. 특히 천장 모서리와 벽의 환기구 쪽을 유심히 살핀다. 그의 눈이 무언가에 꽂힌다.)
저 환기구… 옆에 긁힌 자국이 보이는군. 꽤 깊고 날카로운 도구로 긁은 자국이야.

**강슬기:** (다가와 환기구를 확인한다.)
그러게요. 환기구는 좁아서 사람이 드나들 순 없을 텐데…

**천지호:** (작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 사람이 드나들 필요는 없지. 무언가를 *통과*시키기엔 충분해. 그리고… (코를 킁킁거린다.) 아주 희미하지만… 역한 기름 냄새가 나는군. 일반적인 윤활유 냄새는 아니야.

**[장면 8]**

**화면:** 천지호가 환기구의 긁힌 자국과 시체, 그리고 방의 구조를 번갈아 응시한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수많은 정보들을 처리하는 듯하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는 듯하다.

**천지호 (내레이션):**
밀실. 불가능한 살인. 하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장치에는 허점이 있다. 완벽한 밀실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완벽하게 보이는 밀실만이 존재할 뿐. 문제는, 그 허점을 누가 찾느냐다. 그리고… 누가 이용했느냐.

**사운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배경 음악)

## 2화: 천재의 눈, 허점을 꿰뚫다

**시퀀스 3: 용의자들의 그림자**

**[장면 1]**

**화면:** 김영호의 사무실. 천지호와 강슬기, 그리고 김영호가 마주 앉아 있다. 영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김영호:** 용의자들을 선별해봤습니다. 박정민과 가장 마찰이 잦았던 사람들입니다. 우선 최현우. 그 친구는 워낙 정의감이 넘쳐서 박정민의 횡포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수아. 우리 거점의 유일한 정비공입니다. 얼마 전 박정민이 이수아의 작업 도구를 탐내다가 크게 싸웠습니다. 박정민은 탐욕이 심했거든요.

**천지호:** (말없이 차트를 훑어본다.)
이수아… 그 정비공 말인가.

**강슬기:** 네. 그 사람 없었으면 이 건물 발전기도 진작 멈췄을 겁니다.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죠. 과묵해서 좀처럼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요.

**천지호:** (차트를 내려놓는다.)
셋 다 면담이 필요하겠군. 최현우부터 불러.

**[장면 2]**

**화면:** 최현우가 김영호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분노와 불안이 뒤섞여 있다.

**최현우:** (천지호를 향해) 제가 뭘 어떻게 한 것처럼 말씀하시려고요? 박정민 같은 쓰레기는 백번 죽어도 싸지만, 살인 같은 건 제 스타일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정면으로 부딪히는 타입이에요!

**천지호:** (현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다.)
사건 발생 시각, 자네는 어디에 있었지?

**최현우:** 5층 복도를 순찰 중이었습니다. 박정민 사무실 근처에 있었죠. 그 자식은 제가 감시하는 줄 알고 문을 더 꽁꽁 잠갔을 겁니다. 밤새 한 번도 사무실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외부인은 절대 없었습니다.

**천지호:**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의 순찰 경로, 시간, 평소 박정민과의 관계. 모두 진술한 대로인가?

**최현우:** 네! 거짓말할 이유 없습니다!

**천지호:**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알겠네.

**[장면 3]**

**화면:** 이수아가 김영호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그녀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이며, 무표정한 얼굴이다. 손에는 항상 공구 가방을 들고 다닌다.

**천지호:**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녀의 공구 가방에 시선이 멈춘다.)
이수아 씨. 박정민 씨가 사망한 시간, 어디에 있었나?

**이수아:** (차분하게) 작업실에요. 발전기 점검 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천지호:** (자세히 묻는다.)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사람이 있나?

**이수아:** (잠시 망설이다) 없습니다. 늘 혼자 일합니다. 밤에는 더더욱.

**천지호:** 박정민 씨와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수아:**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미세한 분노가 스친다.)
그는… 탐욕스러웠습니다. 제 공구들을 탐냈죠. 이 건물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발전기를 고치는 도구들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천지호:** (그녀의 눈을 응시한다.)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군.

**이수아:** (표정의 변화 없이) 그를 죽여도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건 제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이지, 부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천지호:** (이수아의 말을 듣고, 그녀의 공구 가방에 다시 시선을 고정한다.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난다.)
만드는 사람…

**[장면 4]**

**화면:** 천지호가 박정민의 사무실로 돌아온다. 슬기는 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강슬기:** 뭔가 알아냈나? 셋 중 한 명인가?

**천지호:**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다시 환기구의 긁힌 자국과 박정민의 시체를 번갈아 본다.)
이수아. 그녀에게서 났던 기름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여기서 나는군. 아주 희미하지만… 내 코는 민감해.

**강슬기:** (놀란 얼굴) 그럼 이수아가 범인이라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사무실 안에 들어가지 않았어. 현우의 증언도 있고… 그녀는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천지호:** (환기구에 손을 대어본다.)
만드는 사람… 그래. 완벽한 밀실을 ‘만든’ 사람이라면…

**천지호 (내레이션):**
이수아는 이 건물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공구를 다루는 데 능숙했고, 기계를 조작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단순한 살인으로는 그녀의 범행을 설명할 수 없다. 그녀는 분명… 무언가를 ‘만들어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기이한 밀실 트릭은…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면 5]**

**화면:** 천지호가 다시 사무실을 꼼꼼히 살핀다. 그는 시체 주변을 맴돌다가, 피웅덩이에서 벗어난 작은 물방울 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자국을 따라 벽의 한 부분을 응시한다. 그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춘다. 아주 희미하게, 벽의 페인트칠이 다른 부분보다 미세하게 더 매끄럽고 새로운 듯한 흔적을 발견한다.

**천지호:**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쓸어본다.)
여기로군.

**강슬기:** (다가와 그 부분을 본다.)
뭘 발견한 거죠? 그냥 벽인데요?

**천지호:** (피식 웃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순간, 인간은 속는 법이지. 특히… 죽음 앞에서라면 더더욱.

**사운드:** (긴장감 고조, 천지호의 날카로운 숨소리)

## 3화: 틈새의 진실

**시퀀스 4: 해체의 시간**

**[장면 1]**

**화면:** 김영호의 사무실. 천지호는 탁자 위에 건물의 설계도면을 펼쳐 놓고, 그 주변에 용의자들을 모두 모았다. 김영호, 강슬기, 최현우, 이수아.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천지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수아는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린다.

**천지호:** (침묵을 깬다.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린다.)
박정민은 ‘밀실’에서 죽었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죠. 누군가 침입해서 살인을 저지른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 사건을 ‘불가능한 살인’이라고 부릅니다.

**최현우:** (떨리는 목소리) 그럼 대체 누가…!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입니까?

**천지호:** (현우를 쳐다보지 않고, 설계도면을 가리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범인은 이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김영호:** (놀란다.)
네? 그럼 대체 어떻게 박정민을 살해했다는 겁니까?

**천지호:** (설계도면의 5층 박정민 사무실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인접한 환기 시스템을 따라 손가락을 이동시킨다.)
이 건물은 원래 사무실 건물이었고, 중앙 집중식 환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사무실로 연결되는 환기 통로는 생각보다 넓고 복잡하죠. 특히 박정민의 사무실 환기구는 건물 중앙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장면 2]**

**화면:** 천지호가 말을 이어가면서, 박정민의 사무실 내부 구조가 투시되듯 보인다. 환기구의 내부 통로가 점선으로 표시되고, 범행 장면이 재연된다.

**천지호:** 범인은 이수아 씨. 당신입니다.

**이수아:**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으려 애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작업실에 있었습니다.

**천지호:** (이수아의 공구 가방에 시선을 고정한다.)
당신은 이 건물의 모든 구조를 꿰뚫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떤 도구든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자죠. 나는 박정민의 사무실 환기구 근처 벽에서 미세한 페인트 색깔의 차이와 긁힌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작업실에서 나는 것과 동일한 기름 냄새를 맡았죠.

**천지호:** 당신은 박정민이 당신의 도구를 노리고, 결국 이 거점의 생존마저 위협할 것이라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죠.

**[장면 3]**

**화면:** 천지호의 설명에 따라 애니메이션이 재연된다.

**천지호 (내레이션):**
당신은 박정민이 늘 사무실 문을 꽁꽁 잠근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직접 들어가는 대신, ‘밀실’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환기 시스템을 이용했습니다. 박정민의 사무실 환기구 근처 벽에, 당신만이 알 수 있는 얇은 틈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특수하게 개조한 장치를 설치했죠.

**화면:** 이수아가 밤중에 박정민 사무실 환기구 근처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내부에서 뭔가를 설치하는 모습. 그녀는 능숙하게 작업한다.

**천지호 (내레이션):**
그 장치는 녹슨 철근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마치 낚싯대처럼, 길고 얇은 금속 봉에 날카로운 철근 조각을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틈새로 밀어 넣어 박정민의 사무실 중앙, 그의 의자 근처까지 도달하게 했습니다.

**화면:** 이수아가 외부의 벽 틈새에 설치한 장치를 조작한다. 길고 가는 봉 끝에 철근이 달린 모습. 그 봉이 틈새를 통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박정민은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다.

**천지호 (내레이션):**
당신은 박정민이 방심한 틈을 타, 정확하게 그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그리고 살인 직후, 재빨리 장치를 회수했죠. 당신이 만든 그 ‘낚싯대’는 다시 틈새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왔고, 당신은 그 틈새를 다시 미세하게 봉인했습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지만요.

**화면:** 철근이 박정민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박정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진다. 그의 손에 쥐어진 열쇠는 아마 그 순간 그의 의식 속에서 가장 중요했을 어떤 것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수아는 장치를 다시 회수하고, 틈새를 미세하게 봉합한다.

**천지호 (내레이션):**
박정민의 손에 쥐어진 열쇠는 당신의 완벽한 밀실 살인을 더욱 확고히 하는 장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열쇠를 보고, 박정민이 누군가에게 강제로 사무실을 잠긴 채 살해당했다고 믿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 열쇠는 박정민이 숨겨둔 개인 창고 열쇠였을 뿐. 당신은 그의 죽음을 더욱 미스터리하게 꾸미기 위해 그 열쇠를 이용한 것입니다.

**[장면 4]**

**화면:** 다시 김영호의 사무실. 이수아는 천지호의 설명을 듣는 내내 눈빛이 흔들렸고, 결국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수아:** (떨리는 목소리로) …네… 맞아요. 그는… 그는 우리 모두를 죽일 셈이었습니다. 중요한 물자를 독점하고, 모두를 굶겨 죽이려 했어요. 저는… 이 거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옥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을…

**김영호:** (충격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이수아 씨… 어떻게…!

**최현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럴 수가… 정비공님이…

**강슬기:** (씁쓸한 표정으로 이수아를 바라본다.)
결국 살인은 살인이야.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

**천지호:** (이수아에게 다가간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른하지만, 슬픔이 스쳐 지나간다.)
이 세상이 당신을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당신의 몫이었지. 당신은 거점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거점에 더 큰 불안을 심었습니다.

**이수아:**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에는 체념과 고통이 담겨 있다.)
저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들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장면 5]**

**화면:** 천지호가 이수아를 지나쳐 창문 밖을 내다본다. 창밖으로는 회색빛 도시 풍경과 멀리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희망 없는 세상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천지호 (내레이션):**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살인에는 더더욱. 하지만 그 이유가 아무리 절박하고, 아무리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연쇄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지옥 속에서 서로를 죽이며 멸망할 것이다. 밀실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마음속 밀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살인으로 인해, 우리의 거점은 더 큰 의심과 불안에 휩싸이겠지.

**사운드:** (좀비들의 낮은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지며, 비극적인 배경 음악이 흐른다.)

**[장면 6]**

**화면:** 천지호가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야전 침대에 몸을 던진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깊은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슬기는 문밖에서 말없이 그를 지켜본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천지호의 천재적인 두뇌는 다음 살인을 기다리는 듯하다.

**천지호 (내레이션):**
그리고 나는… 다음 죽음을 기다린다. 아니,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은 이 지옥에서도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가?

**사운드:** (천지호의 한숨 소리, 비극적인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장면 7]**

**화면:** 검은 화면.

**자막:** 틈새의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