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돌바닥에 흐릿한 달빛이 닿아 창백한 얼룩을 만들었다. 시아는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찾아오는 습관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얇은 잠옷 너머로 한기가 스며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차가운 것은 심장 깊숙이 박힌 불안감이었다.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명망 높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마법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 고고한 상아탑은 겉으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시아가 이 학원에 발을 들인 지 반년 만에, 그 완벽함은 위태로운 균열을 감추기 위한 거대한 가면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 처음엔 꿈이라고 생각했다. 악몽 속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심장을 긁어대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는 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는 꿈 밖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학원 도서관의 가장 오래된 서가, 혹은 폐쇄된 서쪽 별관 근처를 지날 때 더욱 선명해졌다.
“……시아? 또 밤샘 연습했어?”
복도를 걷고 있는데, 저편에서 리안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왔다. 리안은 시아의 유일한 친구이자, 학원에서 가장 낙천적인 아이였다. 그녀는 시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요즘 네 안색이 영 안 좋다? 혹시 지난번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그래? 괜찮아, 마법이라는 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나처럼 가볍게 생각하라고!”
리안은 명랑하게 웃었지만, 시아는 웃을 수 없었다. 그녀의 걱정은 성적 따위가 아니었다. 지난주, 마법 수업 중에 발생한 기이한 일 때문이었다. 정령을 소환하는 실습 시간. 모두가 순조롭게 작은 불꽃 정령이나 물방울 정령을 불러낼 때였다. 시아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은 정령이 아닌, 차가운 흙냄새와 함께 섬뜩한 형체를 만들어내려 했다. 그것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끌려 나온 듯한, 뒤틀린 그림자였다.
시아는 순간 얼어붙었고, 교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마법을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집중이 부족했군.”이라는 짧은 평을 남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아의 눈에는 교수의 눈빛에 스쳐 지나간 찰나의 불안이 선명히 박혔다.
그 이후로, 시아는 학원의 모든 것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잘 관리된 잔디밭 아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뒤편, 심지어 매일 먹는 식사의 달콤한 향기 속에서도 어딘가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리안, 혹시… 폐쇄된 서쪽 별관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음? 거긴 왜? 옛날에 무슨 사고가 있어서 폐쇄됐다고 들었는데. 그냥 오래된 건물이라 위험해서 못 가게 하는 거 아닐까?”
“사고라니? 어떤 사고?”
“글쎄…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선배들이 괜히 기웃거리지 말라고 했어. 거기 지하에 뭐… 이상한 게 있다는 소문도 있고.”
리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시아는 리안의 눈동자가 잠시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이라… 시아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울렸다.
그날 밤, 시아는 용기를 냈다.
자정 무렵, 모두가 잠든 시간. 그녀는 손전등과 비상용 마법 물약을 챙겨들고 조용히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폐쇄된 서쪽 별관이었다. 학원의 규율은 엄격했지만, 이곳의 비밀은 그 어떤 규율보다 시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별관의 문은 낡은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러나 쇠사슬 틈새로 손전등 빛을 비추자, 안쪽에서 희미하게 비릿한 금속성 냄새와 함께, 무언가 축축한 공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시아는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마법으로 쇠사슬을 부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내부는 더욱 어둡고 습했다. 먼지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까 맡았던 그 퀴퀴한 비린내가 강하게 풍겨왔다. 손전등 빛은 낡은 가구들과 거미줄로 뒤덮인 복도를 비췄다. 시아는 천천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한 긴장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복도 끝, 닳아빠진 융단으로 덮인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아래로,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시아의 귓가에 아까의 그 희미한 속삭임이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 *찾아와라…*
— *우리를… 해방시켜라…*
속삭임은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듯 혼란스러웠다. 시아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분명 누군가가 이곳에 있다. 혹은 무언가가. 그녀는 손전등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은 그녀를 집어삼킬 듯 깊어졌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끝이 없는 듯했다. 몇 분을 내려갔을까. 더 이상 학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과 고요만이 존재하는 곳에 다다랐다. 갑자기 손전등의 불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아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어둠 속에 숨겨진 거대한 강철 문. 그 문에는 붉은색으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마법의 기운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 앞에서, 수많은 사람의 형상이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피부는 창백했으며, 입술은 무언가를 갈구하듯 미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끔찍하게도 죽어 있었다.
“흐읍!”
시아는 비명을 삼켰다. 불빛이 다시 돌아왔을 때, 형상들은 사라지고 거대한 강철 문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아는 확신했다. 그녀가 본 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학원의 지하에 숨겨진, 살아있는 금기였다.
시아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곳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비밀이 아니었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마음속에는 섬뜩한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학원의 학생들은… 왜 그리도 쉽게 사라지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는가?
그녀는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들려오는 속삭임을 애써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학원의 아름다운 외관이 아닌, 지하 깊은 곳에 갇힌 끔찍한 진실의 심연이었다. 그리고 시아는 이제, 그 심연의 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갇힌 존재들의 눈을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시아는 알았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이상,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한 아르카디아의 학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어쩌면, 다음 사라질 학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차디찬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시아는 숨을 헐떡이며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등 뒤에서 거대한 강철 문이 닫히는 듯한 끔찍한 상상이 그녀의 신경을 좀먹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단지, 그 어둠 속에 갇힌 존재들이…
자신을 찾아낼까 봐 두려웠을 뿐.
동시에, 시아의 마음속에서는 강렬한 결심이 싹트고 있었다.
이 끔찍한 진실을, 반드시 파헤치고 말겠다는.
설령, 그 대가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