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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전 (天下大戰) – 제217화: 섬광 속의 그림자**

광활한 원형 경기장은 침묵 속에 거친 숨소리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붉고 검은 강철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일으킨 섬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둔탁한 충격음은 관중들의 심장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강태한의 천룡갑(天龍甲)은 붉은 용의 비늘처럼 번뜩이는 장갑판 사이로 뜨거운 증기를 뿜어냈다. 파천신권(破天神拳)의 기세가 담긴 주먹은 흡사 운룡(雲龍)이 승천하는 듯 맹렬했다. 그의 정면에는 백면귀(白面鬼)의 몽환각(夢幻脚)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날카로운 비수로 돌진하고 있었다. 몽환각은 검은 칠흑처럼 매끄러운 외장을 지녔으며, 사방에서 빛을 흡수하는 듯한 묘한 질감을 띠었다.

“하앗!”

강태한의 포효와 함께 천룡갑의 주먹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그의 내공이 응집된 권풍(拳風)은 대기를 갈랐고, 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경기장 바닥의 강화석이 미세하게 진동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백면귀는 마치 물 위의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피했다. 몽환각은 그 엄청난 속도로 권풍의 궤적을 벗어나더니, 이내 강태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강태한의 눈이 빠르게 사방을 스캔했다. 그러나 몽환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태한의 천룡갑에 내장된 고성능 센서가 미세한 열원과 공기 흐름의 변화를 감지하려 애썼지만, 몽환각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하게 숨어버렸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살기(殺氣)가 솟구쳤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몽환각의 날카로운 발차기가 천룡갑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에 강태한은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천룡갑의 장갑판이 찌그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크윽…!”

내부 조종석에 앉아 있던 강태한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왔지만, 그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백면귀의 공격은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그의 무공, 무영신보(無影神步)와 환영수(幻影手)의 기술이 융합된 듯, 공격과 동시에 다음 움직임으로 사라지는 기묘한 연계 공격이었다.

“제법이군. 이 정도로 버티다니.”

어디선가 나직한 백면귀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공간 자체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의 음성은 차갑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지만, 미묘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강태한은 주변을 응시하며 숨을 골랐다. 백면귀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대였다.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한 무림 고수들이 조종하는 강철갑들은 마치 그들의 신체의 연장선과 같았다. 내공과 기를 강철갑의 구동계와 에너지 코어에 연결하여 증폭된 힘을 발휘하는, 고도로 진화된 무공의 경지였다. 그리고 백면귀는 그 경지에서조차 독보적인 존재였다.

“강태한, 네 파천신권은 너무나도 직선적이야. 보이지 않는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

섬광처럼 백면귀의 몽환각이 강태한의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단 한 대의 강철갑이 아니었다. 좌우로, 그리고 위아래로 순식간에 세 개의 잔상이 펼쳐졌다. 마치 삼두육비(三頭六臂)의 신(神)처럼 백면귀의 몽환각이 여러 개로 분열된 듯 보였다.

*쉬이이익! 쉬쉬쉬식!*

세 개의 몽환각이 동시에 움직이며 강태한의 천룡갑을 사방에서 난타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주먹, 다른 하나는 발차기, 그리고 또 하나는 강철갑의 손날을 이용한 베기였다. 공격 하나하나에 강한 내공이 실려 천룡갑의 보호막을 맹렬하게 깎아내렸다.

“환영인가… 아니면 실제인가…!”

강태한은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적들이 진짜인지, 아니면 백면귀의 무공으로 만들어낸 정교한 환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센서조차 혼란에 빠져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백면귀의 공격은 여지없이 천룡갑의 장갑판에 상흔을 새겼다.

*크아앙!*

위기의 순간, 강태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파천신권의 가장 기본적인 초식을 되뇌었다. ‘마음을 비우고, 오직 기(氣)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의 내공이 천룡갑의 모든 동력계와 장갑판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외부 센서가 아닌, 자신의 몸과 강철갑이 하나 되어 느끼는 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지잉…*

천룡갑의 온몸에서 푸른빛이 감돌았다. 강태한은 섬광처럼 날아드는 공격들을 막아내는 대신, 단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내공이 극에 달하자, 천룡갑의 주먹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전방을 향해 휩쓸고 지나갔다.

파천신권, 그 이름처럼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흔드는 일격. 모든 허상을 파괴하고 진실만을 남기는 무공이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기의 폭풍이 백면귀의 잔상들을 휩쓸었다. *파스스스…* 세 개의 몽환각 중 두 개가 푸른 빛에 닿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것들은 환영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마지막 몽환각은 강태한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정면으로 푸른 기운을 받아내며 둔탁한 충돌음을 냈다. 그리고 그 몽환각의 몸체가 *크아아악!* 하는 굉음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찾았다!”

강태한의 눈에 확신이 서렸다. 환영 속에 숨어 있던 진짜 백면귀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놓치지 않고 천룡갑의 추진기를 최대로 가동, 맹렬한 속도로 밀려나는 몽환각을 쫓았다.

“천룡권(天龍拳)!”

강태한의 주먹에 푸른 기운이 한층 더 응집되었다. 용의 형상을 띤 권기가 몽환각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몽환각은 겨우 자세를 잡고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강태한의 기습적인 추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철컥! 콰장창!*

강렬한 일격이 몽환각의 가슴팍에 정확히 명중했다. 검은 장갑판이 일그러지며 금이 가고, 동력로에서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몽환각은 비명을 지르듯 굉음을 내며 경기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거대한 강철갑이 바닥에 부딪히며 일으킨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백면귀의 압도적인 환영술을 뚫고 반격에 성공한 강태한의 모습에 모두가 숨죽였다.

강태한은 숨을 몰아쉬며 몽환각이 쓰러진 곳을 응시했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몽환각의 파손된 가슴팍에서 섬뜩한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이어진 백면귀의 싸늘한 목소리.

“겨우… 이걸로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강태한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쓰러진 몽환각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강태한의 천룡갑 바로 뒤에서, 더욱 강렬하고 치명적인 살기가 등골을 타고 솟구쳐 올랐다.

*끼이이잉!*

천룡갑의 방어막이 비명을 질렀다. 강태한은 뒤늦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거대한 낫처럼 생긴 몽환각의 발날이 천룡갑의 동력로를 향해 맹렬하게 내리찍히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파편으로 부서진 줄 알았던 진짜 몽환각이, 허상 속에 숨겨둔 또 다른 실체인 양 나타난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이중 환영…!”

강태한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