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밤의 장막이 교정을 깊이 덮고 있었다. 별빛마저 마법 에너지의 희미한 잔광에 가려 흐릿한 날이었다. 두꺼운 마력 방벽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도서관, 그 중에서도 가장 깊고 오래된, ‘접근 금지’ 팻말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기울어져 있는 지하 서고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세 명의 침입자에 의해 조심스럽게 깨지고 있었다.
“하람아, 정말 괜찮겠어? 여기서 잡히면 단순 근신으로 안 끝날 거야.”
서유리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철함과는 달리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손에 든 마력등은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내며 겹겹이 쌓인 고문서들을 비추고 있었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오래된 종이 특유의 퀴퀴한 향이 코를 찔렀다.
“유리야, 걱정 마. 여기 교사들은 어차피 밤에는 도서관 근처에도 안 와. 어차피 마력 감지 마법진도 이젠 거의 죽어버린 곳이라고. 게다가, ‘카오스 마법서’에 대한 정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잖아!”
강하람은 들뜬 표정으로 낡은 책들을 헤집고 있었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땀으로 살짝 젖은 앞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학원의 최고 문제아 중 하나였지만, 뛰어난 재능과 기이할 정도의 행운으로 늘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카오스 마법서인지 뭔지보다, 네 녀석이 또 사고 칠까봐 더 걱정이다.”
덩치 큰 권태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두툼한 손에는 휴대용 간이 방어 마법진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전공은 마법 전사였고, 어둠 속에서도 육중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벽면을 훑었다. 이곳은 학원의 전신이었던 고대 마법 길드의 유적 위에 세워진 곳이라, 종종 이렇게 의뭉스러운 장소들이 남아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낡은 벽돌을 쓸어보니, 벽돌 틈새에서 희미한 마력의 잔류가 느껴졌다.
“여기다! 뭔가 있어.” 하람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유리가 다가와 벽을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눈이 꿰뚫어 보는 듯 섬광을 발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마력 은폐 주문이야. 그것도 아주 고위 마법사가 사용한 흔적이 역력해. 단순한 벽이 아니야.”
“고위 마법사? 그럼 더더욱 흥미진진한데? 어쩐지, 평범한 곳에서 카오스 마법서 같은 위험한 책을 숨기진 않을 테지.” 하람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벽을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 대신,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공허한 울림이 되돌아왔다.
“함부로 만지지 마! 이 마법진… 학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고대 언어야. 아니, 어쩌면 금지된 언어일지도 몰라.” 유리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그녀는 손끝으로 벽에 새겨진 알아보기 힘든 문양들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이건… 봉인 마법진이야.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뭔가를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가두다니?” 태오의 목소리에 불안이 섞였다. “대체 뭘 가두고 있었단 말이야?”
유리는 대답 대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벽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흐름을 읽으려는 듯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확히는 봉인과 소멸…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 마법진이야. 그런데… 일부가 손상되어 있어. 오랜 시간 동안 마력이 약해졌나 봐.”
“그럼 열 수 있다는 소리잖아!” 하람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무리야, 하람! 함부로 건드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봉인이 약해졌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 유리가 말렸다.
하지만 하람은 이미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얇은 은제 단검을 꺼내 벽에 새겨진 문양 중 한 점을 조심스럽게 긁어냈다. 그리고는 그 틈으로 자신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야! 너 뭐하는 짓이야!” 유리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하람의 마력이 봉인 마법진에 닿자, 벽 전체를 휘감던 은은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옅은 진동이 시작되고, 벽에 새겨진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강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었어!” 하람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마치 마법진의 봉인을 깨우는 열쇠라도 되는 듯했다.
크르르릉!
벽 전체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먼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숨어있던 거미줄과 곰팡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는 방어 마법을 발동하려 했지만,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 흐름에 그녀의 마법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콰아앙!
결국, 벽의 중앙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어둠이 입을 벌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왔다. 금속이 녹슨 듯한 비릿함과, 무언가 썩어가는 듯한 지독한 악취가 뒤섞인 냄새였다.
“콜록, 콜록…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태오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람은 연기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건… 던전이야. 그것도 평범한 던전이 아냐.”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좁고 거친 바위벽으로 이루어진 통로는 아래를 향해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듯했다. 벽에는 기이한 룬 문자들이 무작위로 새겨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마력이 잔재한 듯한 검붉은 얼룩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마력등으로 비춰보니, 바닥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처럼 보이는 흔적들이 굳어 있었다.
“이곳은… 우리가 알던 지하 서고의 구조와 완전히 달라.” 유리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학원 설립 기록에도 이런 지하 통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
“학원이 숨겨온 비밀이라고 하면 그럴듯하지 않아?” 하람은 오히려 더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마력 결정으로 만든 작은 손전등을 꺼내 깊은 어둠 속으로 비췄다. 빛이 닿는 곳마다, 벽에 새겨진 룬 문자들이 기괴하게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통로를 따라 몇 걸음 내려가자, 차가운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아까 맡았던 비릿한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저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질척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기, 뭔가 있어.” 태오가 검을 뽑아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의 눈빛은 매섭게 주위를 훑었다.
하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력등 불빛이 통로의 끝에 닿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실이 있었다. 석실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된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물질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구속 장치가 굳게 잠겨 있었다.
구속 장치는 낡고 녹슬었지만, 기이하게도 그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일종의 마법 에너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평범한 마법 에너지가 아니었다. 마치 어둠 그 자체가 응축된 듯한, 역겨운 기운이었다.
유리가 구속 장치와 제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이건… 금지된 연금술의 흔적이야. 생명체를 마법적으로 변형시키고, 그 존재의 영혼을 강제로 제압하는… 학원에서는 절대 가르쳐선 안 될 주술들….”
그녀의 시선은 제단 주위에 새겨진 복잡한 마법진에 멈췄다. “이 마법진… 생체 마력을 착취하고, 영혼을… ‘흡수’하는 용도야. 대체 뭘 위해 이런 짓을….”
그 순간, 구속 장치 안에서 섬뜩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크으으으으…!
그것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인간의 고통스러운 신음 같기도 했다. 소리가 석실 전체를 뒤흔들었고,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동시에, 구속 장치 안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더욱 격렬하게 깜빡였다.
“젠장! 대체 뭘 가둬 놓은 거야!” 태오가 검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하람의 표정은 여전히 흥분과 호기심으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전율이 스며들었다. 이 기운… 학원의 지하에서 느껴본 적 없는, 순수한 악의 기운이었다.
유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것은… 생체 마법 실험실이었어. 그것도 아주 잔혹한… 그리고 저 구속 장치 안에는… 아직, 살아있는 무언가가 갇혀 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속 장치 안에서 다시 한번 울림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마치 쇠사슬이 끊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섬뜩한 낮은 목소리가 석실 안에 울려 퍼졌다.
“…자유… 갈망….”
목소리는 찢어질 듯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깊은 절망을 담고 있었다.
“뭐… 뭐야? 방금… 누가 말했어?” 태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하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소리… 마치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던 존재가 내뱉는 첫 마디 같았다. 그는 구속 장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학원의 어떤 마법보다도 강력하고 이질적이었다.
유리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곳은… 학원의 가장 끔찍한 금기야. 이 모든 것이… 학원의 어두운 비밀과 연관되어 있어.”
그녀는 구속 장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걸… 학원 설립자들이 직접 만든 거라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구속 장치는 다시 침묵에 잠겼지만, 그 침묵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고 섬뜩했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을 고르며 다음 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하람은 직감했다. 그들이 발을 들인 이 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었다. 살아 숨 쉬는, 아니, *살아나려 하는* 거대한 재앙의 봉인터였다. 그리고 그 재앙은, 학원 자체가 숨겨온 가장 오래된 죄악의 결정체일 터였다. 그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 이 잊혀진 심연의 문은, 이제 막 열렸을 뿐이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