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마법 학원은 세상의 모든 마법사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이름이었다. 웅장한 첨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고대 마법의 기운이 교정 곳곳에 서려 있는 곳. 그러나 유진에게 이곳은 그저 화려한 껍데기 아래 숨겨진 차가운 진실을 품고 있는 거대한 미궁일 뿐이었다. 그녀의 직감은 늘 그랬듯,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유진은 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아이였다. 남들이 쉽게 익히는 기본 마법보다, 금지된 고서나 잊힌 고대 주문에 더 끌리는 이단아. 오늘도 그녀는 금서 보관소의 먼지 쌓인 구석에서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었다. ‘아르카나의 근원’, ‘시초의 희생’이라는 알 수 없는 문구들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익숙한 학원의 마법 문양과 어딘가 뒤틀린, 기분 나쁜 도상들이 섞여 나타났다. 그림 속에는 거대한 기계 장치에 연결된 듯한 인물들의 희미한 형체가 그려져 있었다.
“유진, 또 그런 걸 파고 있냐?”
나른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삐딱하게 서 있는 카인이었다. 그 또한 학원의 문제아였지만, 유진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그는 학원의 모든 비밀을 알면서도 무관심한 척하는 듯 보였다.
“카인. 이 그림들… 뭔가 익숙하지 않아? 우리 학원 문양과 비슷하면서도,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카인이 다가와 양피지를 흘긋 보더니 비웃음 같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초의 희생이라… 그거 학원 설립 때부터 내려오는 개소리잖아. 멍청한 학생들이 전설에 홀려 지하 구경 갔다가 미아가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설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이 그림 속의 장치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예사롭지 않아. 그리고, 최근 들어 밤마다 희미하게 울리는 공명음… 너는 못 느꼈어?”
유진은 며칠 밤낮으로 학원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듣는 이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무신경했지만, 그녀의 예민한 마력 감지 능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카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이내 다시 평소처럼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유진은 그 찰나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냥… 지하에 오래된 마력 중화 장치가 있을 뿐이겠지. 너무 깊이 파고들다간 네가 파묻힐 수도 있어. 이 학원이 겉보기엔 우아해도, 파고들수록 진흙탕 같은 곳이거든.”
그는 충고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카인의 마지막 말은 유진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진흙탕 같은 곳’이라니.
그날 밤, 유진은 다시 한번 지하 공명음의 근원을 추적했다. 마법 지팡이 끝에서 미약하게 빛나는 빛이 어두운 복도를 밝히고, 그녀의 마력은 마치 나침반처럼 가장 강렬한 진동이 울리는 방향을 가리켰다. 도서관 지하 깊숙한 곳, 교수들조차 발길을 끊은 오래된 마법 물품 보관 창고에 다다랐다.
창고 안은 온갖 잡동사니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낡은 책장과 깨진 마력 증폭기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자, 한쪽 벽에 설치된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먼지로 가려진 그림 속에는 기괴한 문양과 함께, 방금 전 본 양피지 속 그림과 흡사한 형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유진은 직감적으로 태피스트리 뒤에 무언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손가락으로 태피스트리 가장자리를 더듬자, 희미한 마력장이 느껴졌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열려라, 아르카나의 숨겨진 길.”
속삭이듯 주문을 외자, 태피스트리는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 안쪽에서는 아까보다 훨씬 강렬한 공명음과 함께,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호기심이 더 강했다. 유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마치 땅속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공기는 점차 차가워지고 습해졌으며, 마력은 더욱 짙어졌다. 복도 양쪽 벽에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내용들은 읽을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을 풍겼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통로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지하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규모였다. 거대한 동굴과 같은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수정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수정은 기분 나쁜 붉은빛을 내뿜으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빛은 동굴 전체를 기이하게 물들였다.
그러나 유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수정이 아니었다. 수정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투명한 유리관들이 마치 거대한 벌집처럼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유리관 안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형체들이 봉인되어 있었다. 사람의 형상… 아니,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흐릿하고 비현실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미동도 없이 그저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마력 감지 능력은 명확하게 읽어냈다. 그것은 ‘생명력’이자 ‘마력 잠재력’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마법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빛을 보지 못한 ‘나약한’ 존재들의 ‘원천 마력’이었다.
유리관 하나하나에서 뽑아져 나온 빛의 실타래들이 검은 수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수정은 그 실타래들을 흡수하며 더욱 격렬하게 맥동했다. 그 순간, 유진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막강한 마력, 학생들의 비범한 재능, 그리고 교정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견고한 마법 방어막.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지하의 금기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시초의 희생’은 전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원의 가장 깊숙한 뿌리이자, 가장 끔찍한 진실이었다. 약자의 잠재력을 강탈하여 강자의 토대로 삼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연금술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 웅장하고 고귀한 마법 학원의 모든 영광이, 이 지하에서 고통받는 무수히 많은 존재들의 절규 위에 세워져 있었다니.
그때였다. 으스스한 정적이 흐르는 동굴 안에,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군. 호기심이 지나친 아이는 언제나 일을 그르치지.”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엄격하지만 늘 학생들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법 역사학 교수 엘리자베스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의 온화함 대신 냉철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교수님… 이건… 대체 무슨…?” 유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엘리자베스 교수가 검은 수정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수정에 닿자, 수정은 더욱 격렬하게 빛났다.
“이곳이 바로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심장이다, 유진. 학원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 세상은 약자를 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약자들의 잠재력마저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이들을 통해 아르카나는 더욱 강해지고, 더 많은 강자를 길러낼 수 있게 된 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확고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이건… 살인이에요! 생명력을 강탈하는 거라고요!”
“살인이라… 어차피 싹을 우지 못할 씨앗들을, 더 큰 열매를 위해 거름으로 삼는 것뿐이다. 강대한 마법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희생. 너 같은 재능 있는 아이가 이런 헛된 연민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엘리자베스 교수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한 마력 구체가 형성되었다. 위협이었다.
“선택하거라, 유진. 이곳에서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이 위대한 비밀의 일부가 되어 아르카나의 영광을 누릴 것인지.”
유진은 몸을 굳혔다. 온몸의 세포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앞의 광경은 지옥 같았고, 엘리자베스 교수의 말은 그 지옥을 긍정하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아름다움은 거짓이었고, 모든 권위는 이 추악한 진실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아니, 유진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고, 발밑의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졌다. 엘리자베스 교수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마법을 시전할 틈을 주지 않고, 유진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돌렸다.
“교수님, 저는… 연약한 씨앗들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뒤돌아섰다. 어둠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엘리자베스 교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쫓아왔지만, 유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달리고 또 달렸다. 복도를 거쳐, 숨겨진 통로를 지나, 마법 물품 보관 창고로. 그리고 마침내 학원 복도로 다시 나왔을 때, 새벽의 희미한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교정은 평화로웠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마법을 훈련하고, 교수들은 온화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어제와 똑같았다. 그러나 유진의 눈에는, 그 모든 아름다움이 피로 물든 환영처럼 보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첨탑은 지하의 고통 위에서 춤추는 망령 같았고, 학생들의 빛나는 마법은 고통받는 존재들의 희생으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유진은 학원 한복판에 홀로 선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독점하는 빛의 전당이 아니었다. 그곳은 어둠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괴물의 심장을 보아버렸다.
그녀는 이 거대한 진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이 추악한 진실을 세상에 폭로하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새벽의 햇살 아래, 유진의 눈동자에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세상은,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