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7장: 벽해청천실(碧海靑天室)의 침묵: 깨어진 진실

고요했다. 그 지독한 침묵은 억눌린 비명처럼 청운궁 대전(大殿)의 공기를 짓눌렀다. 겹겹의 진법과 무쇠로 된 문,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서려 있는 영기(靈氣)의 장막까지. 육중한 벽해청천실(碧海靑天室)의 문이 마침내 열리고, 안에서 발견된 백련각주(白蓮閣主)의 싸늘한 시신은 모든 이들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밀실 살인. 그것도 강호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방에서 벌어진 기이한 참극이었다.

“각주님께서는 심장에 단 한 방의 기공(氣功)으로 살해당하셨습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으며, 모든 진법은 완벽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선도맹(仙道盟)의 집행대주(執行隊主)인 묵천웅(墨天雄)이 굵은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와 함께 깊은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백련각주는 그 자신의 경공(輕功)과 진법 실력으로도 감히 침투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던 인물이었으며, 그의 처소는 더욱 그러했다.

수많은 문파의 장로들과 고수들이 시신 주변을 둘러쌌지만, 누구 하나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들의 눈은 공포와 의문으로 가득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그 누구도 백련각주의 죽음이 외부 소행이라고 믿지 않았다. 청운궁은 현재 선도맹의 수뇌부와 각 문파의 핵심 인사들로 가득 차 있었고, 외부인이 이 견고한 방어선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

바로 그때, 고요한 대전 한 구석에서 나지막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흰 도포를 걸치고 손에 오래된 부채를 든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진무량(眞武量). 현월 탐선(玄月探仙)이라 불리며, 기묘한 사건이라면 귀신도 찾아낸다는 명성을 가진 자였다. 그의 눈은 반달처럼 가늘었으나, 그 안에 담긴 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깊고 예리했다.

“진선(眞仙)께서 오셨으니, 이 난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선도맹주(仙道盟主)인 운해선인(雲海仙人)이 무거운 표정으로 진무량에게 청했다. 진무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고, 주변의 혼란스러운 기운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진무량은 시신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백련각주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고통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작은 멍 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멍 자국을 중심으로, 그의 영기 흐름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기공술은 틀림없습니다. 허나 이렇게 깨끗하고 완벽한 시신은… 마치 누군가가 그를 안심시키고 죽음을 맞이하게 한 듯합니다.”

진무량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주변 인물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시신에서 눈을 떼어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에 새겨진 방어 진법의 문양, 문과 창에 걸린 봉인 부적, 그리고 바닥에 깔린 영기 감지 진법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먼지 한 톨 제대로 흐트러지지 않은 이 방은, 마치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듯 깨끗했다.

“묵 집행대주, 이 방에 들어설 때 사용된 각주의 신물(信物)은 무엇입니까?” 진무량이 물었다.

“각주님께서는 생전에 이 벽해청천실을 드나들 때, 오직 ‘청천옥패(靑天玉牌)’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옥패가 없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진법을 해제하거나 우회할 수 없도록 설계하셨지요.” 묵천웅이 답했다.

“청천옥패는 어디에 있습니까?”

“각주님의 품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살해당한 후에도 고이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진무량은 청천옥패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옥패에는 미약하게나마 백련각주의 영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옥패를 쥔 채 다시 한번 방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문양, 벽의 질감, 천장의 작은 균열까지 놓치지 않았다.

“각주께서는 어제 저녁, 외부인의 접견 없이 이 방으로 들어서셨고, 마지막으로 각주님을 본 것은 시중을 들던 시동이었습니다. 새벽녘까지 문 밖에서 경계를 섰으나,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묵천웅의 설명이 이어졌다. 완벽한 밀실.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는데, 방 안의 인물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무량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손에 들린 부채는 느릿하게 펼쳐졌다 접히기를 반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방 안의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저 빈 공간일 뿐인 곳을 마치 무엇이라도 있는 양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 몇몇 고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방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무량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시다시피 모든 진법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 장로가 반문했다.

진무량은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 벽해청천실의 진법은 강력한 방어 능력을 자랑합니다. 외부의 침입을 막고, 내부의 영기 유출을 차단하며, 심지어는 소리의 전달마저 왜곡시키지요. 허나…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살인자는 이 방에 들어오거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찌 된 일입니까? 범인은 공중에서 뚝 떨어진 것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또 다른 고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진무량은 그들을 보지 않고 벽 한구석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이 방에는 고요한 물결의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흡사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습니다. 외부의 파동은 전혀 전달되지 않으나, 그 안에서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큰 흔적을 남길 수 있지요.”

그는 다시 백련각주의 시신을 가리켰다. “각주님은 오랜 세월 동안 이 방에서 수련하며 자신의 영기를 방어 진법에 융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 방은 각주의 영기를 일종의 ‘출입증’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졌지요. 청천옥패 또한 그 영기의 복사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각주님의 영기를 위조했단 말씀이십니까?” 묵천웅이 놀라 물었다.

“아니요. 위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방의 진법을 역이용했지요. 이 방은 외부의 ‘침입’을 막을 뿐, ‘존재’를 인식하는 데는 미약한 맹점이 있습니다.”

진무량은 부채를 활짝 펼쳤다. 부채에는 흑백의 음양(陰陽) 문양이 선명했다.

“백련각주의 죽음은 외부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범인이 이 방 안에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살인자는… 이 방 ‘안’에 있었지만, 동시에 ‘밖’에 있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진무량의 말은 마치 수수께끼 같았다.

“모두들 기억하시겠지요. 백련각주는 생전에 공간 이동술과 그림자술에 통달한 분이셨습니다. 이 벽해청천실 또한 그 특성을 이용하여 설계되었지요. 완벽한 방어와 동시에, ‘숨겨진 통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좌중에 술렁거림이 일었다. 숨겨진 통로라니? 아무도 알지 못하는 통로가 이 방에 있었다는 말인가?

진무량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단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단상 위에는 백련각주가 아끼던 영물이 놓여 있던 빈자리가 있었다.

“살인자는 이 방의 진정한 맹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진법은 오직 물리적인 ‘침입’과 외부 ‘영기’의 유입만을 감지할 뿐, 특정한 ‘공간적 왜곡’에는 둔감합니다. 백련각주는 자신의 수련 공간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 자신이 만들어낸 ‘무형의 틈’을 간과했습니다.”

“무형의 틈이라니…?” 운해선인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네. 바로 이 단상 아래에, 백련각주가 가끔 사용하셨던 소형 ‘공간 유동 진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단거리 이동을 하곤 했지요. 예를 들어, 이 방의 바깥 경계선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요. 이 진법은 방어 진법과 미묘하게 겹쳐 있어, 외부인의 영기 감지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직 각주의 영기에만 반응하도록 설정되어 있었죠.”

진무량의 말에 몇몇 고수들이 단상으로 달려가 바닥을 더듬었다. 과연, 단상 아래쪽의 미세한 문양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진법은 오직 각주님 본인만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묵천웅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 각주님 본인의 영기를 모방하거나, 혹은 각주님 본인의 의식에 영향을 주어 그 진법을 스스로 발동시키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진무량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범인은 백련각주를 살해하기 전에 이미 이 공간 유동 진법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법을 이용해, 각주님이 마치 ‘스스로’ 방을 드나들었다가 돌아온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각주님은 살해당하셨는데….”

진무량은 부채를 접으며, 대전 한쪽에 서 있던 한 인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인물은 바로 백련각주의 오랜 지기(知己)이자, 이번 선도맹 회의에서 백련각주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청풍문(淸風門)의 문주(門主)인 화명(華明)이었다.**

화명은 진무량의 시선에 움찔했지만, 이내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무슨 억측이십니까! 제가 감히 백련각주님께 그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화명 문주, 백련각주께서는 오직 한 가지 약점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몽환향(夢幻香)’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었습니다. 이 방에는 아직 그 몽환향의 미세한 잔향이 남아 있습니다. 보통의 영기로는 감지하기 어렵지만, 영안(靈眼)으로 보면 희미하게 떠도는 푸른 기운이 보이지요.”

진무량의 말에 화명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범인은 각주님을 살해하기 전, 그를 이 몽환향으로 깊은 최면 상태에 빠뜨렸습니다. 의식이 혼미해진 각주님은 자신의 영기로 공간 유동 진법을 스스로 발동시켰고, 범인은 그 틈을 이용해 잠시 방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 각주님을 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법은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묵천웅이 여전히 의문을 품었다.

“그렇습니다. 진법은 각주님 본인의 영기가 출입한 것으로 ‘오인’했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각주님이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한 것입니다. 몽환향에 취한 각주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테지요. 그리고 살해당한 후, 범인은 각주님의 몸을 다시 단상 위에 놓아두고 모든 흔적을 감췄습니다. 각주님은 외부인의 침입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간 이동 진법을 통해 나갔다가 돌아온 직후 살해당한 것입니다. 밀실의 정의를 교묘하게 비튼 것이지요.”

진무량은 화명을 똑바로 응시했다.

“화명 문주. 당신은 백련각주의 오랜 지기였기에, 그의 약점과 이 벽해청천실의 숨겨진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번 선도맹 회의에서 각주님과의 사소한 다툼 후, 이틀 전 저녁에 그에게 ‘몽환향’을 선물하지 않았습니까?”

화명의 얼굴은 완전히 백지장처럼 변했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와 절망으로 흔들렸다.

“그 몽환향은 각주님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었으나, 일반적인 영기 감지에는 잡히지 않는 특이한 물건이었습니다. 당신은 각주님의 방어 진법이 몽환향의 미미한 기운조차 걸러낼 것을 알았지만, 각주님 스스로가 향을 피울 거라 확신했기에 건넨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각주님의 죽음 이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빈 영물 자리’에 놓인 향로의 잔재를 치웠습니다.”

진무량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미세한 재의 흔적을 가리켰다. 그것은 보통의 향과는 다른, 미묘하게 푸른 빛을 띠는 재였다.

“이제 밝혀졌군요, 화명 문주. 이 벽해청천실의 침묵은 당신의 교활한 술수에 의해 깨졌습니다. 당신이 바로 백련각주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진무량의 마지막 말이 대전을 꿰뚫었다. 모든 시선이 화명에게로 향했고,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극심한 공포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묵천웅이 즉시 화명에게 달려가 그의 혈도를 봉쇄했다. 진무량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청운궁을 감싸고 있던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그 위로 차가운 달빛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영원히 묻힐 뻔했던 진실이, 그의 손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 깊고도 아득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아직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과연, 화명 문주는 왜 백련각주를 살해했을까? 그리고 그가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차가운 달빛 아래, 진무량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밀실 살인 사건은, 이제 막 그 거대한 서막을 올린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