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회색 먼지의 노래

폐허가 된 7구역, 한때는 화려한 상점들이 즐비했을 거리에는 회색 먼지가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멈춰 선 차량의 앙상한 골조, 무너져 내린 간판 조각들, 그리고 그 위로 덧씌워진 시간의 흔적들이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숨 막히는 침묵은 오직 우리의 발소리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내 거친 숨소리로만 깨질 뿐이었다.

“재하 오빠, 저기, 뭐가 보여요?”

내 뒤를 따르던 미오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글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작은 손이 내 작업복 소매를 꽉 쥐었다. 열여섯 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도 여린 아이였다. 하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약함은 곧 죽음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미오. 낡은 상점의 잔해일 뿐이야.”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짓눌렀다. 낡은 방진 마스크 너머로 들이쉬는 공기는 금속 비린내가 섞인 텁텁한 맛이었다. ‘재의 시대’가 시작된 지 수십 년. 이제 세상은 거대한 회색 사막이 되어버렸다. 해가 뜨고 져도 하늘은 늘 잿빛이었고, 끊임없이 떨어지는 미세한 재는 모든 생명을 질식시켰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 ‘은신처’ 역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물 정화기의 동력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탐색에서 새 전력원을 찾지 못하면, 모두가 목마름에 쓰러질 터였다.

부서진 건물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던 내 발이 삐끗했다. 젠장, 또다시 바닥이 무너져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조심해, 미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미오는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잔해를 넘어섰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작은 희망의 불꽃이 일렁였다.

“오늘은 꼭 좋은 걸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빠.”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좋은 것? 이젠 폐허 속에서 쓸모 있는 고철 조각 하나만 찾아도 ‘좋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었다. 과거의 영광은 모두 회색 먼지 속에 묻혔고, 인류는 겨우 숨만 쉬는 존재가 되었다.

콰아앙!

멀리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나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낡은 작업복 안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오의 손이 더욱 강하게 내 소매를 움켜쥐었다.

“오빠, 저 소리… 뭐예요?”

“재 폭풍이다.”

짧게 내뱉는 내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회색 장막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먼지 기둥은 하늘에 닿을 듯이 치솟았고, 그 파괴적인 힘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고 모든 것을 삼켜버릴 재 폭풍이었다.

“뛰어, 미오! 가장 가까운 건물 안으로!”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부서진 아스팔트 위를 가로지르고, 잔해를 뛰어넘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재 폭풍에 휩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스크 안으로 들이쉬는 공기가 폐를 찢는 듯 따끔거렸다.

“저기! 저 건물로!”

내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유리창이 대부분 깨져나간 낡은 백화점 건물이었다. 그나마 구조가 튼튼해 보였다. 우리는 으스러진 회전문 사이로 몸을 던지듯 비집고 들어갔다.

쿵, 쿠구궁!

뒤따라 들어온 미오가 안도감에 숨을 몰아쉬었다. 건물 안은 밖보다 어두컴컴했지만, 그나마 덜 위험해 보였다. 먼지 낀 천장과 깨진 바닥, 상품 진열대는 이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부서져 있었다.

“괜찮아?”

내가 묻자 미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숨어 있어야 해.”

우리는 깨진 진열대와 쓰러진 마네킹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며 안쪽으로 향했다. 건물 내부의 음산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낡은 상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재 먼지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그때였다. 미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가리켰다.

“오빠, 이거… 뭐예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무너진 천장 조각 아래에 박혀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주변의 먼지를 털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지만 온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동력원 유닛이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것이, 아직 생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렸다.

“젠장, 이런 곳에….”

놀라움과 동시에 경계심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이런 곳에 이렇게 완벽한 동력원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과거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황금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누군가 이미 탐색했어야 할 법한 장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낡은 벽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심장이 쿵, 쿵, 하고 크게 울렸다.

“미오, 주변을 잘 살펴봐. 혹시 모르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노란 눈동자가 포착됐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낡은 건물 안을 진동시켰다.

“젠장… 그림자 사냥꾼!”

나는 재빨리 미오를 뒤로 밀치고 허리춤에 찬 낡은 강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재의 시대가 낳은 변종 생명체, 그림자 사냥꾼. 회색 먼지에 완벽하게 위장된 검은 털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밤눈에 특화된 시력으로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놈은 빛을 싫어했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치명적이었다.

쉬이익!

놈이 그림자처럼 튀어나왔다. 굶주린 짐승 특유의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나는 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놈은 마치 연기처럼 스르륵 피했다. 놈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콘크리트 바닥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미오, 저 동력원… 저걸 가지고 반대편으로 도망쳐!”

나는 소리쳤다. 미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부서진 진열대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내가 준 작은 채취 도구로 동력원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사냥꾼은 미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먹잇감을 포착한 짐승의 눈빛이었다. 놈이 몸을 웅크렸다. 다음 순간, 놈은 미오를 향해 도약할 터였다.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파이프를 휘두르는 대신, 놈의 옆구리에 전력으로 태클을 걸었다. 콰드득! 뼈와 살이 뒤엉키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놈의 몸이 뒤틀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다시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크아아아!”

놈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옆구리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부상당한 짐승은 더욱 위험했다.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더욱 빠르고 사납게!

나는 파이프를 양손으로 꽉 쥐고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텅, 텅!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건물 안을 뒤흔들었다. 놈의 발톱이 파이프를 긁고 지나가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막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놈의 빈틈을 찾았다. 그림자 사냥꾼은 빠르지만, 야행성이라 빛에 약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목에 찬 손전등을 켰다. 짧지만 강력한 빛이 놈의 눈동자를 강타했다.

“크으윽!”

놈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파이프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앙! 묵직한 충격과 함께 놈의 몸이 휘청거렸다.

“재하 오빠! 됐어요!”

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작은 동력원을 품에 안고 있었다.

“도망쳐!”

나는 소리쳤다. 그림자 사냥꾼은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때늦었다. 미오는 이미 건물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놈에게 등을 보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놈은 한참 동안이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쫓아왔지만, 결국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상당한 몸으로는 더 이상 추격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우리는 건물 지하로 통하는 낡은 계단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몸을 피했다. 지하 창고는 천장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았지만, 한쪽 구석에 콘크리트로 단단히 밀봉된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과거의 금고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여기야, 미오. 일단 여기로 들어가자.”

우리는 금고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육중한 강철 문은 이미 떨어져 나갔지만, 내부 공간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재 폭풍의 포효는 이제 둔탁한 울림으로만 들렸다.

나는 미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동력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푸른빛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냈어요, 오빠… 정말로 해냈어….”

미오의 눈가에 작은 물기가 맺혔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작지만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 작은 동력원 하나로, 은신처의 물 정화기가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조용히 배낭에서 건조된 육포 조각을 꺼내 미오에게 건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그것을 받아먹었다. 바깥에서는 재 폭풍이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천장이 흔들리고, 모래알 같은 재가 미세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지친 몸과 마음이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안도감은 잠시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폭풍이 멎으면, 또다시 먹을 것을 찾아, 물을 찾아, 살아남기 위해 폐허 속을 헤매야 할 것이다. 끝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미오가 품에 안고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작은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일한 생명의 증거처럼 들렸다. 그래,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 잿빛 세상이 언젠가는 다시 푸른 하늘을 보여줄 그날을 믿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낡은 강철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폭풍 뒤에는 또 다른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