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한성부 깊숙이 박힌 기와지붕 위를 쓸고 지나가는 초겨울 밤이었다. 낡은 문풍지가 덜거덕거리는 소리조차도 날카로운 칼날처럼 심장을 훑는 듯한 적막감. 그 적막을 깨트린 건, 황급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그리고 마침내 이 비극적인 장소에 당도한 관군들의 거친 숨소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한성부 판관 나덕만은 거대한 저택의 대청마루에 서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인중을 쓸었다. 그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국왕의 최측근이자 어영대장인 윤제문 대감이 자신의 서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판관 나으리, 방 안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요.”
경비대장 주서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윤 대감의 서재는 견고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여러 겹으로 덧대고, 빗장까지 단단히 걸어 잠근 곳이었다. 외부에서 침입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였다.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그럼 누가… 아니,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단 말이냐!”
나덕만의 비명이 저택의 뜰에 메아리쳤다. 그들이 발견했을 당시, 서재의 문은 세 개의 쇠빗장으로 안에서 단단히 걸려 있었고, 창문들은 모두 묵직한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심지어 창호지조차 찢긴 흔적 하나 없었다. 말 그대로 완벽한 밀실.
“시신은… 책상에 엎드린 채였습니다. 뒤통수에… 깊은 상처가…”
주서방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목격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윤 대감은 어젯밤 늦게까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몸종이 새벽에 깨워도 인기척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문을 두드렸고, 대답이 없자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이다.
“안에서 잠긴 방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니… 귀신이라도 한단 말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덕만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런 기괴한 사건은 전대미문이었다. 자칫하면 국왕에게 불경한 일이 일어났다고 보고해야 할 판이었다. 이대로는 범인은 물론, 범행 수법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그때였다. 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귀신이라면, 살인을 저지른 후 문단속까지 하는 깔끔함은 없겠지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현이었다. 밤하늘을 닮은 듯 깊은 색의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그는, 갓 하나를 비뚤게 쓴 채 손에 든 담뱃대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눈은 달빛처럼 차가웠으나, 그 속에 숨겨진 예리함은 감출 수 없었다.
나덕만은 그를 보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이현. 세상 모든 이치를 꿰뚫는다고 자처하는 괴짜 학자. 한성부 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마다 불려와 해답을 내놓는 기이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탐정이라는 직함을 스스로 붙였지만, 대다수의 관료들은 그를 그저 ‘괴팍한 추리꾼’ 정도로 치부했다.
“이 밤중에 웬일인가? 내가 사람을 보낸 적은 없는데.”
나덕만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사실은 그가 가장 먼저 사람을 보내 이현을 부른 터였다. 이런 미궁 같은 사건은 오직 그만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미약한 희망 때문이었다.
“까마귀는 죽은 자의 냄새를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판관 나으리께서 애써 감추려 해도, 비극은 언제나 저를 찾아오더군요.”
이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어서 들어와 보게. 자네라면 이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는가?”
나덕만은 마지못해 길을 터주었다. 이현은 조용히 서재 문을 지나쳤다. 문은 이미 부서져 활짝 열려 있었지만, 그는 닫힌 문을 상상하는 듯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그의 시선은 서재의 내부로 향했다.
윤 대감의 시신은 이미 치워진 뒤였지만, 책상 위에는 피가 말라붙은 흔적이 선명했다. 널브러진 책들과 붓, 벼루가 어지러웠다. 이현은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으나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가장 먼저 창문으로 다가갔다. 쇠창살의 간격, 창호지의 덧댐, 그리고 창문 가장자리에 박힌 굵은 못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손가락이 창문 틀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으로는 아무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군요.”
주서방이 답답한 듯 말했다. 이현은 대꾸 없이 시선을 돌려 서재의 문을 보았다. 부서진 문틀과 빗장들이 그저 시끄러운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다.
“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에서 세 개의 빗장을 걸어 잠갔으니, 어찌… 사람이 들어왔겠습니까.”
나덕만이 한숨을 쉬었다. 그의 절망적인 표정이 이현의 눈에 비쳤다.
이현은 방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치 방 안의 모든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 맹수처럼 번득였다.
“판관 나으리.”
이현의 목소리는 낮고 분명했다.
“이 방은 분명히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나덕만과 주서방의 얼굴에 절망이 다시 드리워졌다. 역시 이현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살인자가 이 방에 들어오지 못했거나 나가지 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현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살인자는 틀림없이, 이 방에서 윤 대감을 죽였고, 제 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주서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허나… 어떻게…?”
이현은 대답 대신, 방 한가운데 놓인 큼지막한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자가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범인은 밀실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 윤 대감이 마지막으로 읽었을 법한 책 한 권에 머물렀다. 낡은 표지에 쓰인 제목은 ‘대국 건축 비사 (大國建築秘史)’. 그 책의 한 페이지가 다른 페이지보다 미묘하게 더 접혀 있었다.
“첫 번째 열쇠는… 늘 보이는 곳에 숨어 있는 법이죠.”
이현은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아직 아무도 깨닫지 못한 채였다. 이 괴짜 학자가, 과연 이 밀실 살인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지. 차가운 바람만이 그의 갓끈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