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첫 만남은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한여름의 오피스텔은 언제나 전쟁터 같았다. 거실 한복판에는 온갖 고문서와 지도 조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낡은 커피잔과 인스턴트 라면 용기가 그 사이사이에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한여름은 그 혼돈의 중심에서 제 세상이라도 되는 양 눈을 반짝이며 돋보기로 양피지 조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에어컨은 고장 난 지 오래였고, 여름의 한낮은 푹푹 찌는 찜통 같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수천 년 전의 비밀을 해독하려는 열정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아, 드디어!”

한여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돋보기 아래의 희미한 그림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수십 년간 고대 문명의 ‘잃어버린 심장’이라 불리던 유적의 존재를 암시하던 파편적인 기록들.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오래된 필사본의 한 구석에 숨겨져 있던 작은 문양은, 그녀가 최근 동묘에서 득템한 낡은 도자기에 새겨진 문양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문양은 다름 아닌, 버려진 폐광의 입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녀는 흥분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옆에 놓인 노트북을 더듬거렸다. 지도를 펼치고 방금 해독한 좌표를 입력했다. 스크린에 붉은 점이 깜빡였다. 서울 근교,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산자락.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문명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쿵, 쿵, 쿵. 마치 천둥이라도 치는 듯 무거운 노크 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한여름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나동그라질 뻔했다. 누구지? 택배는 어제 다 받았고, 엄마는 오늘 친구들이랑 계곡 가셨다고 했는데.

“누구세요?”

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노크 소리만큼이나 묵직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강태양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강태양? 난 모르는 사람인데? 한여름은 살면서 ‘강태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친분을 쌓은 기억이 없었다. 혹시 사기꾼인가?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낡은 원룸 문은 그녀의 연구 결과물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보안경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숨을 헙 들이켰다.

문 앞에는 모델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잘 재단된 고급스러운 슈트,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 그리고 차가운 이성을 담고 있는 듯한 깊은 눈빛. 완벽한 도회적인 외모는 한여름의 난장판 같은 오피스텔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의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고, 한여름의 문에 달린 녹슨 문패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신데요?” 한여름은 다시 물었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 있었다.

“집주인입니다.”

그의 말에 한여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주인? 지금 집주인은 허리 수술받고 병원에 계신 할머니인데?

“하, 하지만 저희 집주인 할머니는….”

“제가 이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새 주인입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고, 어떤 반박도 허용하지 않는 듯 단호했다. 한여름은 입을 쩍 벌렸다. 새 집주인? 갑자기?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지? 어쩐지 요즘 연락이 안 되더라니!

“왜 이제야…!”

그녀가 항의하기도 전에 강태양은 서류 가방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보였다. 임대차 계약 해지 통지서. 심지어 오늘 날짜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 건물은 재개발 예정입니다. 최대한 빨리 이주해주셔야 합니다.”

“재… 재개발이요?!”

한여름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얼어붙었다. 재개발이라니! 이 유적을 코앞에 두고 이사를 가라고?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발견한 ‘잃어버린 심장’ 유적과 ‘계약 해지 통지서’라는 두 단어가 충돌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말도 안 돼요! 이 집은 제 보물창고이자 연구실이라고요! 여기 있는 것들 다 옮기려면 백 년도 더 걸릴 거예요!”

한여름은 두 팔을 벌려 자신의 혼돈의 공간을 가리켰다. 강태양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뒤로 보이는 난장판을 훑어봤다. 그의 눈빛에는 경멸이 살짝 스치는 듯했다.

“그건 본인의 사정이고요.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 내에….”

“잠깐만요!”

한여름은 그의 말을 끊고 거실로 우당탕탕 달려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그녀를 기쁨에 떨게 했던 그 양피지 조각과 도자기를 움켜쥐었다.

“이것들을 보세요! 이건 평범한 고물이 아니에요! 수천 년 전의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요! 제가 지금 이걸 가지고 엄청난 발견을 하려는 참이었어요!”

그녀는 열변을 토하며 강태양에게 도자기를 들이밀었다. 강태양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 도자기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게 재개발하고 무슨 상관이죠? 고물이라면 차라리 고물상에 파세요.”

“고물이라니요! 이 무지한 인간 같으니라고!”

한여름은 울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그녀의 보물을 모욕하다니! 그녀는 흥분한 나머지 도자기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고, 그만 손에서 도자기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도자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한여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망할! 겨우 구한 증거물인데!

“이런….”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강태양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이 깨진 도자기 파편들 중 하나에 고정되었다.

“그 문양….”

강태양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깨진 파편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 파편에는 아까 한여름이 돋보기로 들여다봤던 그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폐광을 상징하는 고대 부족의 문양인데… 이게 왜 여기에?”

한여름은 그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이 남자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녀의 눈에는 의혹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떠올랐다.

“당신… 그 문양을 알아요? 혹시 당신도 고고학자예요?”

강태양은 파편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한여름의 눈에 직접 꽂혔다.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이었다.

“고고학자는 아니고. 오래된 것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런 희귀한 문양에는 관심이 좀 많죠.”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단순히 ‘수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흥미였다. 한여름은 직감적으로 이 남자 역시 이 유적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음을 느꼈다.

“저, 이 문양의 의미를 알아냈어요! 이건 서울 근교의 버려진 폐광으로 통하는 입구를 가리키는 거예요! ‘잃어버린 심장’ 유적의 입구라고요!”

한여름은 기다렸다는 듯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 남자가 누구든 간에, 적어도 그녀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강태양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빛은 번뜩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다시금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그 폐광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

“네! 지도에 좌표를 찍었어요! 제가 지금 막 출발하려고 했어요!”

강태양은 잠시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한여름의 난장판 오피스텔과, 깨진 도자기 파편, 그리고 그녀의 빛나는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좋습니다.”

그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당신이 말하는 그 유적, 제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건물 재개발 건은… 일단 잠시 보류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한여름은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뭡니까? 뭐든지 할게요!”

“저와 함께 갑니다. 그리고, 제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세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그의 목소리는 명령조였다. 한여름은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폐광의 문이 눈앞인데, 이사를 가야 한다니! 게다가 이 남자가 가진 정보와 재력이면 유적 탐사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좋아요! 조건 받아들이죠!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어요! 이 유적이 정말로 ‘잃어버린 심장’이라면… 발견자는 저예요!”

강태양은 피식 웃었다. 그 짧은 웃음 속에 비웃음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죠. 이 난장판에서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현관문으로 향했다. 한여름은 서둘러 노트북과 배낭을 챙겼다.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잃어버린 심장’을 향한 모험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재수 없고 잘난 남자가 그녀의 첫 모험에 동반자가 될 줄이야. 그녀는 강태양의 넓은 등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그 한숨은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 모험,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