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를 휘감아 오르는 굽이진 길 끝, 짙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윤 회장의 고택은 마치 거대한 그림자처럼 위압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낡았지만 여전히 견고한 담벼락 안쪽에서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간간이 울려 퍼지다 이내 먹혀 들어갔다. 그 소리는 고색창연한 저택의 분위기에 스며들어, 마치 비명을 삼킨 듯 섬뜩한 정적을 더할 뿐이었다.
“젠장, 이런 날씨에 이런 사건이라니.”
수사팀을 이끄는 오 형사는 굵은 욕설을 내뱉으며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옆자리에서는 강태주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의 냉철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은 살인 사건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강 군, 이번에도 골치 아픈 사건이야. 자네 아니면 아무도 못 풀 거다.” 오 형사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강태주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오 형사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지루함과 약간의 기대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밀실입니까?”
“그래. 완벽한 밀실이야.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혔지. 피해자는 윤 회장. 서재 안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됐어.”
강태주는 피식 웃었다. 희미한 미소였지만, 그의 주변을 감도는 분위기마저 서늘하게 만들었다. “완벽한 밀실이라. 그런 건 없죠. 그저 우리가 아직 트릭을 모를 뿐.”
고택의 현관 앞에는 이미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란색 통제선이 드리워진 복도를 지나 2층 서재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재 안은 한눈에 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앤티크 가구들과 벽을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시체.
윤 회장은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가슴에는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주변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 전체에 흩뿌려진 듯한 깃털들이었다.
“피해자의 사인은 칼에 의한 과다출혈.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입니다.” 현장 감식반원이 보고했다.
강태주는 말없이 서재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닫힌 창문, 안쪽에서 잠긴 문. 방 안에는 침입의 흔적은커녕,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
오 형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건 당일 밤에는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이 저택에 드나든 사람이 없어.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은 세 명. 딸인 윤지영, 비서인 김민준, 그리고 집사인 박 노인이야. 세 사람 모두 알리바이가 있지만… 뭐, 밀실인데 알리바이가 무슨 소용이겠나.”
강태주는 그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깃털이 떨어진 책상, 천장의 환풍구, 그리고 심지어 시체의 미세한 표정까지 훑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엑스레이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겼고, 창문은 밖에서 열 수 없는 구조. 그럼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죠?” 오 형사가 답답한 듯 물었다.
강태주는 턱을 매만지며 천천히 걸었다. 깃털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깃털은 보드랍고 흰색이었다. 그는 깃털을 잠시 응시하더니, 천천히 서재를 가로질러 창문으로 다가갔다. 잠겨있는 창문 틈새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았다.
“창문은 이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외부에서 열 수 없고, 안에서 잠그면 외부에서 열쇠로도 열 수 없죠.” 오 형사가 덧붙였다.
강태주는 잠시 창밖을 내다봤다. 짙은 안개는 여전히 고택을 휘감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완벽한 밀실은 없습니다.” 강태주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단지, 우리가 완벽하다고 믿고 싶을 뿐이죠.”
그는 다시 서재 중앙으로 돌아와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범인은 서재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찌른 후, 물리적으로 서재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 형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강태주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간절한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트릭은… 바로 저 깃털과 윤 회장이 손에 쥐고 있던 이것입니다.” 강태주가 시체 손에 들려 있던 작고 낡은 회중시계를 가리켰다. “이 시계는 윤 회장의 유품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중시계는 시간이 멈춰 있군요. 정확히 새벽 1시 37분에.”
강태주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명확한 답이 담겨 있었다.
“범인은 이 서재에 직접 침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서재를 직접 나가지도 않았죠. 모든 것은 ‘착시’입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모든 것이 연결되는 완벽한 설명을 시작했다. 깃털의 정체, 회중시계의 시간, 그리고 서재의 구조를 이용한 기발하고 잔인한 트릭.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현장의 모든 경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밀실의 문이 그의 논리 정연한 추리에 의해 서서히 열리는 순간이었다.
강태주가 모든 설명을 마쳤을 때, 오 형사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정말 자네가 아니면 아무도 몰랐을 거야.”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진 듯했다. 범인의 정체와 트릭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해결이었다.
강태주는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범인을 체포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뿐. 또 하나의 완벽한 해결이었다.
그때였다.
현장 감식반원이 조심스럽게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강태주 형사님, 현장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윤 회장 유품을 정리하던 집사 박 노인이 방금 옷장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회장님의 지갑 안에 숨겨져 있던 편지입니다.”
봉투를 열자 낡고 작은 편지 한 장이 나왔다. 강태주는 별 기대 없이 편지를 받아 들었다. 이미 모든 것이 해결된 사건이었으므로, 편지는 그저 부차적인 정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강태주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내가 이 편지를 남기는 이유는, 죽기 직전까지도 나는 너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읽는 네가 만약 강태주라면, 부디 나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다시 파헤쳐 주기 바란다. 나의 죽음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계획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 계획의 진정한 실행자는…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거기서 끝이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강태주’라는 이름이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강태주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가 방금 풀어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추리가, 단 하나의 글귀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편지가 구겨졌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해결했다고 믿었던 사건의 모든 조각들이 다시 제멋대로 흩어져 버렸다.
“젠장… 내가 틀렸다고?”
강태주의 얼굴에서 피가 가시는 듯했다. 불가능했다. 완벽한 트릭. 완벽한 범인. 완벽한 설명.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윤 회장 시체의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낡은 회중시계였다. 멈춰있는 시각은 새벽 1시 37분.
그리고, 편지에서 본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나의 죽음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계획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 계획의 진정한 실행자는…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서재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강태주를 덮쳤다. 그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고, 모든 소음이 아득해졌다. 온몸의 세포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강렬한 섬광이 그의 시야를 집어삼키는 동시에, 그는 의식을 잃었다.
***
강태주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머리 위로는 익숙한 차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 군, 이번에도 골치 아픈 사건이야. 자네 아니면 아무도 못 풀 거다.”
옆자리를 보니, 오 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짙은 안개 속,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윤 회장의 고택이 보였다.
모든 것이 처음과 똑같았다.
강태주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는 방금, 모든 것을 다시 겪은 참이었다. 밀실 트릭을 풀고, 윤 회장의 편지를 발견하며 충격에 빠졌던 순간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오 형사님.”
강태주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왜 그러나, 강 군? 안색이 안 좋군.” 오 형사가 걱정스러운 듯 돌아봤다.
강태주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의 뇌리에는 윤 회장이 남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계획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 계획의 진정한 실행자는…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웃었다. 비릿하고도 섬뜩한 웃음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저… 이번 사건은 생각보다 더 복잡할 것 같아서요.”
강태주의 눈빛이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윤 회장, 당신이 말한 그 ‘잡히지 않을 진정한 실행자’가 누군지, 이번에는 내가 기필코 밝혀내고 말겠어.’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초반에 범인의 잔꾀에 넘어갔던 자신의 오만함까지도.
강태주는 차분하게 운전석에 앉은 오 형사를 바라봤다.
“오 형사님, 현장에 도착하면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윤 회장 시체가 발견된 서재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회장님의 옷장에서 편지를 찾아주십시오.”
오 형사는 의아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응? 편지라니? 무슨 편지 말인가?”
“아직은 모르셔도 됩니다. 그저… 저에게는 그 편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밀실 트릭을 푸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강태주의 눈동자에는 전에는 없던 결의와 함께,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섬광이 스치고 있었다.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터였다.
진정한 범인, 윤 회장이 남긴 그 ‘잔인한 계획’의 실체를 파헤칠 때였다.
강태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