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한양 도성 서북쪽, 신흥 산업가들이 모여드는 융성 시대의 새로운 거리는 기묘한 풍경을 자랑했다. 전통적인 기와지붕과 고풍스러운 한옥 담장 사이로, 굴뚝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 건물과 거대한 톱니바퀴 문양으로 장식된 서양식 석조 저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규칙적인 쿵쾅거림이 도시의 맥박처럼 울리고, 가스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거마(車馬) 대신 삐걱거리는 증기 마차가 지나다니는 곳. 이곳이야말로 구시대와 신시대가 충돌하며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는 조선의 심장이었다.
그 중심에, 탐정 이도현이 있었다. 흐트러진 상투 대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잘 재단된 짙은 남색 두루마기와 그 안에 숨겨진 서양식 조끼가 그의 복식이었다. 손에는 늘 얇은 서양식 장갑을 끼고 다니며, 한쪽 눈에는 금테 안경을 매달고 세상을 관찰하는 그는, 융성 시대의 그 어떤 첨단 기계보다도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내였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성실하고 듬직한 조수 김상훈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나리, 이 시간에 박태수 대감 댁이라니요. 또 무슨 별난 일이 터졌습니까?” 상훈이 증기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조심스레 물었다.
도현은 손에 든 신문을 툭 내려놓았다. 오늘 자 한성신문에 실린 특종 기사는 큼지막한 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발명왕 박태수 대감, 밀실에서 변사체로 발견!’
“별난 일이 아니라, 아주 고약한 사건이 터졌네, 상훈아. 박 대감은 이 시대 최고의 발명가이자 기술자였지. 그런 이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안에서 걸어 잠긴 밀실에서, 흔적도 없이 살해당했다는군. 순사들의 말로는 자살 아니면 유령의 소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왔다더구나.”
상훈은 눈을 크게 떴다. “밀실 살인이라니요? 벽에 구멍이라도 났단 말입니까?”
“그 벽은 박 대감이 직접 설계한 것일세. 족히 벽돌 열 겹은 될 걸세. 그분의 연구실은 금고와 다름없는 곳이었지. 자, 다 왔으니 어서 내리세.”
마차가 멈춰선 곳은 박태수 대감의 저택이었다. 육중한 철제 대문에는 용이 휘감은 듯한 정교한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높은 담장 위에는 얼핏 전등으로 보이는 기이한 장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서양식 건축 양식과 조선의 미감이 기묘하게 뒤섞인, 하나의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저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탐정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한성부 소속의 박 순경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당혹감이 역력했다.
“사건 현장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까?” 도현이 차분히 물었다.
“그럼요! 아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 이쪽입니다.”
박 순경의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 곳곳에서 웅웅거리는 증기 파이프 소리가 들려왔다. 박태수 대감의 집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기계였다. 거대한 증기 보일러가 저택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고, 복잡한 관들이 벽면을 따라 흐르며 온갖 장치들을 구동하는 듯했다.
사건 현장은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연구실이었다. 육중한 강철문이 복도의 끝을 막고 있었다. 문에는 번개 문양과 톱니바퀴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크고 묵직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이게 박 대감의 연구실 문입니다. 발견 당시에도 이렇게 잠겨 있었습니다.” 박 순경이 말했다.
“안에서?” 도현이 되물었다.
“예.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열쇠는… 안에, 시신 옆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상훈은 경악했다. “그럼 누가 열쇠를 안에 넣고 나갔단 말입니까? 귀신이라도?”
도현은 말없이 문의 표면을 만져보았다. 섬세한 손길로 철제 문틈을 훑고, 톱니바퀴 문양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는 문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유리 구멍에 눈을 가져갔다.
“음… 이 문은, 박 대감의 특허품이더군. 겉으로는 단순한 빗장 잠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최신작인 ‘자율 작동식 안전 빗장’이 적용된 문이었지.” 도현의 목소리에 미묘한 흥미가 섞였다.
박 순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율 작동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말 그대로, 스스로 작동하는 빗장이라는 뜻일세. 외부 충격이나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내부의 증기압 혹은 용수철 장치에 의해 빗장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지. 그의 발명품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것이었을 걸세.”
문을 열고 들어선 연구실은 그야말로 박태수 대감의 세계였다. 거대한 증기압 시계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삐걱거리는 기계 팔들이 천장에서 늘어져 있었으며, 온갖 설계도와 알 수 없는 부품들이 책상과 선반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창문은 찾아볼 수 없었고, 벽은 튼튼한 강철판으로 보강되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거대한 작업대 앞에서 박태수 대감이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박 대감이 평소 아끼던, 날렵하게 벼려진 은빛 서신 개봉용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칼자루에는 박 대감의 이니셜 ‘박’이 새겨져 있었다.
도현은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정연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박 대감이 평소처럼 연구에 몰두하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듯했다.
“시신은 만지지 마십시오.” 도현이 상훈에게 당부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방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책상 아래, 의자 다리, 심지어는 벽면에 걸린 거대한 기계의 틈새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상합니다, 나리. 아무리 보아도 도둑이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범인이 이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갔을까요? 굴뚝이라도 기어 올라갔을까요?” 상훈이 굴뚝처럼 보이는 거대한 환기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도현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문가로 돌아와, 문틈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틈에 묻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보게, 박 순경. 이 문은 언제나 이렇게 닫혀 있었습니까?”
“예? 아니요, 저희가 시신을 발견하고 나서, 문이 잠겨 있기에 부득이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임시로 잠가두었습니다.” 박 순경이 답했다.
도현은 문틀 상단을 손으로 톡톡 두드려보았다. 그리고는 문 옆에 설치된 작은 기압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방 안의 기압은 평소와 다릅니다. 미세하게 낮아져 있군요. 그리고 이 문틈의 먼지도…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아주 미세하게, 아주 작은 입자의 금속 가루가 섞여 있군요. 그것도 평소에 이 방에서 발견되는 종류의 가루가 아닙니다.”
상훈과 박 순경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금속 가루요? 그게 뭘 의미합니까, 나리?” 상훈이 물었다.
도현은 연구실의 거대한 증기압 시계를 가리켰다. 시계는 12개의 황동 톱니바퀴와 징이 박힌 태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박 대감은 발명가였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했지. 이 방은 그의 금고이자 작업실이었어. 그가 만들지 않은 어떤 것도 함부로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었을 걸세.”
도현은 박 대감의 시신 옆에 떨어진 열쇠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 열쇠는 박 대감의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잠금쇠에 완벽하게 맞물리는 것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박 순경이 설명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이 열쇠는 박 대감의 것이 분명하네. 하지만 이 열쇠가, 박 대감이 이 방에 들어올 때 사용한 ‘진짜’ 열쇠는 아니었을 걸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훈이 의아해했다.
“박 대감의 ‘자율 작동식 안전 빗장’은 외부의 압력 변화에 반응한다 했지. 특정 주파수의 소리, 혹은 특정 기압에 도달하면 빗장이 스스로 잠기는 식이었다는 의미일세. 범인은 이 점을 이용했어.”
도현은 손에 든 열쇠를 문손잡이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열쇠를 돌려 빗장을 잠갔다. ‘철컥’ 하는 소리가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박 대감은 이 열쇠로 평소처럼 문을 잠갔을 걸세. 그리고 안심하고 작업대에 앉아 연구를 했겠지. 그러나 그가 잠근 것은 겉으로 보이는 빗장뿐이었다네.”
도현은 문에서 열쇠를 뽑아내고, 문틀 상단을 손으로 다시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스스스슥’ 하는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이 소리 들리는가? 이 문에는 두 개의 빗장이 있었네. 하나는 박 대감이 열쇠로 잠그는 겉 빗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박 대감조차도 존재를 확신하지 못했을, 혹은 그 자신만이 아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비밀 빗장’이었지.”
“비밀 빗장이요?” 상훈이 놀라 물었다.
“그렇네. 이 문은 외부에서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내부에서 또 다른 빗장이 튀어나와 문을 완전히 봉쇄하는 구조였던 거야. 그리고 그 조건은 바로… 이 방의 환기구에서 나오는 특정 압력, 혹은 소리였다네.”
도현은 환기구를 가리켰다. “환기구는 단순히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어. 범인은 박 대감이 잠든 틈을 타, 이 환기구를 통해 특수하게 제작된 장치를 삽입했네. 그 장치는 이 방의 기압을 미세하게 낮추거나,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역할을 했을 걸세. 박 대감은 자신의 침실에서 잠들기 전에, 혹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이 방의 환기구는 외부에서 조작되었고, 비밀 빗장이 작동하여 문을 완전히 봉쇄한 것이지.”
박 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열쇠도 안에 있었고요.”
“그것이 바로 범인의 트릭이었다네. 박 대감이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잠든 사이, 범인은 이미 이 방에 숨어 들어와 있었지. 그 후, 박 대감을 살해하고, 겉 빗장은 박 대감의 열쇠로 안에서 잠그고, 열쇠는 시신 옆에 떨어뜨려 두었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방의 진짜 비밀 빗장은 외부에서 조종되는 것이었다는 점이지.”
도현은 손을 뻗어 거대한 증기압 시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시계의 가장 아랫부분, 일반인의 시선에는 잘 띄지 않는 곳에 작은 틈이 있었다.
“범인은 박 대감의 연구실에 숨어 있었고, 박 대감이 잠든 틈을 타 공격했어. 그리고 박 대감의 열쇠로 겉 빗장을 잠그고, 시신 옆에 열쇠를 던져두었지. 그런 다음, 그는… 이 시계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 탈출한 것이네.”
상훈과 박 순경은 도현이 가리킨 시계의 틈을 보았다. 거대한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복잡한 통로를 품고 있었다. 틈새 안쪽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한 어두운 통로가 어렴풋이 보였다.
“이 시계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었네. 박 대감의 가장 은밀한 비상 통로였지. 환기구의 금속 가루는, 범인이 시계를 통과하면서 묻힌 것이야. 그리고 시계 내부에는 미세하게 조정된 압력 감지 장치가 있어서, 사람이 통과하면 외부의 특정 환기구를 통해 공기를 강제로 주입하여 방 안의 기압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네.”
도현은 시계의 바닥에 손을 대었다. “이곳의 먼지는 다른 곳보다 훨씬 적군. 그리고 틈새 안쪽에서는 미세한 습기가 감지되는군. 범인은 이 시계를 통과하면서, 아마도 방 안의 기압을 조작했을 걸세. 그 미세한 기압 변화가 ‘자율 작동식 안전 빗장’의 두 번째, 즉 비밀 빗장을 잠기게 한 것이지.”
상훈은 숨을 들이켰다. “그럼 범인은 박 대감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이 시계의 비밀 통로, 그리고 이 문의 이중 잠금 트릭까지 모두 알고 있었던 자. 박 대감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을 걸세. 이를테면… 그의 유일한 제자, 윤성호 같은 사람 말이지.”
그 순간, 박 순경이 외쳤다. “윤성호! 지금 저택 밖에 대기 중인 그 자 말입니까?”
“그렇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감의 은빛 서신 개봉용 칼, 칼자루에 새겨진 ‘박’이라는 이니셜. 이것은 박 대감의 소유였지. 범인은 이 칼을 이용해 박 대감을 살해했네. 그리고 살해 후, 칼을 박 대감의 가슴에 박아 넣어 마치 자살인 것처럼 위장하려 했지만, 칼이 박힌 각도와 힘은 스스로에게 행한 것이 아니었네. 게다가 이 칼은 박 대감의 손때가 너무나도 묻어 있었지. 범인은 박 대감의 것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했어. 하지만 그로 인해 범인이 박 대감의 물건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셈이지.”
윤성호는 곧 체포되어 끌려왔다. 그는 도현의 추리를 듣자마자, 더 이상 아무것도 부인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백했다. 박태수 대감의 천재성에 대한 질투, 자신의 발명품을 박 대감의 이름으로 발표해야 했던 오랜 분노가 그를 밀실 살인의 범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밀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군. 다만 인간의 탐욕과 질투가 빚어낸 허상일 뿐이었어.” 도현은 텅 빈 연구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상훈은 도현의 옆에 서서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리,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 세상에 나리께서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상훈아. 이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수수께끼를 잉태하기 마련일세. 다만 우리는 그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뿐이지. 융성 시대의 새벽은 이제 막 밝아왔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묘한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 아니겠나?”
그의 시선은 연구실의 거대한 증기압 시계를 넘어, 저 멀리 도시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그림자는 그렇게, 또 다른 밀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