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지하 심연의 서막

낡은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붉은 노을이 사그라드는 도시를 잠식하고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건물의 뼈대들, 검게 그을린 폐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린 죽음의 침묵. 종말이 도래한 지 3년, 강민은 이 지독한 풍경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허나, 익숙함이 공포를 무디게 만들지는 못했다. 특히 지금처럼, 눈앞에 새로운 미지의 문이 열릴 때라면 더더욱.

“여기에요, 오빠! 확실해요.”

조그만 몸으로 커다란 망원경을 어깨에 메고 있던 유리가 흙먼지를 털어내며 손짓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한 흥분으로 살짝 떨리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빛에 반사된 그녀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반짝였다. 강민은 묵묵히 폐기된 지하철역 입구를 응시했다. 무너진 차단기 너머로, 칠흑 같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지하 특유의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확실하다는 말, 늘 좋지만… 유리. 이번엔 좀 부담스러운데.”

강민은 허리에 찬 낡은 마체테 손잡이를 매만졌다. 검게 녹슬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의 등에는 묵직한 배낭이 메어져 있었고, 한 손에는 자동소총이 들려 있었다. 총알은 귀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황은 칼로 해결해야 했다.

“어제 우연히 예전 군사용 지도에서 이상한 표시를 발견했어요. 도시 지하에 존재하는 미개척 구역인데, 일반적인 지하철 노선이나 하수도망하고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기록이 희미하게 남아있었거든요.” 유리가 설명했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어떤 뜬금없는 폐지 조각에서도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아마 예전에 도시 설계 단계에서 기획되다 말거나, 아니면… 정말로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숨겨진 무언가. 강민은 그 말에 픽 웃었다. 이 세상에 숨겨진 무언가라 해봤자 대부분은 썩어가는 시체나, 그걸 노리는 굶주린 이형들뿐이었다. 그래도 유리가 가진 묘한 직감은 종종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내기도, 혹은 새로운 보급품을 찾아내기도 했으니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형의 흔적은? 지하에 뭐가 있는지 확인했어?” 강민이 물었다.

“아뇨, 외부 입구 쪽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통풍구도 다 막혀 있어서 냄새도 안 나고요. 지하로 내려갈수록 알 수 없는 금속 반응이 감지되긴 했는데… 유기체는 아니었어요.” 유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더 궁금한 거죠. 이 세상에 이형이 없는 곳이 있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이젠 숨구멍 하나 없는 곳에도 이형들이 들끓었다.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그들이 정착해 놓은 고층 아파트의 최상층뿐이었다. 허나 그곳도 보급품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었다.

“좋아, 일단 들어가 보자.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마. 놈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강민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켰다. 강렬한 빛이 지하의 어둠을 잠시나마 물러나게 했다. 무너진 철근과 뜯겨나간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녹슨 냄새와 흙먼지,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스며드는 묘한 냉기가 강민의 오감을 자극했다.

“조심해요, 오빠.”

유리는 작은 칼을 쥔 채 강민의 뒤를 바싹 따랐다. 그녀는 전투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강민의 곁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름의 생존 본능을 키웠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흙과 돌멩이, 그리고 무너진 콘크리트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자, 낡은 건물이 내는 삐걱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더 이상 계단은 보이지 않고, 좁고 어두운 터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여기까진 평범한 지하 통로 같네.” 강민이 중얼거렸다.

“아뇨, 여기 보세요.” 유리가 손전등을 들어 옆 벽면을 비췄다. “이 콘크리트, 너무 오래됐어요. 이 도시의 건물 양식하고는 달라요. 그리고 이건…”

유리의 손가락이 벽면의 희미한 그림자를 더듬었다. 손전등 빛이 닿자, 콘크리트 벽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이 드러났다. 날개를 펼친 듯한 새의 형상과, 그 주위를 감싸는 듯한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었다. 깊게 파인 조각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 마모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뭐야…?” 강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문양은 본 적이 없었다. 최소 수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대의 흔적. 이 도시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의 문명이 남긴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상형문자, 제가 예전에 박물관에서 본 고대 문명 유물에서 본 적 있어요!” 유리의 목소리가 더욱 상기되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희귀한 거였는데…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그때였다.
터널 안쪽에 멈춰 있던 두 사람의 시야에서, 갑자기 빛이 깜빡였다.
두 사람의 손전등 불빛이 아닌, 저 안쪽, 어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었다.
정확히는,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금속 문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저건…?” 강민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저 문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직감이 엄습했다.

유리도 입을 다문 채 푸른빛을 응시했다.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였고, 그럴 때마다 낡은 터널 내부의 그림자들이 요동쳤다.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낮은 웅웅거림이 지하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듯한, 혹은 거대한 생명체가 숨 쉬는 듯한 소리였다.

“이형은 아닌 것 같아요…” 유리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보다는 호기심이 더 크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민은 소총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푸른빛은 위험해 보였지만, 동시에 그들을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이곳은 분명 그들이 찾던 ‘잊혀진 고대 지하 유적’의 입구임이 틀림없었다.

“가자.”

강민은 짧게 말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한 걸음, 한 걸음. 푸른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고, 웅웅거리는 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그들은 거대한 문 앞에 다다랐다. 정교하게 조각된 금속 문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표면의 문양들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문양의 한가운데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빛은 단순히 빛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액체처럼 문양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대체 어떤 문명이었을까…” 유리가 감탄사를 흘렸다.

강민은 문에 손을 대보려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손을 멈췄다.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에너지가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더욱 밝아졌고, 웅웅거림은 거대한 비명소리처럼 지하를 뒤흔들었다. 문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으로 섬광처럼 타오르더니, 그 빛이 강민과 유리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크악!” 강민은 본능적으로 유리를 끌어당겨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의 눈앞에서, 거대한 금속 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듯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것은 강렬한 푸른빛과 함께,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강민은 알 수 없는 존재의 기척을 느꼈다. 이형과는 다른, 훨씬 더 고대적이고,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오빠… 저 안에…” 유리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완전히 젖어들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어둠이 아닌, 푸른빛으로 가득 찬 거대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의 한가운데, 멈춰 서 있는… 기이한 형체의 거대한 구조물.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푸른 에너지 회로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경이로우면서도 동시에 극도로 위협적인 고대 유물이었다.

그리고 그 유물의 주위를, 수십,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미라처럼 바싹 마른 존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마치 거대한 무덤의 수호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미라화된 존재들 중 하나가, 아주 느리게, 강민과 유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구멍 속에서, 푸른 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강민의 귓가에 고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경고였을까, 아니면 초대였을까.
강민은 마체테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잊혀진 지하 심연의 비밀이, 이제 막 그들의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