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음이 낮게 깔리며 낡고 거대한 강철 팔이 녹슨 건물의 잔해를 밀어냈다. 뿌옇게 바스러진 콘크리트 가루가 햇빛 한 줄기조차 들지 않는 잿빛 골목을 더욱 탁하게 만들었다. 먼지 냄새, 곰팡이 냄새, 그리고 잊힌 시대의 기름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강현은 조종석 안에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홀로그램 인터페이스에는 미세한 균열이 번져 있었다. 기체는 이미 한계였다. 연료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뼈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대장, 서쪽 구역에서 미약한 동력 반응이 감지됐어요. 움직임은 없지만, 주변 열 감지 스펙트럼이… 좀 이상해요.』”
아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왔다. 늘 침착하던 그녀의 목소리에도 미세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강현은 스크린에 띄워진 지도를 확대했다. 서쪽 구역. 버려진 병원 건물이었다. 마지막 재앙 이후 ‘저주받은 구역’으로 불리며 아무도 접근하지 않던 곳. 그런데 동력 반응이라니.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이상하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상하다니? 구체적으로.』”
강현은 ‘불꽃’이라 불리는 그의 전투 기체의 육중한 발로 뭉개진 아스팔트 바닥을 조심스럽게 디뎠다. 묵직한 발소리가 정적을 깨며 멀리 퍼져나갔다. 그의 유일한 생존 도구이자, 동료이자, 감옥인 존재.
“『주변의 온도가 너무 낮아요. 마치… 거대한 냉각 시스템이 가동 중인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비정상적인 열원이 감지되고 있어요. 서로 상쇄되는 것 같지만, 분명 어딘가에 거대한 동력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에요.』”
아린은 쉼 없이 데이터를 분석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유일한 탐지 전문가였다. 강현은 그녀를 믿었다. 그녀가 ‘이상하다’고 할 때는 백이면 백, 문제가 터졌다. 그들의 이번 목표는 버려진 병원 깊숙한 곳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고순도 에너지 셀이었다. 그것만 있으면 최소한 몇 달은 버틸 수 있었다. 절박했다.
“『빌어먹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강현의 중얼거림은 통신망을 통하지 않고 조종석 안에 울렸다. 그는 한 손으로 땀으로 축축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불꽃의 센서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건물 내부를 훑었다. 거대한 유리창들은 이미 박살 나고, 그 안은 검은 심연처럼 보였다.
그 순간,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귓청을 찢었다. 진동이 불꽃의 조종석을 흔들었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올리며 기체를 기울였다. 망가진 고층 빌딩 상층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오래된 자동방어체계가 아직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 저건…!』”
아린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져 나왔다.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아직도 살아있다고?』”
불꽃의 팔에서 굵직한 철근이 뽑혀 나와 방패처럼 펼쳐졌다. 섬광이 방패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건물 잔해 틈에서 굶주린 짐승처럼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수십 개의 작은 비행체들이 튀어나왔다. 낡은 정찰 드론이었지만, 그 끝에는 살인 병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벌떼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 듯, 드론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꽃을 향해 돌진했다.
“『대장, 후퇴해요! 저건… 너무 많아요!』”
아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강현은 이미 상황을 판단했다. 후퇴는 없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조차 위험해질 터였다. 저들이 그들을 추격할 것이 분명했다.
불꽃의 가슴팍에서 거대한 에너지포가 충전되는 소리가 울렸다. 푸른 섬광이 주변을 밝혔다. 조종석 안에서 강현의 얼굴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이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많은 ‘후퇴’ 대신 ‘돌격’을 선택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후퇴는 없어, 아린. 지금 여기서 끝내야 해!』”
쿠콰콰쾅! 에너지포가 발사되자 수십 대의 드론들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금속 파편과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고, 폭발음이 잿빛 도시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방향에서 달려든 드론들이 불꽃의 등짝에 날카로운 발톱을 박아 넣었다. 콰직! 스파크가 튀었고, 조종석 내부에 경고등이 붉게 물들었다.
“『등쪽 장갑이 뚫렸습니다! 방열 장치 손상! 엔진 과부하 경고!』”
아린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강현은 온몸의 신경을 기체에 집중했다. 통증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그는 기체를 후방으로 급격히 틀었다. 드론들이 떼 지어 불꽃의 뒤를 쫓았다. 마치 맹수에게 달려드는 사냥개들 같았다. 강현은 그대로 버려진 고층 빌딩의 벽을 향해 돌진했다. 엄청난 속도로. 불꽃의 센서가 벽의 강도와 균열 상태를 빠르게 스캔했다. 위험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선택은 없었다.
“『대장! 위험해요!』”
아린의 비명이 찢어질 듯 들려왔다. 불꽃의 주먹이 녹슨 벽을 강타했다. 콰앙! 거대한 충격과 함께 빌딩의 상층부가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강현은 재빨리 기체를 돌려 거대한 낙하 잔해로부터 몸을 피했다. 드론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쏟아져 내리는 콘크리트와 철골 더미에 깔려 산산조각 났다.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강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스크린은 여전히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했다. 기체는 만신창이였다. 간신히 한숨 돌린 그때, 아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장… 저기… 아까 그 동력 반응이… 움직이고 있어요. 아주 크고… 빠르게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강현은 땀으로 축축한 손으로 스크린을 훑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폐허 저편, 먼지 구름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크기의… 육중한 기계였다. 드론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포식자’의 등장이었다.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나며 불꽃을 향해 똑바로 향했다.
강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은 이제 막 작은 싸움에서 이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진짜 사냥이 시작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