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내 삶에 들어온 지 어느덧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창가에 놓인 낡은 쿠션은 이제 그 아이의 체취로 깊이 배었고,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순간마다 작고 따뜻한 덩어리가 그 위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솜털처럼 가벼운 발소리, 허공을 가르며 흔들리는 꼬리, 그리고 때때로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초록색 눈동자. 이 모든 것이 내 메마른 일상에 스며들어 마치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색깔들을 되찾아 준 것 같았다.
별이, 나는 언제부턴가 그 아이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처럼, 어둡고 고요했던 내 마음에 불현듯 나타나 작은 빛을 던져주었기에. 우리는 말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따뜻한 우유를 그릇에 따를 때면, 별이는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와 촉촉한 코를 대고 핥았다. 그 작은 혀가 그릇을 스치는 소리는 내게 가장 평화로운 음악이었다. 내가 책을 읽을 때면, 별이는 내 무릎 위로 뛰어올라 온몸으로 나를 붙들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 나는 잊었던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는 것 같아 묘한 슬픔과 함께 안정감을 맛보았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침을 먹은 별이는 늘 그랬듯이 문을 열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맑고 청명한 하늘, 아직은 차가운 공기 속에 봄의 기운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별이는 내 발치에 머리를 비비고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섰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언덕 쪽으로 사라지는 작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늘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속 주문을 외웠다. 언젠가 그 아이는 나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의 나른함이 찾아왔을 때도 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창밖 풍경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보통 같으면 벌써 창틀에 앉아 냐옹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조용했다. 처음에는 ‘좀 늦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밤이 찾아왔을 때, 내 안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별이가 늘 먹던 사료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뚜껑을 덮어두긴 했지만, 그 아이가 오지 않는 한 이 밥은 쓸모가 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은 고요하기만 했다. “별아? 별아!” 목소리를 내어 불렀지만, 내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평소라면 귀신같이 내 부름에 달려왔을 텐데. 차가운 바람이 내 옷깃을 파고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한동안 창밖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혹시 사고라도 난 걸까? 아니면 다른 고양이들과 싸움이 붙었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더 좋은 보금자리를 찾은 걸까? 마지막 생각에 다다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나는 과거에 겪었던 여러 이별들을 떠올렸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예고 없는 부재, 기대했던 순간들의 무산. 늘 혼자였던 삶에 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이 불확실한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외로움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 빈 공간은 별이가 오기 전의 나보다 더 깊은 허전함을 안겨주었다.
밤은 깊어지고, 내 걱정은 밤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별이가 내 무릎 위에서 가르릉거리던 소리, 부드러운 털의 감촉, 작은 발톱이 내 옷자락을 살짝 걸던 느낌. 그 모든 순간들이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와 줘.’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녘 희미한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긁는 소리?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분명 현관문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틈 아래로 그림자가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 작게 웅크린 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별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별이는 힘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쪽 뒷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작은 앞발로 바닥을 짚으며 겨우 몸을 지탱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디를 다쳐 온 걸까? 나는 주저앉아 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따뜻했지만, 어딘가 차갑게 식어버린 몸. 그리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떨림.
집 안으로 들어와 별이를 부드러운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살펴보니 오른쪽 뒷발목 부근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엉겨 붙어 있었지만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약상자에서 소독약과 연고를 꺼냈다.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게 해줄게.” 나는 속삭이듯 말하며 조심스럽게 상처를 소독했다. 별이는 아픈 듯 몸을 움찔했지만,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초록색 눈으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 눈빛 속에는 고통과 함께 안도감이 섞여 있는 듯했다.
상처를 치료하고 나자, 별이는 지친 듯 담요 위에 몸을 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턱을 긁어주었다. 작게 ‘그르렁’ 하는 소리가 울렸다. 평소 같으면 힘찬 소리였겠지만, 지금은 미약하고 나른했다. 나는 별이의 곁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감당하며 살아가는지, 오늘 밤의 소동을 겪으며 비로소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쉽게 불안해하는 존재인지도.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작고 따뜻한 온기가 내 곁에 있었다.
별이는 내 손길 아래에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아이의 숨소리가 일정해질 때까지 곁을 지켰다. 상처 입은 작은 몸이 주는 안쓰러움과 함께, 무사히 돌아와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창밖은 어느새 새벽의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길고양이와의 대화는 여전히 말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을 나누었다. 이 작은 생명과의 연결은, 상처 입은 나 자신을 돌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부드럽게 별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속삭였다. “이제, 아무데도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 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