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어둠 속의 불꽃
메트로폴리스 7은 거대한 짐승과 같았다. 칠흑 제국의 심장부에 박힌 채, 끝없이 뻗어 오른 마천루의 숲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수많은 불빛으로 번쩍였고, 그 아래 도시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 잠식되어 있었다. 지상의 모든 희망은 저 위, 빛나는 첨탑 위에 사는 귀족들과 제국군 고위 장교들의 전유물이었다. 지후는 거미줄처럼 엉켜붙은 하층민 구역의 비좁은 골목길을 익숙하게 내달렸다. 낡은 철골 구조물 사이로 스며드는 습한 공기, 썩어가는 음식물 냄새와 이름 모를 금속이 타는 듯한 역한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젠장, 비가 또 오네.”
하늘은 마치 제국의 검은 독기를 들이마신 듯 탁했고, 이따금씩 섬광처럼 번개가 도시의 회색빛 하늘을 갈랐다. 빗방울은 산성비처럼 따가웠고, 지후의 낡은 후드 재킷을 금세 축축하게 적셨다. 그의 발걸음은 빗물 고인 웅덩이를 거침없이 가르며, 어둠 속에 숨겨진 작은 아지트를 향했다. ‘여명’이라 불리는 작은 반란의 불꽃. 그들의 은신처는 낡은 공장 지대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왔어?”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지후는 움찔했지만, 이내 익숙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아였다. 그녀는 늘 침착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여인이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지만, 그녀의 눈은 언제나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응. 감시단 순찰조 패턴이 약간 바뀌었어. 7구역 북쪽 루트가 강화됐더라.” 지후는 젖은 후드를 벗으며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군. 최근 제국이 7구역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더니.” 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춤추듯 빠르고 정확했다. “정보에 따르면, 제3 감시탑의 통제 시스템이 업데이트된 모양이야. 기존의 우리 방식으로는 침투가 어려울 수도 있어.”
“그럼 우리가 이대로 물러서야 한다는 거야?”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강훈이었다. 거친 외모와는 달리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내. 그의 육중한 몸은 좁은 아지트 안을 가득 채울 것만 같았다. 그는 낡은 아령을 들었다 놓으며 근육을 풀고 있었다.
“물러설 수는 없지.” 서아는 냉철하게 답했다. “하지만 무작정 돌진하는 건 자살 행위야. 지후, 유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조작하던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번개처럼 빨랐고, 그 작은 손에서 수많은 제국의 시스템이 무력화되어 왔다.
“음… 서아 언니 말이 맞아. 제3 감시탑은 단순한 감시탑이 아니었어. 7구역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는 핵심 노드와 연결되어 있더라. 기존의 감시 드론 패턴을 넘어서, 구역 내 모든 기기의 전력 공급을 조작할 수 있는 것 같아.” 유나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녀는 밤새워 정보를 분석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 빌어먹을 감시탑을 터뜨리면 7구역 전체가 암흑천지가 되는 건가?” 강훈이 흥분하며 물었다.
“아니, 그건 제국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야. 대규모 정전은 곧 대규모 진압의 빌미를 줄 뿐이지.” 지후가 강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는 7구역의 목줄을 완전히 끊어내야 해. 전력을 끊는 게 아니라, 제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맞아.” 서아가 지후의 말에 동조했다. “목표는 제3 감시탑의 ‘에테르 코어’ 탈취다. 단순한 데이터 코어가 아니야. 7구역의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는 인공 지능의 핵심. 그걸 손에 넣으면, 7구역의 모든 전력 시스템을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제국의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될 거야.”
“그걸 탈취하면, 7구역은 잠시 동안 제국의 눈과 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군요.” 유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가 계획하던 그 ‘광역 통신망 교란’도 가능해질 거예요!”
그것은 여명 조직의 오랜 숙원이었다. 칠흑 제국은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통제했다. 하지만 이 에테르 코어만 손에 넣는다면, 짧은 시간이나마 7구역 주민들에게 제국의 선전이 아닌, 진실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긴 어둠 속에서 평민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좋아. 그럼 계획은 간단해.” 서아가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7구역의 복잡한 구조와 제3 감시탑의 내부 도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강훈은 정면에서 경비 시스템을 교란하며 시선을 끌어. 유나는 그 틈을 타 감시탑의 외부 보안 시스템에 침투, 메인 게이트를 개방해. 그리고 지후, 네가 내부로 침투해서 에테르 코어를 탈취한다.”
“내부 경비는?” 강훈이 물었다.
“에테르 코어는 단순한 물리적 경비보다는 강력한 마법 방어막으로 보호되고 있어. 그리고 이 마법 방어막은 제국의 상위술사 계층이 사용하는 ‘정령의 감옥’과 유사한 패턴을 보여.” 서아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쉽게 뚫리지 않을 거야.”
“마법 방어막이라… 하, 평범한 평민들을 상대로 참 대단한 공력이시네, 제국 나리들은.” 지후는 혀를 찼다. 그는 한때 거리에서 가장 뛰어난 ‘흔적술사’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흔적을 읽고, 미세한 조작을 통해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제국에서는 ‘미신’이나 ‘하층민의 장난질’로 치부했지만, 이 작은 능력은 그가 수많은 위험에서 벗어나고, 또한 동료들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게는 뭔가 다른 게 필요해. 평범한 해킹으로는 안 될 거야.” 유나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래서 내가 필요하잖아.” 지후가 유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령의 감옥이든 나발이든, 결국엔 에너지가 흐르는 원리가 있을 거야. 그걸 내가 짚어내야지.”
그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빛났다.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라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은 존재했다. 지후는 그것을 읽고, 아주 미세하게 간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몸 안에 내재된, 자신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재능’이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칠흑 제국의 감시망은 늘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어. 우리는 작은 불꽃이지만, 이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해.” 서아가 차분하게 계획을 다시 한번 읊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맡겨만 줘!”
강훈, 유나, 그리고 지후의 목소리가 겹쳤다. 각자의 역할, 각자의 능력, 그리고 각자의 신념이 하나로 뭉쳐졌다. 거대한 칠흑 제국의 그림자 아래, 이 작은 불꽃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여명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
밤은 깊어지고, 비는 더욱 거세졌다. 7구역의 낡은 건물들은 폭우 속에서 더욱 초라해 보였다. 제3 감시탑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눈처럼, 붉은 감시등을 깜빡이며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훈, 준비됐지?” 서아가 통신으로 강훈에게 물었다.
“언제든 뛰어들 준비는 되어있지! 망할 제국놈들, 오늘 아주 박살을 내주마!” 강훈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섞여도 쩌렁쩌렁 울렸다.
“너무 흥분하지 마. 유인 작전의 핵심은 ‘교란’이야. 진짜 피해를 주는 건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아.” 지후가 침착하게 강훈에게 조언했다.
“젠장, 네놈은 너무 냉정해서 탈이야!” 강훈이 투덜거렸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미 감시탑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대한 강철 문이 굳게 닫힌 감시탑 정문 앞. 강훈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주먹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그것은 그가 가진 ‘강화술’의 흔적이었다. 육체를 초인적인 수준으로 강화시키는 능력. 제국군 최정예 병사들과 맞먹는 힘을 평범한 공사장 인부였던 그가 지니게 된 것은, 그 또한 오랜 압제 속에서 ‘각성’한 평범한 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간다!”
강훈은 거대한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그의 육중한 몸이 강철 문에 부딪히는 순간, 굉음과 함께 굳건했던 강철 문이 안쪽으로 움푹 파였다. 동시에 감시탑 곳곳에서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곧바로 수십 대의 감시 드론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미끼는 제대로 물었군.” 서아가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유나, 지금이야! 메인 게이트!” 지후가 외쳤다.
“알았어!”
유나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패드 위를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국의 보안 시스템은 상상 이상으로 견고했다. 일반적인 해킹 툴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유나는 달랐다. 그녀는 단순히 코드를 조작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 자체의 ‘사고 방식’을 읽어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얽히고설킨 보호막이 너무 많아! 한 번에 뚫기가… 으윽!” 유나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다. “침입자를 감지했어! 역추적 들어온다!”
“나한테 맡겨!”
지후는 유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유나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동시에 지후의 손끝에서 희미한 푸른 빛이 피어났다. 그것은 유나의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흘러들어가, 복잡하게 엉킨 암호들을 마치 물속을 헤엄치듯 유연하게 헤쳐 나갔다.
“지후 오빠…!” 유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후의 ‘흔적술’은 사물의 에너지 흐름을 읽고 조작하는 능력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무형의 정보나 데이터의 흐름까지도 감지하고 간섭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해킹은 단순한 컴퓨터 조작이 아니라, 거대한 정보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균열을 찾아내고, 그 균열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심어 넣는 행위와 같았다.
“거대한 시스템일수록,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그 에너지의 흔적을 짚어내면, 녀석들의 맹점은 뻔히 보여.”
지후의 눈빛이 마치 X레이처럼 홀로그램 화면을 꿰뚫는 듯했다. 그의 시야에는 복잡한 코드의 나열이 아니라, 흐릿한 빛의 강물처럼 보이는 정보의 흐름이 펼쳐졌다. 그는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약하고 얇은 부분을 찾아냈다.
콰앙!
강철 문이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울려 퍼졌다. 강훈이 마침내 정문을 박살 내고 내부로 진입한 모양이었다. 수많은 감시 드론과 소형 경비 로봇들이 강훈에게 달려들었지만, 그의 강화된 주먹과 발길질에 모두 부서져 나갔다. 그는 마치 춤을 추듯 경쾌하게, 그러나 압도적인 힘으로 제국의 경비 병력을 쓸어버렸다.
그 순간, 유나의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모든 보호막이 풀렸음을 알리는 녹색 신호가 번쩍였다.
“뚫렸어! 메인 게이트 개방!” 유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감시탑의 거대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마워, 지후 오빠!”
“별말씀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지후는 열린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내부 복도는 칠흑 제국의 위압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차갑고 무기질적인 강철 벽, 천장에 매달린 감시 카메라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경비 로봇들의 눈빛.
“강훈, 잠시만 더 버텨줘. 최대한 시선을 끌어야 해.” 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 내가 누구냐! 이놈의 몸뚱이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네놈들은 못 지나간다!” 강훈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통신망 너머에서 들려왔다.
지후는 복도를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민첩했다.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경비 로봇들의 순찰 경로를 완벽하게 파악하며 나아갔다. 그의 눈에는 제국의 시스템이 내뿜는 ‘에너지 흔적’이 보였다. 그것은 감시망의 사각 지대, 센서의 맹점, 그리고 경비 로봇의 동선에 숨겨진 미세한 흐름을 알려주는 지도와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감시탑의 가장 깊숙한 곳, 원형의 거대한 홀. 그 중앙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수정 같은 물체가 거대한 에너지장 안에 갇혀 있었다. ‘에테르 코어’. 그것이 7구역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심장이었다.
“이게… 정령의 감옥인가.”
에테르 코어를 감싸고 있는 에너지장은 단순한 물리적 방어막이 아니었다. 지후의 눈에는 마치 수많은 실타래가 엉킨 듯한 복잡한 에너지 흐름이 보였다. 일반적인 물리력으로는 깨뜨릴 수 없고, 단순한 해킹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고도로 정제된 마법 방어막이었다. 제국의 상위술사들이 수백 년간 쌓아 올린 지식의 정수.
“꽤 복잡한데.” 지후가 중얼거렸다.
“경고! 침입자 감지! 즉시 무장 해제하고 항복하라!”
홀의 사방에서 경비 로봇들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천장에서 거대한 강화 인간 병사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의 갑옷에는 칠흑 제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손에는 에테르 에너지를 압축하여 발사하는 제식 총기가 들려 있었다.
“항복? 그딴 건 내 사전에 없어!”
지후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단검은 평범해 보였지만, 지후의 에테르 흔적술이 깃들자 희미하게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비 로봇들이 쏘아대는 에너지탄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홀을 가로질렀다.
휘익! 파창!
지후의 단검이 경비 로봇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로봇들은 스파크를 튀기며 작동을 멈췄다. 하지만 수는 압도적이었다. 강화 인간 병사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저 녀석이 에테르 코어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지휘관으로 보이는 강화 인간 병사가 외쳤다.
동시에 그들의 갑옷에서 푸른 에너지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지후의 ‘흔적술’을 방해하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후는 눈에 보이는 에너지 흐름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다니!”
그때, 홀 저편의 벽면에서 굉음과 함께 구멍이 뚫렸다.
“야! 이 몸이 늦는 줄 알았지!”
강훈이었다. 그는 이미 수많은 경비 로봇과 강화 인간 병사들을 뚫고 홀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의 온몸에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강훈! 여긴 왜 왔어! 계획에 없었잖아!” 지후가 소리쳤다.
“네놈 혼자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하라는 게 제정신이냐! 동료가 위험하면 당연히 달려와야지!” 강훈은 거대한 강화 인간 병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주먹이 병사들의 방패를 산산조각 내고, 육탄전이 벌어졌다.
강훈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지후는 에테르 코어의 방어막 앞에 섰다. ‘정령의 감옥’. 수많은 실타래 같은 에너지 흐름이 뒤엉켜 있었다. 지후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몸 안의 에테르 흔적술이 최대치로 활성화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방어막을 스쳤다. 차가운 에너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실타래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각각의 실타래는 고유의 진동 주파수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보호막으로 인식했지만, 지후는 달랐다. 그는 수많은 개별적인 에너지 흐름을 읽어냈다. 그리고 그 흐름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틈’을 찾아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폭포수의 한가운데, 아주 작은 물줄기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찾았다!”
지후는 심호흡을 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푸른 에테르 흔적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 흔적을 에너지 실타래의 가장 약한 틈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방어막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강화 인간 병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놈이 뭘 하는 거지?!”
“방어막이… 흔들린다!”
지후는 온몸의 에너지를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그의 온 신경이 에테르 코어의 방어막에 연결된 듯했다. 그가 밀어 넣은 작은 에너지의 흐름이 방어막 내부에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방어막의 균형이 깨지고, 내부 에너지 흐름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파지직!
에너지 방어막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곧이어, 금이 가는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에너지 방어막이 산산조각 나며 푸른빛의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성공했어!”
강훈이 거대한 병사를 내동댕이치며 환호했다.
지후는 망설임 없이 에테르 코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푸른 수정 같은 코어를 감싸 쥐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7구역의 모든 에너지 흐름이 그의 손끝에서 통제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는 코어를 재킷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젠장! 에테르 코어를 탈취당했다! 즉시 탈환하라!”
지휘관의 절규와 함께, 더 많은 경비 로봇들과 강화 인간 병사들이 홀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아! 유나! 임무 완료! 탈출 준비!” 지후가 외쳤다.
“알았어! 7구역 모든 통신망 개방! 긴급 메시지 송출 시작한다!” 유나의 목소리에서 기쁨과 흥분이 섞여 있었다.
“강훈! 지후를 엄호해! 탈출 경로는 내가 열어놓을게!” 서아의 냉철한 지시가 이어졌다.
강훈은 거대한 몸으로 지후의 앞을 막아섰다.
“가! 이 몸이 여기서 버텨줄 테니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같이 나가야지!” 지후가 소리쳤다.
그때, 천장에서 거대한 빔이 쏟아져 내려왔다. 제국의 최정예 병사들이 사용하는 에너지 무기였다. 지후는 강훈의 어깨를 밀치며 피했지만, 빔은 그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크윽…!”
“지후!” 강훈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괜찮아! 어서 탈출 경로로 가자!”
지후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에테르 코어를 쥐고 있자, 7구역 전체의 에너지가 마치 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코어는 단순한 제어 장치가 아니라, 7구역의 생명줄과도 같다는 것을.
그들은 필사적으로 싸우며 탈출 경로를 향해 나아갔다. 수많은 감시 드론과 경비 로봇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지후의 에테르 흔적술과 강훈의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는 모두 무력했다.
마침내, 그들은 감시탑의 옥상에 도달했다. 빗줄기는 여전히 쏟아졌고, 바람은 거셌다. 옥상에는 서아가 조작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비행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타!” 서아가 비행정 안에서 손짓했다.
그들이 비행정에 오르자마자, 제3 감시탑 전체가 굉음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젠장, 제국 놈들이 감시탑 자폭 시스템을 가동했어!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는 모양이야!” 서아가 비행정을 조작하며 외쳤다.
“그럼 우리가 헛수고한 거야?” 강훈이 소리쳤다.
“아니!” 지후가 외쳤다. 그의 손에 쥐어진 에테르 코어에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7구역의 통제권은 이제 우리 손에 있어! 이놈들이 뭘 하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거야!”
비행정은 빗줄기를 가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래에서는 제3 감시탑이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거대한 불꽃을 토해냈다. 그 불꽃은 메트로폴리스 7의 어둠 속에서 잠시 동안 강렬하게 빛났다가, 이내 칠흑 같은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7구역 전역의 홀로그램 스크린과 통신 단말기에서 제국의 선전 방송이 끊겼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투박하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칠흑 제국의 거짓에 속지 마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여명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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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후는 비행정 창밖으로 폭발하는 감시탑을 바라봤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겨우 시작일 뿐이야. 하지만…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거야.”
칠흑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아주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은, 이 도시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여명은 이제, 막 밝아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