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나직한 시간만이 흐르는 듯했다. 오래된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골목 끝, 낡았지만 어딘가 품위가 느껴지는 작은 공방 앞에 선 박형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공방의 유리창은 어둠에 잠긴 채 무언가 불길한 침묵을 머금고 있었다.
“하아… 또 밀실이라니. 이 동네는 왜 이런 사건만 터지는 거야.”
박형사가 헛기침을 하며 옷깃을 여몄다. 공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장 보존을 위해 폴리스 라인이 쳐진 주위로는 이미 몇몇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이어지다 이내 차분하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한서준입니다.”
“서준 씨, 박형사예요. 또… 또 밀실이에요.” 박형사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이번엔 더 심해요. 유명한 시계 장인 김지훈 씨 공방에서 벌어졌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걸쇠로 잠겨 있었죠. 열쇠는 안쪽에 그대로 꽂혀있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형사는 그 침묵이 서준이 머릿속으로 현장을 재구성하는 시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음… 김지훈 장인이시라면, 아주 섬세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만.” 서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그분이라면, 평소에도 작업실 문을 굳게 잠그고 작업에 몰두하셨을 테죠. 마치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듯이.”
“네, 맞아요. 동네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합니다. 게다가 유독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다고….” 박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은 독극물입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대로 쓰러지셨어요. 아마도 즐겨 마시던 약차였겠죠. 시신 주변에는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었고, 마치 잠들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가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날씨군요.”
서준의 목소리에는 항상 기묘한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살인 사건 현장이라는 말에도, 그의 말투는 늘 차분하고, 오히려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한 힘이 있었다. 박형사는 피식 웃었다. 그에게 살인 현장은 어쩌면 그저 흥미로운 퍼즐 조각이 놓인 거대한 놀이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 골목 초입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한서준은 주변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하늘색 니트 가디건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안경 너머로 지적이고 온화한 눈빛. 그의 손에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이 들려 있었다. 꼭 소풍을 나온 예술가 같았다.
“서준 씨, 오셨군요.” 박형사가 그를 맞았다.
서준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공방의 유리창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유리창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능숙하게 통제선을 넘어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방 내부는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 같았다. 벽면 가득 오래된 시계 부품들과 정교한 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고, 작업대 위에는 이제 막 조립을 시작하려던 듯한 미완성 시계가 조용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퀴퀴한 나무 향과 기름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희미한 허브향이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 작업대 앞에 쓰러진 김지훈 장인의 모습은 박형사의 말대로 평화로웠다.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 대신, 마치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왼손은 찻잔을 잡으려다 만 듯 허공에 떠 있었고, 오른손은 작업대 위, 닳고 닳은 오래된 돋보기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준은 그 어떤 것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발걸음 소리조차 죽인 채, 공방의 구석구석을 시선으로 더듬었다. 벽에 걸린 시계들, 선반 위의 도구들, 바닥에 깔린 카펫의 문양까지. 그의 눈은 살아있는 현미경처럼 모든 것을 스캔하는 듯했다.
“박형사님, 피해자분이 주로 작업하시던 시간대가 정해져 있었나요?” 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저녁 무렵부터 자정까지가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하시는 걸 좋아하셨대요.”
“이 찻잔은… 늘 같은 잔을 사용하셨을까요?”
“아마도요? 이 공방에서는 늘 이 잔만 사용했다고 해요. 워낙 규칙적인 분이셨으니.”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응시하다가, 문득 공방 한쪽 벽에 걸린 큼지막한 괘종시계에 멈췄다. 낡았지만 윤기가 흐르는 나무틀, 섬세한 문양의 추, 그리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침과 분침. 그 시계는 다른 시계들과 달리 멈춰 있었다. 정확히는, 10시 30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이 시계… 특이하네요.” 서준이 중얼거렸다.
박형사가 다가왔다. “어떤 점이요? 다른 시계들도 장인 분이 만들었을 텐데요.”
“네, 다른 시계들은 모두 작동 중입니다. 하지만 이 괘종시계만 멈춰있습니다. 게다가…” 서준은 괘종시계 옆 벽면과 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 시계는 다른 시계들과 달리 벽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 설치되었다가 떼어진 듯한 흔적이 보입니다.”
박형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가요? 저는 전혀 몰랐네요.”
서준은 스케치북을 꺼내 괘종시계와 그 주변을 섬세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연필 끝은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괘종시계의 모든 특징을 담아냈다. 멈춰선 시침과 분침, 그 주변의 미세한 흠집, 그리고 시계 아래쪽 바닥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끌림 자국까지.
“김지훈 장인께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고 했죠? 작업 시간, 차 마시는 시간, 그리고… 문을 잠그는 시간까지도요?”
“네, 그랬을 겁니다. 워낙 습관화된 분이셨으니까요.”
서준이 고개를 들어 공방 문을 바라보았다. 안쪽에는 여전히 낡은 놋쇠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열쇠 구멍 아랫부분, 나무 문틈의 아주 미세한 틈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종잇장처럼 얇은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가 빠져나간 듯한, 희미하고 길쭉한 흔적이 보였다. 아주 미세해서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괘종시계는 김지훈 장인이 가장 아끼던 시계였을 겁니다.” 서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일 저녁, 그는 이 시계의 태엽을 감고, 그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을 겁니다. 그리고 시계가 정해진 시간을 알리면, 자신의 세계를 굳게 닫듯 문을 잠갔겠죠.”
박형사는 서준의 말에 집중했다. 그의 추리가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기묘하게도 납득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범인은 김지훈 장인의 그런 습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준이 괘종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럼… 범인이 공방 안에 숨어 있다가 장인이 독차를 마시고 쓰러진 뒤에,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는 건가요?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겼고,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형사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아뇨, 범인은 안에 숨어있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차에 독을 넣고 장인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공방 문이 잠기기 전에 유유히 이곳을 떠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괘종시계에 꽂혔다.
“그리고 그 괘종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었던 겁니다. 김지훈 장인은 자신의 섬세한 장인 정신을 발휘해, 그 시계에 아주 특별한 장치를 숨겨 두었죠. 아마도 특정한 시간이 되면 작동하는, 일종의 태엽식 자동 잠금 장치 말입니다. 범인은 그 장치를 이용한 겁니다. 김지훈 장인이 평소처럼 문을 잠그지 않고, 독차를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동안, 범인은 그 시계에 아주 얇고 유연한 막대, 예를 들면 시계 수리에 사용되는 가는 강철 와이어 같은 것을 교묘하게 연결했을 겁니다.”
박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계에 연결해서… 문을 잠갔다고요?”
“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 장인이 독차를 마시고 쓰러지는 동안, 괘종시계는 예정된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정확히 10시 30분이 되자, 시계에 연결된 와이어가 안쪽 문에 꽂힌 열쇠를 돌려 문을 잠그고, 동시에 그 와이어는 시계 안쪽으로 감겨 들어가면서 괘종시계의 태엽을 멈추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괘종시계가 10시 30분에 멈춰 서 있는 것이죠. 그리고 문틈의 이 희미한 흔적은, 시계 안으로 감겨 들어가기 직전, 와이어가 문틈을 스치며 남긴 아주 작은 증거입니다.”
서준은 괘종시계 하단의 아주 작은 틈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시계들과 달리, 이 괘종시계의 하단에는 미세하게 벌어진 틈이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아주 가느다란 금속 마찰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범인은 이 장치를 미리 파악하고, 장인이 즐겨 마시는 차에 독을 넣은 뒤, 문이 잠기기 전에 공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시계는… 범인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준 것이죠.”
박형사는 할 말을 잃은 채 서준과 괘종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살인 사건 현장이었지만, 서준의 설명은 마치 하나의 아름답고도 섬뜩한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듯했다. 평온한 죽음, 완벽한 밀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정교한 기계장치의 비밀.
“그렇다면… 범인은 이 장치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그 와이어 같은 건 어디에 숨겨두었던 거죠?”
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작업대 위, 장인의 손 옆에 놓인 오래된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돋보기의 금속 테두리는 매끄럽게 잘 연마되어 있었지만, 한쪽 귀퉁이에는 미세한 흠집과 함께 아주 얇은 실이 끊어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 돋보기는 장인이 늘 손에 쥐고 사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돋보기의 손잡이 부분은… 다른 부품들과 달리 틈이 있어 보입니다. 마치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요.”
서준의 시선은 돋보기에서 다시 김지훈 장인의 얼굴로 향했다. 고통 없는 죽음,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과 함께였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잔혹한 트릭, 그리고 그 트릭을 읽어낸 또 다른 천재의 시선이 고요한 공방에 감돌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정교한 장치를 사용한 범인을 찾아내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이미 그 실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듯 보였다. 공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오직 시간의 흐름만이 섬세한 장인 정신이 깃든 공방을 조용히 감싸 안는 듯했다.고요하고 나직한 시간만이 흐르는 듯했다. 오래된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골목 끝, 낡았지만 어딘가 품위가 느껴지는 작은 공방 앞에 선 박형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공방의 유리창은 어둠에 잠긴 채 무언가 불길한 침묵을 머금고 있었다.
“하아… 또 밀실이라니. 이 동네는 왜 이런 사건만 터지는 거야.”
박형사가 헛기침을 하며 옷깃을 여몄다. 공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장 보존을 위해 폴리스 라인이 쳐진 주위로는 이미 몇몇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이어지다 이내 차분하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한서준입니다.”
“서준 씨, 박형사예요. 또… 또 밀실이에요.” 박형사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이번엔 더 심해요. 유명한 시계 장인 김지훈 씨 공방에서 벌어졌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걸쇠로 잠겨 있었죠. 열쇠는 안쪽에 그대로 꽂혀있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형사는 그 침묵이 서준이 머릿속으로 현장을 재구성하는 시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음… 김지훈 장인이시라면, 아주 섬세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만.” 서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그분이라면, 평소에도 작업실 문을 굳게 잠그고 작업에 몰두하셨을 테죠. 마치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듯이.”
“네, 맞아요. 동네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합니다. 게다가 유독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다고….” 박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은 독극물입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대로 쓰러지셨어요. 아마도 즐겨 마시던 약차였겠죠. 시신 주변에는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었고, 마치 잠들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가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날씨군요.”
서준의 목소리에는 항상 기묘한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살인 사건 현장이라는 말에도, 그의 말투는 늘 차분하고, 오히려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한 힘이 있었다. 박형사는 피식 웃었다. 그에게 살인 현장은 어쩌면 그저 흥미로운 퍼즐 조각이 놓인 거대한 놀이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 골목 초입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한서준은 주변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하늘색 니트 가디건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안경 너머로 지적이고 온화한 눈빛. 그의 손에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이 들려 있었다. 꼭 소풍을 나온 예술가 같았다.
“서준 씨, 오셨군요.” 박형사가 그를 맞았다.
서준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공방의 유리창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유리창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능숙하게 통제선을 넘어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방 내부는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 같았다. 벽면 가득 오래된 시계 부품들과 정교한 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고, 작업대 위에는 이제 막 조립을 시작하려던 듯한 미완성 시계가 조용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퀴퀴한 나무 향과 기름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희미한 허브향이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 작업대 앞에 쓰러진 김지훈 장인의 모습은 박형사의 말대로 평화로웠다.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 대신, 마치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왼손은 찻잔을 잡으려다 만 듯 허공에 떠 있었고, 오른손은 작업대 위, 닳고 닳은 오래된 돋보기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준은 그 어떤 것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발걸음 소리조차 죽인 채, 공방의 구석구석을 시선으로 더듬었다. 벽에 걸린 시계들, 선반 위의 도구들, 바닥에 깔린 카펫의 문양까지. 그의 눈은 살아있는 현미경처럼 모든 것을 스캔하는 듯했다.
“박형사님, 피해자분이 주로 작업하시던 시간대가 정해져 있었나요?” 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저녁 무렵부터 자정까지가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하시는 걸 좋아하셨대요.”
“이 찻잔은… 늘 같은 잔을 사용하셨을까요?”
“아마도요? 이 공방에서는 늘 이 잔만 사용했다고 해요. 워낙 규칙적인 분이셨으니.”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응시하다가, 문득 공방 한쪽 벽에 걸린 큼지막한 괘종시계에 멈췄다. 낡았지만 윤기가 흐르는 나무틀, 섬세한 문양의 추, 그리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침과 분침. 그 시계는 다른 시계들과 달리 멈춰 있었다. 정확히는, 10시 30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이 시계… 특이하네요.” 서준이 중얼거렸다.
박형사가 다가왔다. “어떤 점이요? 다른 시계들도 장인 분이 만들었을 텐데요.”
“네, 다른 시계들은 모두 작동 중입니다. 하지만 이 괘종시계만 멈춰있습니다. 게다가…” 서준은 괘종시계 옆 벽면과 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 시계는 다른 시계들과 달리 벽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 설치되었다가 떼어진 듯한 흔적이 보입니다.”
박형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가요? 저는 전혀 몰랐네요.”
서준은 스케치북을 꺼내 괘종시계와 그 주변을 섬세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연필 끝은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괘종시계의 모든 특징을 담아냈다. 멈춰선 시침과 분침, 그 주변의 미세한 흠집, 그리고 시계 아래쪽 바닥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끌림 자국까지.
“김지훈 장인께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고 했죠? 작업 시간, 차 마시는 시간, 그리고… 문을 잠그는 시간까지도요?”
“네, 그랬을 겁니다. 워낙 습관화된 분이셨으니까요.”
서준이 고개를 들어 공방 문을 바라보았다. 안쪽에는 여전히 낡은 놋쇠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열쇠 구멍 아랫부분, 나무 문틈의 아주 미세한 틈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종잇장처럼 얇은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가 빠져나간 듯한, 희미하고 길쭉한 흔적이 보였다. 아주 미세해서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괘종시계는 김지훈 장인이 가장 아끼던 시계였을 겁니다.” 서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일 저녁, 그는 이 시계의 태엽을 감고, 그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을 겁니다. 그리고 시계가 정해진 시간을 알리면, 자신의 세계를 굳게 닫듯 문을 잠갔겠죠.”
박형사는 서준의 말에 집중했다. 그의 추리가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기묘하게도 납득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범인은 김지훈 장인의 그런 습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준이 괘종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럼… 범인이 공방 안에 숨어 있다가 장인이 독차를 마시고 쓰러진 뒤에,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는 건가요?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겼고,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형사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아뇨, 범인은 안에 숨어있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차에 독을 넣고 장인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공방 문이 잠기기 전에 유유히 이곳을 떠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괘종시계에 꽂혔다.
“그리고 그 괘종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었던 겁니다. 김지훈 장인은 자신의 섬세한 장인 정신을 발휘해, 그 시계에 아주 특별한 장치를 숨겨 두었죠. 아마도 특정한 시간이 되면 작동하는, 일종의 태엽식 자동 잠금 장치 말입니다. 범인은 그 장치를 이용한 겁니다. 김지훈 장인이 평소처럼 문을 잠그지 않고, 독차를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동안, 범인은 그 시계에 아주 얇고 유연한 막대, 예를 들면 시계 수리에 사용되는 가는 강철 와이어 같은 것을 교묘하게 연결했을 겁니다.”
박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계에 연결해서… 문을 잠갔다고요?”
“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 장인이 독차를 마시고 쓰러지는 동안, 괘종시계는 예정된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정확히 10시 30분이 되자, 시계에 연결된 와이어가 안쪽 문에 꽂힌 열쇠를 돌려 문을 잠그고, 동시에 그 와이어는 시계 안쪽으로 감겨 들어가면서 괘종시계의 태엽을 멈추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괘종시계가 10시 30분에 멈춰 서 있는 것이죠. 그리고 문틈의 이 희미한 흔적은, 시계 안으로 감겨 들어가기 직전, 와이어가 문틈을 스치며 남긴 아주 작은 증거입니다.”
서준은 괘종시계 하단의 아주 작은 틈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시계들과 달리, 이 괘종시계의 하단에는 미세하게 벌어진 틈이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아주 가느다란 금속 마찰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범인은 이 장치를 미리 파악하고, 장인이 즐겨 마시는 차에 독을 넣은 뒤, 문이 잠기기 전에 공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시계는… 범인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준 것이죠.”
박형사는 할 말을 잃은 채 서준과 괘종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살인 사건 현장이었지만, 서준의 설명은 마치 하나의 아름답고도 섬뜩한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듯했다. 평온한 죽음, 완벽한 밀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정교한 기계장치의 비밀.
“그렇다면… 범인은 이 장치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그 와이어 같은 건 어디에 숨겨두었던 거죠?”
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작업대 위, 장인의 손 옆에 놓인 오래된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돋보기의 금속 테두리는 매끄럽게 잘 연마되어 있었지만, 한쪽 귀퉁이에는 미세한 흠집과 함께 아주 얇은 실이 끊어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 돋보기는 장인이 늘 손에 쥐고 사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돋보기의 손잡이 부분은… 다른 부품들과 달리 틈이 있어 보입니다. 마치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요.”
서준의 시선은 돋보기에서 다시 김지훈 장인의 얼굴로 향했다. 고통 없는 죽음,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과 함께였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잔혹한 트릭, 그리고 그 트릭을 읽어낸 또 다른 천재의 시선이 고요한 공방에 감돌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정교한 장치를 사용한 범인을 찾아내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이미 그 실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듯 보였다. 공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오직 시간의 흐름만이 섬세한 장인 정신이 깃든 공방을 조용히 감싸 안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