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서기 2342년, 서울. 거대한 마천루들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유영하는 에어 택시들은 빛의 잔상을 남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이 데이터와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숨 쉬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로 무장한 미래라 할지라도, 인간의 악의와 그로 인한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시안 씨, 급합니다. 제발 좀 와주십시오!”

시안의 개인 정보 단말기, ‘파편(Fragment)’에서 지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안은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고대 천문학 자료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끄고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서지우 경위님, 또 무슨 ‘불가사의’를 가져오셨습니까? 저는 이제 당신의 사건 파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시안은 서율시 외곽, 버려진 구름다리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한가로이 우주를 관측하고 있었다. 그의 은신처는 낡은 재활용 부품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가 구축한 초고성능 연산 시스템만큼은 그 어떤 정부 기관보다 뛰어났다.

“불가사의는 맞습니다만, 이번엔 진짜입니다! 현 인류 최고의 생체 공학자, 강동환 박사가 자신의 ‘지식의 구슬’ 안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밀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지우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강동환 박사라… 그 오렌지색 ‘구슬’에서 말입니까? 흥미롭군요.”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동환 박사의 ‘지식의 구슬’은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다. 완벽한 생체 순환 시스템과 자율 에너지를 갖춘, 지름 20미터의 거대한 오렌지색 플라즈마-글래스 돔. 외부는 물론 내부의 모든 환경을 박사 단 한 사람에게 최적화시킨 폐쇄형 개인 연구실이자 거주 공간이었다.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박사는 그 안에서 은둔하며 인류의 다음 단계 진화를 연구한다고 공언했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센서는 외부 침입자가 없었다고 보고하고, 내부 시스템 기록에도 박사 외에 그 어떤 생체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는 박사의 생체 정보가 없으면 절대 열리지 않는 에어록 뿐입니다. 게다가, 살해당한 박사의 시신 근처에서는 어떠한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입니다.” 지우는 정보를 빠르게 쏟아냈다.

시안은 자신의 무릎에 놓인 오래된 책장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완벽한 밀폐라… 그것 참 재미있군요. 보내주십시오. 좌표.”

에어 택시가 지상 300층에 위치한 지우의 특수 수사대 관제소 옥상에 착륙하자, 지우가 한숨을 내쉬며 시안을 맞이했다.

“오셨군요, 시안 씨. 이번엔 당신도 머리 좀 깨나 아프실 겁니다.”

시안은 지우의 말에 대꾸 없이, 에어 택시에서 내려 그를 따라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는 단숨에 목적지로 향했고, 거대한 플라즈마-글래스 벽 너머로 오렌지색 빛을 발하는 구형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동환 박사의 ‘지식의 구슬’이었다. 그 주위는 이미 특수 수사대 요원들과 감식반으로 북적였지만, 아무도 구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박사의 생체 정보가 없으니, 이 에어록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강제로 해킹할 수도 없는 것이, 그 순간 구슬 내 모든 데이터는 자폭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지우가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저희는 외부 감식으로만 진행 중입니다. 구슬 내부는 특수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시안은 지우가 건넨 단말기를 받아들었다. 단말기 화면에는 구슬 내부의 전경이 3D 홀로그램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오렌지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돔형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생체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된 연구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주위로 희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강동환 박사는 그 연구용 테이블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작고 정교한 원형의 상처가 선명했다. 마치 레이저로 도려낸 듯한 완벽한 원형의 구멍.

“피해자의 사인은 무엇입니까?” 시안이 물었다.

“고밀도 에너지빔에 의한 내부 장기 파괴. 즉사입니다. 어떤 종류의 무기인지조차 특정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시안은 홀로그램 영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강동환 박사의 시신과 주변 환경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시선은 구슬의 플라즈마-글래스 벽면, 그리고 그 벽면에 내장된 수많은 작은 에너지 셀과 홀로그램 프로젝터에 오래 머물렀다.

“이 구슬의 플라즈마-글래스는 단순한 유리벽이 아니죠?” 시안이 불쑥 질문했다.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박사가 직접 개발한 이중 구조 플라즈마-글래스입니다. 외부 에너지를 흡수하고 내부의 생체 시스템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율적으로 공급하며,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침입은 물론이고, 모든 종류의 전자기파 공격도 차단합니다. 게다가… 내부 환경 제어와 홀로그램 투사 기능도 있습니다. 완벽한 개인 맞춤형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홀로그램 투사… 그렇군요.” 시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 구슬의 방어 시스템은 훌륭합니다. 외부에서 어떤 것도 침투할 수 없죠. 하지만…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은 어떻습니까?”

지우는 시안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부에서요? 박사가 스스로를 공격할 리는… 그리고 흉기는 여전히 없습니다.”

“흉기는 없죠. 왜냐하면, 흉기는 지금도 저기 있기 때문입니다.” 시안은 홀로그램 구슬의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 흉기는 살인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본래 기능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지우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시안은 단말기를 지우에게 돌려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강동환 박사의 ‘지식의 구슬’은 단순히 플라즈마-글래스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체적인 에너지 생성 및 조절 시스템, 그리고 고도로 정밀한 홀로그램 투사 장치들을 내장하고 있죠. 이 장치들은 구슬 내부에 완벽한 생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빛, 열, 심지어 특정 파장의 소리까지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차 확신에 차올랐다. “박사의 등에서 발견된 상처를 기억하십니까? 고밀도 에너지빔에 의한 완벽한 원형의 구멍. 일반적인 무기로는 불가능한 정교함입니다. 하지만, 구슬의 ‘환경 제어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특히, 플라즈마-글래스에 내장된 ‘다차원 광학 조절 장치’는 특정 지점으로 에너지를 극도로 수렴시켜 집중 투사할 수 있습니다.”

지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설마… 구슬 자체가 무기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합니다. 누군가 외부에서 이 ‘지식의 구슬’의 시스템에 침투했습니다. 강동환 박사가 자신의 생체 정보를 이용해 에어록을 열고 들어간 후, 시스템 해킹을 통해 구슬의 ‘환경 제어 시스템’을 잠시 동안 무기로 전환한 겁니다. 구슬의 플라즈마-글래스 벽면에 내장된 광학 조절 장치들이 일제히 박사를 향해 집중 에너지를 발사했고, 그 에너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처럼 박사를 꿰뚫었을 겁니다.”

시안은 홀로그램 구슬의 오렌지색 벽면을 손가락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살인이 완료되자마자, 해커는 시스템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습니다. 에너지 조절 장치들은 다시 빛과 열을 분산하는 본래의 평화로운 기능으로 돌아갔겠죠. 그래서 아무런 흉기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겁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이 완성된 거죠.”

지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한 사람의 주거 공간을 살해 도구로 사용하다니…”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히려 완벽한 살인을 위한 최고의 도구죠. 어차피 모든 시스템은 ‘내부’에서 작동했으니까요. 이 구슬은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혹은 강동환 박사 자신이 만든 백도어였을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살인자가 이 구슬의 모든 기능과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박사와 아주 가까운 관계이거나, 박사의 연구를 공유하고 있던 인물일 겁니다. 이제 우리의 수사는 ‘누가’ 그 시스템을 해킹했는지를 찾아내는 것으로 바뀝니다.”

지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겨우 몇 분 만에… 당신은 또다시 이 불가능한 밀실을 깨뜨렸군요. 이시안 씨, 정말 당신은… 천재입니다.”

시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단말기를 지우에게 건넸다. “재미있는 구경이었으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이제 ‘누가’ 했는지 찾아내는 일은 당신의 몫입니다. 저는 다시 제 우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우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다시 에어 택시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뒤돌아선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처럼 이 도시의 복잡한 첨단 미스터리와는 동떨어진, 고독하고도 찬란한 별빛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오렌지색 구슬은 이제 더 이상 신비로운 연구 공간이 아닌, 차가운 살인의 현장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시안은 또 다른 ‘불가사의’를 찾아 헤맬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