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서울은 언제나 잠들지 않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고 솟아오른 마천루의 첨탑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빛을 토해냈고, 그 아래를 흐르는 에어카의 행렬은 혈관 속 전자혈액처럼 끊임없이 움직였다. 도시의 심장은 쿵, 쿵, 쿵, 거대한 엔진처럼 박동하며 수많은 생명체와 데이터를 토해내고 삼켰다.
이 혼돈의 심장부 한구석, 뒷골목의 그림자처럼 초라한 건물 옥탑방.
이서진은 빛바랜 홀로그램 벽화를 등지고 앉아 낡은 컵에 담긴 식어버린 합성 커피를 마셨다. 그의 눈동자는 방 안을 가득 채운 구형 디스플레이와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을 미끄러지듯 스캔하고 있었다. 밖의 세상이 최첨단과 환상으로 번쩍이는 동안, 서진의 공간은 잊힌 과거의 유물처럼 고요했다. 모든 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어정쩡한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치잉—”
오래된 통신기가 거친 전자음을 내며 울렸다. 서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통신기의 주소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그중 대다수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서진! 대체 연락은 왜 이렇게 어렵게 해? 요새 네 발자국 추적하는 게 네오 서울 블랙마켓 데이터보다 더 비싸다고!”
김준호 경감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추적당하고 싶지 않아서요. 경감님은 언제쯤 그 기본적인 사실을 이해할까요?” 서진은 대꾸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젠장, 농담할 기분 아니야. 급해. 너 아니면 안 되는 사건이 터졌어.”
“매번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죠. 그러면서도 제 수고비에 대해선 매번 앓는 소리를 내더군요.”
“이번엔 달라! 강태호야. 네오젠 바이오테크의 강태호.”
서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강태호. 네오젠 바이오테크의 CEO. 차세대 생체 이식 기술의 선두 주자이자, 네오 서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 그의 이름이라면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치부될 리 없었다.
“그래서요? 그 양반이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시비라도 붙었답니까?” 서진은 비아냥거렸다.
“죽었어. 그의 펜트하우스 사무실에서. 그것도… 밀실에서.” 준호의 목소리에 짙은 절망감이 배어 나왔다.
“밀실이라… 흥미롭군요. 자세히 설명해보시죠.”
“젠장, 네오젠 타워 100층, 그의 개인 펜트하우스야. 경비가 삼엄하다 못해 파리 한 마리도 못 들어갈 정도지. 모든 출입구는 다중 생체 인식 보안 시스템으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어. 창문은 방탄 강화 유리로 덮여 있었고, 강태호의 개인 공간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어. 내부 감시 시스템은 24시간 풀 가동 중이었고, 마지막으로 기록된 건 강태호 혼자 사무실에 들어가는 모습뿐이야.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서가 그를 발견했을 땐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지. 머리에 스마트 건으로 한 발.”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초동 수사 결과는 자살로 기울고 있어. 권총은 그의 소유였고, 지문도 그의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강태호가 자살할 이유가 없어. 내 직감은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어. 이서진, 이건 네 분야잖아.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 그 뒤에 숨겨진 트릭… 네가 아니면 이건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을 거야.”
서진은 잠시 침묵했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에 기계적인 차가움이 맴돌았다.
“수고비는요?”
“이번엔 네가 부르는 대로 줄게. 네가 원하는 데이터든, 네가 원하는 코인이든.” 준호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좋아요. 그럼… 한 시간 후에 네오젠 타워에서 보죠. 강태호의 펜트하우스에서.”
—
네오젠 타워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는 거대한 수정 기둥 같았다. 거대한 로비는 홀로그램 분수와 인공 지능 비서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득했고, 그 위압적인 분위기는 인간의 나약함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듯했다. 서진은 낡은 코트 차림으로 그 위엄 넘치는 공간을 통과했다. 주변의 시선은 그를 향해 묘한 경멸과 호기심을 동시에 보냈다.
100층, 강태호의 펜트하우스 앞은 이미 수많은 과학수사대와 보안 요원들로 북적였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홀로그램 선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복잡한 데이터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서진은 그 혼란 속을 거침없이 헤쳐 나갔다.
“여기야. 이서진.”
준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밤샘 근무로 몹시 지쳐 보였다.
“자살로 결론 내려고 안달이더군. 하지만 난 포기 못 해. 강태호는 그런 놈이 아니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리 없어. 아무런 유언도, 흔적도 없이. 게다가… 이런 식으로?”
준호는 강화된 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지문, 홍채, 그리고 음성 인식까지 세 가지 생체 보안을 거쳐야만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서진은 말없이 문 앞에 섰다. 준호가 보안 절차를 진행하자, 문은 부드러운 금속음을 내며 열렸다.
“안에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완벽한 밀실이라는 게 뭔지.” 준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서진은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펜트하우스 사무실은 극도로 절제된 미학으로 꾸며져 있었다. 짙은 회색과 무광택 금속이 주를 이루는 공간에는 불필요한 장식이 단 하나도 없었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네오 서울의 실시간 금융 데이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투명한 데스크 위에는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정교한 3D 모델링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강태호가 있었다.
그는 최고급 인체 공학 의자에 기댄 채 싸늘한 시신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왼쪽 관자놀이에는 선명한 총상이 있었고, 그의 손에서 떨어진 듯한 스마트 건이 발치에 놓여 있었다. 방 안에는 혈흔 하나 튀지 않았고,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완벽한 정적이었다.
서진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공기 중의 미세 먼지 입자, 조명의 각도, 책상 위 데이터 패드의 미묘한 잔상, 심지어 강태호의 죽은 눈동자에 비친 마지막 풍경까지.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분석했다.
“어때? 자살인가? 아니면… 정말 유령이라도 다녀갔나?” 준호가 서진의 옆에 다가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서진은 강태호의 시신을, 그리고 그 주변의 모든 것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조롱도, 비웃음도 아닌, 무언가를 간파했다는 듯한 날카로운 미소였다.
“유령은 맞습니다만.” 서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었다.
준호가 숨을 죽였다.
“이 유령은 방 안에 들어온 게 아니라…” 서진은 강태호의 시신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빛났다.
“**방 안에 갇혀 있던 유령**이군요.”
모두의 시선이 얼어붙었다. 펜트하우스의 첨단 시스템이 내뿜는 조명 아래, 서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가 던진 한마디는 강태호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상식을 뒤엎는 선언이었다. 밀실 살인 사건의 진짜 서막이 막 열린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