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아이기스 요새의 낙일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거대한 행성의 주위를 맴도는 인공 위성 무리가 마치 굶주린 늑대 떼처럼 보였다. 그 중심에는 강철로 빚은 거대한 요새, ‘아이기스’가 맹렬한 빛을 뿜으며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서진우, 그 빌어먹을 배신자의 심장이자, 나의 지옥 같은 삶의 시작점. 저곳에 나의 과거를 짓밟은 자의 오만함이 응집되어 있었다.

나, 강하준. 과거에는 ‘새벽의 별’이라 불리던 정예 부대의 선봉장이었다. 모두가 날 따랐고, 내 옆에는 언제나 서진우,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의 야망이 어둠 속에서 자라나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폐허가 된 전장에서 홀로 깨어났을 때, 내 몸에는 수십 개의 파편이 박혀 있었고, 가슴에는 서진우가 남긴 칼자국이 선명했다. 그때부터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은 복수였다.

내 손에 익은 조종간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이 아니었다. 증오가 뼈 속 깊이 파고들어 전신을 들끓게 하는 전율이었다. 소형 침투선 ‘망각’은 우주 먼지처럼 보일 정도로 작고, 모든 탐지 시스템에 잡히지 않도록 특수 설계된 기체였다. 함선 내부의 조명이 어둠에 가까운 푸른빛을 내며 계기판의 숫자들을 더욱 선명하게 비췄다.

“목표, 아이기스 요새. 거리 3000킬로미터. 스텔스 모드 최대 출력.”

내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을 배제하려 애썼지만, 진우의 얼굴이 망막에 스치는 순간,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고동쳤다. 웃고 있었다. 과거의 그 미소와 똑같이, 하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던 그 미소가 지금은 비웃음으로만 기억된다.

망각은 아이기스 요새의 복잡한 위성망 사이를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갔다. 요새는 외곽 방어선부터 내부까지 삼중으로 된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숙련된 해커라도 뚫기 힘든 복잡한 암호 체계, 중력장을 이용한 함정, 그리고 언제든 적을 갈가리 찢을 준비가 된 무인 드론 부대까지.

“첫 번째 방어선, 중력파 감지.”

내 앞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거대한 중력파의 흐름이 보였다. 망각의 기체는 일렁이는 중력파의 간격을 정확히 읽어내며 그 사이를 절묘하게 통과했다. 훈련받은 조종사라면 몇 번이고 망설일 만큼 위험한 춤사위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몇 번이고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고, 그 경험은 나를 기계보다 더 정확하고, 차가운 존재로 만들었다.

“통과. 두 번째 방어선, 보안 드론 정찰.”

망각의 외부 센서가 수십 대의 날렵한 드론들이 요새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들은 어떤 침입자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듯, 레이저 스캐너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는 한때 이 드론들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었다. 서진우가 더 강력한 방어 체계를 원한다며 내게 맡겼던 일이었다. 내가 만든 철벽에 내가 부딪히게 될 줄이야.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이내 삼켜버렸다.

드론들의 순찰 경로와 스캔 주기, 그리고 교대 패턴까지, 나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내가 설계한 시스템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망각은 드론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를 따라 움직였다. 마치 어미 드론을 따라가는 새끼 드론처럼 자연스러웠다.

“내부 진입 성공. 목표, 중앙 제어 코어.”

망각은 요새의 거대한 격납고 중 하나에 안착했다. 착륙과 동시에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고, 기체는 주변 환경에 완벽히 동화되는 위장 모드로 전환했다. 나는 조종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특수 제작된 잠입 슈트는 내 움직임을 최소한의 소음으로 만들어주었다. 손목에 찬 다기능 정보 단말기가 요새 내부의 구조도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코어까지 남은 거리, 500미터.”

계산된 경로를 따라 복잡한 통로를 지났다. 벽면에는 서진우가 이끄는 ‘블랙 스타 연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과거 우리의 휘장이었던 ‘새벽의 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검은 별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빛나고 있었다. 그 문양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증오는 더욱 깊어졌다.

엘리베이터 샤프트에 도달했다. 일반적인 엘리베이터가 아닌, 고속 수직 이동 터널이었다. 내가 접근하자 터널 입구가 스르륵 열렸다. 보안 시스템은 내가 블랙 스타 연합의 최고위 보안 책임자인 ‘카이런’의 접근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이 코드 역시 내가 진우에게 선물했던 해킹 툴로 며칠 밤낮을 새워 어렵게 얻어낸 것이었다. 역겨웠지만, 이 모든 것이 복수를 위한 도구였다.

터널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수십 초 만에 코어층에 도착했다. 금속성 소리와 함께 터널이 다시 열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보다 더 강력한 보안이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시야가 닿는 곳마다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날카로운 레이저처럼 통로를 훑었다.

“젠장, 예상보다 경계가 삼엄하군.”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일반적인 접근으로는 경비병들의 시야를 피하기 어려웠다. 손목 단말기를 조작해 통로의 구조를 다시 확인했다. 통로 위에는 환기구가 있었다. 그래, 저곳이다. 나는 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슈트에 내장된 갈고리가 벽에 박히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단단히 고정되었다. 재빠르게 환기구 덮개를 열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환기구 내부는 먼지와 기계음으로 가득했다. 무릎으로 기어 통로를 전진했다. 간간이 아래 통로를 순찰하는 경비병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나? 서진우님께서 직접 경계 강화를 명령하셨다고.”
“쉿,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평소처럼 경계나 철저히 서면 돼.”

서진우, 그 녀석은 내가 살아있을 거라 직감하고 있는 건가? 아니, 감히 내가 복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편집증적인 경계일 뿐.

몇 분을 더 기어가자, 환기구가 끝나고 코어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도달했다. 거대한 홀 중앙에 푸른빛을 발하는 수정 같은 물체가 떠 있었다. 아이기스 요새의 모든 시스템을 제어하는 중앙 제어 코어, ‘오리진’. 내가 파괴해야 할 대상이었다. 코어 주변에는 수십 대의 무장 드론들이 코어를 보호하듯 맴돌고 있었고, 그 뒤로는 중장갑을 착용한 엘리트 가드들이 도열해 있었다.

한데, 코어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경비병들을 지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덩치 큰 체구,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팔뚝에 새겨진 흉터. 카이런. 진우의 가장 충실한 부하였다. 그리고 한때, 그는 나의 부하이기도 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이 작전은 소리 없는 침투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카이런을 마주한다면,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될 터였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내 얼굴은 과거와는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으니. 수많은 수술과 재건을 통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 내 싸움 방식은 어쩌면 그에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단말기를 조작해 코어의 방어막 시스템을 분석했다. 방어막은 주기적으로 미세하게 틈을 보였다. 그 틈을 노려 침투 바이러스를 주입해야 했다.

“침투 바이러스 가동 준비 완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환기구 덮개를 다시 닫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에 찬 섬광탄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뛰어내렸다.

콰아앙!

섬광탄이 터지며 코어실 전체가 눈부신 빛으로 뒤덮였다. 시야를 빼앗긴 경비병들과 드론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이미 코어 앞에 착지했다. 내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빠르고 유연했다.

“누구냐!”

카이런의 우렁찬 목소리가 혼란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나를 향해 총을 겨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내 손에는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한때 내가 카이런에게 가르쳐주었던 근접 전투술로, 나는 그의 경직된 움직임을 파고들었다.

챙! 철컹!

카이런의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나는 그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그의 방어막 장치를 단검으로 긁어냈다. 내 단검은 그의 개인 실드를 찢고 그의 어깨 근육을 깊숙이 베었다.

“크윽!”

카이런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네놈은… 누구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내 공격은 그에게 충분한 메시지가 될 터였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오직 코어의 방어막에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카이런과의 거리를 벌리며 단말기를 꺼내 코어에 조준했다.

“시스템 과부하 시작.”

침투 바이러스가 코어의 방어막에 주입되자, 코어 주변의 푸른빛이 일렁이며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비상 경보음이 코어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침입자! 코어를 보호하라!”

정신을 차린 드론들과 경비병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홀로그램 방어막이 내 몸을 감쌌지만, 수십 발의 레이저가 쏟아지자 방어막은 금세 한계에 달했다. 나는 코어에 눈을 고정한 채 몸을 피하며 후퇴했다.

“너… 너는… 설마…”

카이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가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찰나, 그의 시선이 내 팔뚝에 스쳤다. 거기에는 과거 ‘새벽의 별’ 부대원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아주 작은 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그는 깨달은 듯했다.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 강하준 대장님…?”

그 순간, 코어는 굉음과 함께 붉은빛을 토해내며 폭발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카이런의 얼굴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었다.

“진우에게 전해.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격납고로 향하는 환기구로 다시 뛰어들었다. 코어실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이기스 요새의 심장이 곧 터질 듯 격렬하게 고동쳤다.

내 복수의 서곡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서진우, 네 모든 것을 부수는 내가 서 있을 것이다. 망각은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고, 뒤에서는 아이기스 요새가 비명처럼 붉은 섬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나에게는 승리의 횃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