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삭막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카이의 발걸음은 먼지 쌓인 시멘트 조각들을 밟고 지나갔다. 햇빛은 언제나처럼 잿빛 구름에 가려 희미했고, 썩어가는 금속과 축축한 흙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낡은 천 조각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지만, 역겨운 냄새는 둔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왼손에는 녹슨 칼 한 자루, 오른손에는 찢어진 지도를 든 채였다. 지도는 더 이상 도시의 형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수십 년 전,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문명은 무너졌고, 익숙했던 풍경은 기괴하게 뒤틀린 폐허로 변해버렸다. 생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숨어 지내거나, 아니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젠장, 또 헛걸음인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사흘째였다. 물 한 모금, 부스러기 하나 제대로 입에 대지 못했다. 뱃속에서는 굶주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장을 긁어대는 듯했고, 어지럼증은 이제 익숙한 동반자가 되어버렸다. 그의 눈은 빛을 잃은 채였지만, 동시에 지독하리만치 날카로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죽음이 덮쳐올지 모르는 세상이었으니까.

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건물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한때 백화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고, 진열되었던 마네킹의 부서진 팔다리가 바닥에 뒹굴었다. 어둡고 음습한 내부에서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콰앙!

갑자기 위쪽에서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카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잔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린 것뿐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간판이 떨어진 곳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잿빛 햇살이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먼지 가득한 공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쉬이이익—!

길고 뼈마디가 드러난 손이 엄청난 속도로 카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카이는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러 막아냈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섬뜩한 비명이 어둠 속에서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온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림자처럼 검은 피부, 기괴하게 길어진 사지, 그리고 짐승처럼 일그러진 얼굴. 흔히 ‘어둠짐승’이라 불리는 것들 중 하나였다. 인간의 모습을 어렴풋이 닮았으나, 그 안에는 증오와 굶주림만이 가득한 존재.

어둠짐승은 칼에 긁힌 손목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잠시뿐, 곧바로 카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여러 마리가 더 튀어나왔다. 세 마리.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의 처지가 된 것이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며 칼을 바짝 쥐었다. 상대는 숫자가 많았고, 굶주림에 미쳐 있었다. 하지만 카이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싸워왔다. 약해지는 순간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어둠짐승이 덤벼들자, 카이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며 칼을 그 팔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뼈와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어둠짐승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고, 카이는 그 틈을 타 다른 두 마리에게 칼을 겨눴다.

“이 빌어먹을 괴물들!”

그는 격렬하게 칼을 휘두르며 좁은 통로를 이용해 괴물들을 유인했다. 넓은 곳에서는 수적 열세가 명확했지만, 이곳은 달랐다. 좁은 통로에서는 한 번에 한두 마리만이 그에게 덤벼들 수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려했고,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이 싸움을 위해 훈련받아온 전사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지친 사냥꾼의 그것이었다.

두 번째 어둠짐승이 덤벼들자, 카이는 날아오는 발톱을 자신의 낡은 배낭으로 받아냈다. 배낭은 갈가리 찢어졌지만,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카이는 칼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어둠짐승의 목을 갈랐다. 피 한 줄기가 솟구치며 벽에 튀었다.

남은 것은 한 마리였다. 하지만 가장 크고, 가장 사나워 보이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쓰러진 동족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카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쇠사슬이 긁히는 듯했다.

카이는 숨을 헐떡였다. 몇 번의 전투만으로도 그의 몸은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어둠짐승은 기다리지 않았다.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카이는 피할 틈도 없이 그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는 칼을 든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뒤로 쓰러졌다. 강력한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쿵!

그는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었다. 칼은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갔다. 어둠짐승의 거친 숨결이 얼굴에 닿는 듯했다. 녀석은 카이의 위로 올라타 거대한 발톱을 들어 올렸다. 죽음의 그림자가 카이의 시야를 가렸다.

바로 그때, 카이의 눈에 낡은 금속 파이프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둠짐승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둠짐승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카이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카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칼이 떨어진 곳으로 기어가 그것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쓰러진 어둠짐승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제야 사방에 널린 것은 움직이지 않는 시체들뿐이었다. 카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땀과 피가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 든 칼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 순간의 안도감은 너무나도 짧고 덧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대가는 매번 치러야 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운 카이는 찢어진 배낭을 대충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잃은 것에 비하면 얻은 것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얻은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어둠짐승들이 기어나온 곳, 어둠 속을 응시했다. 무언가 다른 냄새가 났다. 썩은 살 냄새가 아닌, 묘하게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냄새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을 더 깊이 들어가자,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어둠짐승의 시체들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검은 알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알의 표면은 촉수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카이는 알에 손을 대려다가 멈칫했다. 불길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알 수 없는 힘의 잔재였다.

그때, 알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섬뜩한 눈동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것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로운 위협이었다. 이곳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늦었다.

균열은 더욱 빠르게 벌어졌고, 알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형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카이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감각이 경고음을 울렸다. 본능이 소리쳤다. ‘도망쳐!’

그러나 그의 발은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뒤였다. 거대한 알은 마치 그의 시선을 잡아두려는 듯,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침내 깨어나는 존재의 울음소리가 낡은 백화점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명과도 같았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카이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지만, 그 안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생존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그는 다시 칼을 고쳐 쥐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는 또 다른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것이 설령 마지막 밤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