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 (隙間)
어둠이 내린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숨을 쉬었다. 빌딩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인 네온사인의 깜빡임이 강진의 37층 아파트 창문을 비췄다. 그는 홀로 앉아 손가락으로 공중에 띄워진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있었다. 뇌파 동기화 프로젝트의 막바지, 그의 시선은 수십 개의 데이터 스트림을 훑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의식은 저 너머의 도시 풍경에 닿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빛의 물결, 인공지능이 조율하는 교통 흐름, 스카이라인을 가로지르는 무인 드론 택시들의 움직임까지. 그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때로는 낯설었다.
“강진 씨, 자정입니다.”
단조로운 여성 음성이 공간을 채웠다. 인공지능 비서, 오라(Ora)였다. 그는 대답 없이 손을 휘저어 홀로그램 스크린을 껐다. 방은 이내 은은한 바이올렛 색조로 물들었다. 스마트 조명은 그의 생체 리듬에 맞춰 자동으로 색과 밝기를 조절했다. 벽에 걸린 디지털 액자 속에서는 인공 비가 내리는 가상의 숲 풍경이 흔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자동 추출기가 그의 기상 패턴을 분석해 미리 준비해 둔 따뜻한 ‘뉴트리-수프’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퓨처리즘 디자인의 검고 매끈한 그릇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는 수프 그릇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틱.’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마치 낡은 기계 부품이 한계에 다다라 마찰하며 내는 듯한. 그리고 동시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수프 그릇이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1센티미터쯤 움직였다.
강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어제도 밤샘 작업을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무심히 그릇을 들어 수프를 마셨다. 혀에 닿는 미지근한 액체가 오늘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듯했다. 37층 아파트. 완벽한 단열과 방음. 외부 진동이나 소음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는 그 사소한 현상을 그저 피로가 빚어낸 착각으로 치부했다.
며칠이 흘렀다. 그 사소한 움직임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작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아두었던 그의 개인 단말기가 아침에는 부엌 조리대 위에 놓여 있었다. 분명 잠들기 전에 단말기로 기사 몇 개를 읽고 협탁에 두었었다. 작업실의 펜이 연필꽂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있거나, 냉장고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오라의 오류를 의심했다.
“오라, 어제 새벽 3시 17분부터 3시 25분 사이 거실 보안 카메라 기록 재생.”
홀로그램 스크린에 거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빈 머그잔이 아주 느리게, 마치 누군가 아주 조심스럽게 미는 것처럼, 테이블 끝으로 밀려났다. 강진의 시선은 책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머그잔은 테이블 끝에 다다라 멈추더니, 이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진은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고, 떨어진 머그잔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상 속 강진은 그저 “아, 피곤하군.”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강진은 오라의 기록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그는 영상을 되감아 다시 확인했다. 어떤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오라의 보안 시스템은 완벽했다. 이 아파트는 최첨단 생체 인식 및 동작 감지 센서로 둘러싸여 있었다. 심지어 아주 작은 곤충 하나라도 침입하면 즉시 경고가 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물건이 스스로 움직인다?
“오라, 시스템 전체 진단 실시. 모든 센서와 연동 장치 상태 확인. 외부 해킹 시도 여부도 면밀히 조사.”
“알겠습니다. 시스템 진단을 시작합니다.”
오라의 무감한 목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시스템 전체 이상 없음. 모든 센서 정상 작동 중. 외부 해킹 시도 기록 없습니다.”
강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모든 것이 정상인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그날 밤, 그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깔끔하게 마감된 천장 패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스마트 커피 머신에서 내린 향긋한 커피를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진은 눈을 크게 떴다. 뭔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였다. 그는 황급히 작업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광경에 얼어붙었다.
작업실 중앙에는 그가 아끼던, 희귀종 인조 식물 ‘에테르 브리즈’가 심겨 있던 투명한 화분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그 속에는 흙 대신 인조 배양토 알갱이가 잔뜩 쏟아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식물 자체는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닥에 꼿꼿이 서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화분만 증발한 것처럼.
이것은 명백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화분을, 강진이 가장 아끼는 선반 위에 놓여 있던 그 화분을 떨어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작업실 문은 닫혀 있었고, 그는 방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외부 침입은 불가능했다.
강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잔해를 내려다봤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이건 피로로 인한 착각도, 사소한 시스템 오류도 아니었다. 물리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깨진 화분 조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가장 큰 조각 중 하나를 집어 들려던 순간이었다.
그 깨진 조각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손 앞에서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강진은 숨을 들이켰다. 조각은 그의 눈높이까지 천천히 상승했다. 아무런 연결선도, 아무런 지지대도 없었다. 그저 허공에 떠 있었다. 바이올렛 색 조명이 조각의 투명한 표면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났다.
강진은 얼어붙은 채 그 기이한 광경을 응시했다. 그의 이성과 감각이 충돌했다. 불가능했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떠 있던 조각은 마치 누군가 놓아버린 것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미 깨져 있던 파편이 다른 파편에 부딪히며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한 번 더 냈다. 그의 손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강진은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삼키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의 시선은 떨어진 조각과, 엉망진창이 된 바닥, 그리고 어째서인지 더욱 음산하게 느껴지는 작업실 내부를 오갔다.
대체… 뭐야?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파트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옥죄어 오는 거대한 무엇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했다. 창밖의 네온 도시가 그를 비웃는 것처럼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아파트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는 그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섬뜩한 예감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