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숨죽인 그림자

축축한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달빛조차 힘겹게 비집고 들어오는 낡은 골목, 비틀린 철제 계단 아래 웅크린 서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몇 시간째 이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싸늘한 벽에 등을 기댄 채, 심장이 발톱에 꿰인 듯 욱신거리는 고통을 참아낼 뿐이었다. 빗물 섞인 바람이 콧등을 스치자 잊으려던 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왔어?”

나지막한 목소리.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듯 한 그림자가 서윤의 눈앞에 섰다. 마치 달빛마저 삼켜버릴 듯한 검은 눈동자,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 인간의 것이라곤 믿기 힘든 예리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은 듯한 존재. 이안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서윤에게는 생명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독이었다.

서윤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그의 눈을 올려다봤다.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이안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한 번 훑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더듬는 듯했지만, 서윤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탐색하는 움직임임을 알고 있었다. “괜찮아. 그저…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을 뿐.”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긴장은 서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말했잖아. 이제 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날 일 때문에 그래? 정말로… 들킨 거야?” 서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난주, 폐쇄된 공장 지대에서 벌어진 그 불가사의한 사건. 그녀는 이안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그 여파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이안은 서윤의 뺨에 맺힌 물방울을 엄지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은 서윤의 심장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인간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지. 미지의 것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것을 용납하지 않아.”

‘그들’. 이안의 종족을 지배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감시자들이었다. 인간과의 접촉은 금기 중의 금기. 하물며 감정, 그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곧 사형과도 같은 처벌을 의미했다.

“내가… 너를 위험하게 만든 거지?” 서윤은 고개를 떨궜다. 자신 때문에 이안이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

“아니.” 이안은 서윤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어. 너를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어.”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무한한 애정과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중요한 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거야.”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 그리고 섬광처럼 번쩍이는 빛. 이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더욱 가셨다.

“젠장.” 그의 입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빠르잖아.”

서윤은 혼란스러웠다. 사이렌 소리는 이 골목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단순한 경찰차 소리를 듣고 겁먹은 것이 아니었다.

“이안, 왜 그래?”

“그들이… 왔어.” 이안은 서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에 실린 힘은 서윤의 뼈를 으스러뜨릴 것 같았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을 쫓아온 거야. 이제 숨을 곳도 없어.”

“흔적이라니? 무슨 흔적?”

“내가 너와 접촉했던 모든 곳에 남는… 나의 기운.” 이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들이 그것을 추적하고 있어.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올 거야. 곧.”

섬뜩한 예감에 서윤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안의 손에 이끌려 비좁은 골목길을 내달렸다. 낡은 상가 건물의 뒷문, 쓰러져가는 창고의 틈새, 지저분한 쓰레기 더미 사이를 정신없이 빠져나갔다. 이안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해서, 서윤은 그저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팔에 안긴 채 벽을 타고 오르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유령처럼 통과했다.

“이안! 어디로 가는 거야?!” 서윤의 목소리가 숨 가쁘게 터져 나왔다.

“최대한 멀리, 그리고 숨을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의 감각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돼. 이 도시 전체가 우리에게는 거대한 미로 같을 거야.”

그들의 뒤에서, 골목의 어둠을 찢고 번쩍이는 불빛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러 대의 차량이 움직이는 소리, 무장한 이들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서윤은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직 이안의 거친 숨소리와 자신의 맥박 소리만이 고막을 때렸다.

이안은 서윤을 안고 한 폐허 같은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녹슨 철골 구조물이 앙상하게 드러난 옥상은, 사방이 뻥 뚫려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안고 옥상 가장자리로 향했다.

“이안! 안 돼! 여기는 끝이야!” 서윤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안은 그녀를 놓지 않았다. 그의 눈은 저 아래, 자신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불빛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

그는 서윤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발아래 펼쳐진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십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서윤은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찢는 듯했고, 낙하하는 속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안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 같은 날개가 펼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어둠의 날개였지만, 분명히 그들의 낙하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박쥐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느낌. 서윤은 흐릿하게 눈을 떴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불빛들이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어둠에 동화된 듯, 도시의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착지한 곳은 도시 외곽의 인적 드문 숲이었다. 깊고 어두운 숲속,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 이안은 서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날개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환영처럼 사라진 것이다.

서윤은 숨을 헐떡이며 나무뿌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그 모든 통증을 압도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이안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안… 대체… 방금 그게….”

이안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내 종족의 힘이야. 인간에게 보여서는 안 될… 금기된 힘.”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너에게 더 이상 나의 비밀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숲속의 정적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마치 그들이 이 숲속에 완전히 고립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들은 도시의 시선에서 벗어났지만,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이안…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두려웠지만, 그보다 이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다.

이안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차가운 그의 몸에서 생경한 온기가 느껴졌다.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의 목소리는 굳건했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어떤 금기를 깨뜨려서라도, 너를 지킬 거야.”

그 순간, 숲의 고요를 깨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작은 짐승 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 듯한, 의도된 소리였다. 이안의 몸이 다시금 경직되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누구야…?” 서윤이 속삭였다.

이안은 서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곳까지 쫓아왔어. 우리가 흔적을 남겼군.” 그의 손이 허공을 더듬더니, 어둠 속에서 빛 한 점 없는 날카로운 칼날이 솟아났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기를 어긴 자. 심연의 질서를 더럽힌 자. 네 죄는 죽음으로밖에 속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이안의 종족이었다. 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서윤은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설치한 덫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늦은 후였다.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날카로운 빛이 이안을 향해 날아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