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언제나 심연이었다. 특히 대학 본관 지하 3층에 자리한 고문서 보관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곰팡이 냄새와 낡은 종이의 쿰쿰한 향이 섞여 묘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이곳은, 김준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감옥이기도 했다. 형광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그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늘 무언가가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준호는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탁자 위에 놓인 그것에 매달려 있었다. 길이 30센티미터 남짓한 검은 현무암 조각. 표면에는 미지의 문자와 기하학적 도형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부터 수메르 쐐기문자, 심지어는 이스터 섬의 롱고롱고 문자까지 섭렵한 고고학 분야의 천재였다. 하지만 이 현무암 조각에 새겨진 문자들은 그의 모든 지식을 비웃는 듯했다. 그것은 어떤 언어와도 닮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가 집중할 때마다 미세하게 형태를 바꾸는 듯한 환영을 주었다.
“젠장… 대체 뭐지, 넌.”
준호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은 충혈되어 핏발이 서 있었고, 수염은 거칠게 자라 있었다. 손가락 끝은 무수한 책과 문서들을 뒤적인 탓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성을 붙잡으려는 그의 노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 조각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맹목적인 집착뿐이었다.
며칠 전, 그는 수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제사장들의 유물 더미 속에서 이 현무암 조각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던, 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가느다란 금속 막대도 함께. 막대는 차갑고 매끄러웠으며, 끝부분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마치 조각의 문양 중 한 곳에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설계된 것처럼.
그는 다시 조각에 시선을 고정했다. 문자들이 그의 눈을 피하듯 흔들렸다. 시신경을 타고 뇌로 곧장 흘러드는 미지의 정보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파동이었다. 형상이었다. 때로는 으스스한 속삭임처럼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래, 한 번 해보는 거야.”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은빛 막대를 집어 들었다. 막대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마치 그 안에 미지의 물질이 채워져 있는 것처럼.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울리는 듯했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잠식당한 상태였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답을 원했다. 그 답이 설령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는 조심스럽게 막대의 끝을 현무암 조각의 특정 문양 위에 가져다 댔다. 그 문양은 다른 문자들과 달리 움푹 파여 있었고, 막대의 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는 듯이.
*쉬이이이이익…*
막대가 문양에 닿는 순간, 보관실 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형광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다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어둠. 완벽한 어둠이 준호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어둠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현무암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이 보관실을 채웠다. 빛은 일정하지 않았다. 맥동하듯 일렁이며, 조각 위를 떠다니는 듯한 문자들이 꿈틀거렸다. 빛은 점점 강렬해졌고, 준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벽면의 낡은 서가들이 일그러졌다. 천장의 콘크리트가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공간이 휘어지는 것 같았다. 중력이 사라진 듯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뇌 속에서 수많은 음성들이 웅얼거렸다. 수억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했지만, 그 어떤 소리도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오직 혼돈뿐이었다.
“크… 아악!”
준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것은 찢어지는 듯한 신음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무한히 펼쳐진 심해. 그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그림자.
별들이 뒤틀린 채로 고통스럽게 빛나는 우주.
인간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의 건축물.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차갑고 거대한 눈동자.
그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우주의 모든 탄생과 죽음을, 모든 지식과 망각을 초월한 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존재의 압도적인 시선. 그 시선이 준호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준호의 육체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의 혈관이 터져 나갈 듯 팽창하고, 심장이 엉망으로 비틀리는 것 같았다. 그의 영혼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간신히 막대를 놓쳤다.
*콰앙!*
막대가 조각에서 떨어져 나가자마자, 모든 것이 멈췄다. 푸른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보관실은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돌아갔다. 형광등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곰팡이 냄새만이 짙게 감돌았다.
준호는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은 땀으로 축축했고, 사지가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이전과 달랐다. 생기 없는 공허함,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자, 그의 시야에 희미하게 현무암 조각이 들어왔다. 조각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호는 알았다. 아니, 이제는 *보였다*.
벽면의 곰팡이가 그에게는 우주를 떠도는 작은 은하계처럼 보였다. 낡은 서가의 그림자는 거대한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그가 이제 자신이 서 있는 이 공간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얇은 장막 뒤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눈으로는 감히 인지할 수 없었던 존재들의 그림자.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준호의 눈앞에서, 그의 피부 위에서, 그의 뇌 속에서,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며 인류의 역사를 비웃고 있었다. 그저 인간이 너무나 미미하고 무지하여 그것들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은 평범했지만, 그는 이제 그 손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과 그 사이를 채우는 암흑 에너지의 흐름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너무나도 끔찍하게.
그는 이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고대의 숨겨진 마법의 힘은 그에게 지식을 주었지만, 그 대가로 그의 온전한 정신과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의 진정한 공포를 마주한 채, 영원히 깨어 있을 운명이었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았고,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알아버린 채.
그는 흐느꼈다.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아닌, 순수한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찬 울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만이 이 세상의 진실을 알아차린 듯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