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잿빛 도시, 붉은 의문

도시의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은 폐허 위로, 한줄기 회색빛 새벽이 지쳐 스며들었다. 구불거리는 철골 구조물들은 거대한 괴물의 갈비뼈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은 썩은 흙먼지와 비릿한 피 냄새를 실어 날랐다. 수천 개의 창문이 박힌 빌딩들은 텅 빈 눈동자처럼 세상을 응시하며, 그 속에 숨겨진 고통과 절규를 영원히 간직할 것만 같았다.

“젠장, 또 시작이군.”

낡은 전투복 차림의 사내, 강민호 상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앞에는 허물어진 방벽과 잔해들이 뒤섞인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잿빛으로 물들인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흔적이었다. 느릿하고 축축한 움직임으로 도시를 배회하는 역병 감염자들. 그들은 한때 이 도시를 활보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오직 허기와 본능만이 남은, 끔찍한 송장들이었다.

민호의 시선은 곧이어 길게 뻗은 도로 끝,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구조물에 닿았다. ‘새로운 새벽’ 타워. 철근 콘크리트로 무장하고, 두꺼운 철판과 센서들로 도배된 이 요새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 그 견고한 성 안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사람이 죽었다.

“이호진 씨, 서두르시죠. 감염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민호는 뒤편의 그림자 같은 인물을 향해 말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말없이 자신만의 박자로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색의 낡은 정장, 삐뚤어진 넥타이, 그리고 푹 눌러쓴 중절모. 이 끔찍한 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이호진, 그는 소문으로만 듣던 이른바 ‘천재 탐정’이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 웬 탐정인가 싶었지만, 그의 명성은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서 신화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호진은 멈춰 서서 한 손으로 모자챙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늘어선 폐허를 훑는가 싶더니, 이내 멀리 보이는 타워의 상층부를 응시했다. 무미건조한 눈동자였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죽음은 늘 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오더군요. 특히 이렇게 갇힌 공간 안에서는 더욱더.”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마치 수십 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담담하고 무심했다.

“갇힌 공간?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이호진 씨! 밖에는… 놈들이 우글거려요!” 민호는 초조하게 외쳤다.

“내가 말하는 갇힌 공간은, ‘그곳’입니다.” 호진은 손가락으로 ‘새로운 새벽’ 타워의 꼭대기 층을 가리켰다.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고,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밀실. 그런 곳에서 죽음이 발생했다는 건, 늘 재미있는 이야기의 시작이죠.”

민호는 그의 알 수 없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니. 지금 벌어진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재미있을 리 없었다. 죽은 사람은 이 타워의 핵심 인물인 김석원 국장이었다. 식량 배급부터 외부 정찰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던 인물. 그의 죽음은 이 타워, 아니, 인류의 마지막 희망 중 하나를 뒤흔들 수도 있는 재앙이었다.

두 사람은 타워의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길게 늘어선 바리케이드를 지나, 생체 인식 스캐너를 통과했다. 굳게 닫혔던 철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 밖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밝은 형광등 불빛, 깨끗하게 정돈된 복도,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 이곳만큼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김석원 국장님은 어젯밤 11시경, 자신의 집무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직접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고 하더군요.” 민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황을 보고했다.

“발견 당시 상황은?” 호진은 턱을 괸 채 민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새벽 6시, 비서실장이 출근해서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자 경비대를 불렀고, 비상 잠금장치를 해제한 뒤 들어갔습니다. 국장님은 책상에 엎드린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합니다.” 민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사인(死因)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내출혈이나 폭행 흔적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잠든 것처럼 보였다더군요. 부검 결과도 아직 명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밀실에서의 고독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김 국장님은 누구보다 건강을 챙기던 분이셨습니다.”

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밀실에서 발생한 의문스러운 죽음. 탐정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군요.”

엘리베이터는 최고층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긴장감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몇몇 경비대원들과 과학수사팀 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복도 끝, 금속으로 강화된 문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깊은 좌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김 국장의 비서실장인 유미나였다.

“이호진 씨, 오셨군요.” 유미나 실장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김 국장님은… 왜 그렇게 되신 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 방은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철저한 보안 시스템에, 비상 잠금장치까지 완벽했습니다.”

호진은 그녀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듯, 묵묵히 집무실 문으로 다가갔다. 문의 육중한 강철 재질을 손으로 쓸어보고, 생체 인식 패드와 디지털 잠금장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민호에게 물었다.

“이 문, 잠금장치는 어떻게 작동합니까?”

“김 국장님의 생체 인식과 6자리의 비밀번호가 동시에 입력되어야만 열립니다. 외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안에서는 수동 잠금 버튼으로만 잠글 수 있고요.”

“사건 당시에는 안에서 잠겨 있었다는 거죠?”

“네, 비서실장님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결국 비상코드를 이용해 외부에서 해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잠금장치에 기록된 로그를 확인했는데, 김 국장님 외에는 그 누구의 생체 인식 기록도, 비밀번호 입력 기록도 없었습니다.”

호진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비웃음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퍼즐을 마주한 자의 만족감에 가까웠다.

“완벽한 밀실이군요. 범인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으니 말이죠. 그럼 결국 자살이거나, 우연한 사고였을까요?”

민호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명백한 밀실, 그리고 명백하지 않은 죽음. 이것이야말로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핵심이었다.

호진은 마침내 문을 열고 김 국장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눅진한 철과 곰팡이 냄새 대신, 시신 특유의 싸늘하고 비릿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넓은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은 외부를 향해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에 덧대진 강화 철판은 틈새 하나 없이 단단했다. 환기구는 성인 남자가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다.

방 중앙의 거대한 오크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아래, 김 국장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책상에 파묻혀 있었고, 보이지 않는 뒷목에는 핏자국 하나 없었다. 마치 고단한 업무에 지쳐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호진은 시신 주변을 천천히 돌며 살펴봤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떨어진 펜 한 자루, 책상 위 삐뚤어진 사진 액자, 그리고 미세하게 열려 있는 창문 틈새에 시선이 멈췄다. 민호는 그가 무엇을 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평범해 보였다.

“이호진 씨, 뭘 발견하셨습니까?” 민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진은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펜을 집어 들었다. 평범한 볼펜이었다. 하지만 그는 펜의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김 국장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죠.”

민호와 유미나 실장의 얼굴에 동시에 경악이 스쳤다.

“그럼… 살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 완벽한 밀실에서 누가, 어떻게 김 국장님을 살해했다는 말입니까?” 유미나 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진은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창문 틈새로 살짝 비집고 들어간 먼지 한 조각을 가리켰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아주 사소하게, 하지만 완벽하게.”

그의 눈빛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표범의 눈처럼 날카로웠다.

“범인은 이 방을 떠났지만, 그 전에 아주 친절하게도 제게 단서를 남겨두었군요. 이 퍼즐, 꽤나 즐거운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이 그의 검은 중절모를 스치며 지나갔다. 잿빛 도시의 스산한 풍경 위로, 붉은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