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은 그들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잿빛 대지가 펼쳐진 지상과는 달리, 지하 깊숙한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고고한 침묵만이 지배했다. 낡은 방진 마스크 너머로 쿨럭이는 거친 숨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갈랐다. 강휘는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좁고 불안정한 통로의 끝에 거대한 철문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녹슨 강철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양들이 기괴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게… 유진, 네가 말했던 ‘심연의 틈새’인가?” 강휘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그의 눈은 불신과 경계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탐사했던 유적의 어떤 문보다도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유진은 낡은 태블릿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스쳤다.
“네, 강휘 님.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이 문 너머에 ‘시간의 저장고’가 있다고 했어요. 다른 모든 유적들이 파괴되었을 때도, 이곳만은 온전히 보존되었다고… 미지의 재앙을 대비해서.”

“미지의 재앙을 대비해서? 지랄하고 있네. 지들끼리 멸망해놓고 뭘 대비했다는 거야.” 태오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그의 거대한 체구는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울 듯했고, 등에 짊어진 개조된 산탄총이 묵직하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냥 헛소리 아니야? 괜히 위험한 것만 더 있을 것 같은데.”

“아니요.” 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유적의 다른 기록들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들이었어요. 이곳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뭔가를 감추고… 아니, ‘보존’하기 위한 곳이었을 거예요.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

강휘는 철문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희망이든 지옥이든, 이젠 가야 할 길이야. 다른 곳엔 아무것도 없어.”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생존자 캠프의 식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잦은 이형 생명체의 습격으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곳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모두 끝장이다.

유진은 태블릿을 조작하여 문양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철문 위를 오가며 복잡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잠시만요…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에요. 일종의 에너지 회로도 같네요. 그리고… 이 중앙의 홈. 여기에 뭔가 삽입해야 할 것 같아요.”

강휘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육각형의 금속 조각을 꺼냈다. 이 조각은 그들이 이 유적 초입에서 겨우 발견한 것이었다. 미스터리한 에너지 반응을 내뿜으며 빛나던 조각이었다.
“이건가?”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맞아요! 기록에 ‘심장의 조각’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는데, 형태가 정확히 일치해요.”

강휘는 조각을 중앙의 홈에 조심스럽게 맞춰 넣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이 완벽하게 고정되었다. 순간, 철문 전체에 푸른빛이 번개처럼 훑고 지나갔다. 낡고 녹슨 문은 마치 새것처럼 빛났고, 이내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수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뱉어내듯 쏟아져 내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들 앞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돔형 공간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히 높아 빛이 닿지 않았고, 바닥은 매끄러운 검은 돌로 되어 있었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기둥과, 그 기둥들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투명한 관들이었다. 관들 속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느리게 순환하고 있었고,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내부 같기도 했고, 어떤 첨단 기계의 심장부 같기도 했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태오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이건…” 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건 기록에도 없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에요.”

그때였다. 공간의 중앙, 가장 크고 굵은 기둥에서부터 희미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관들을 흐르던 액체의 푸른빛도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기둥의 정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이 허공에 떠올랐다. 흐릿한 형체였지만, 점점 선명해지며 고대어로 된 문자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타났다. 유진이 빠르게 태블릿을 들어 해독을 시도했다.

“잠깐만요… 해독 중이에요… ‘위대한 정화’… ‘인류의 재조직’… ‘미완의 프로젝트’… 뭐라고?” 유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아니야…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게 아니에요. 이건 피난처가 아니야… 이건…”

홀로그램 속 문자들이 한꺼번에 바뀌며, 거대한 그림이 나타났다. 수없이 많은 인간 형상의 개체들이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개체들의 머리 위에는 숫자들이 떠 있었다.

강휘의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의 직감이 비명을 질렀다. 뭔가 끔찍한 것을 발견했다는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유진, 그게 무슨 뜻이야?!” 태오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홀로그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이건… 인류의 데이터를 보존하는 곳이 아니에요. 이건 인류를… ‘수확’하고 있었던 거예요. 재앙이 닥치기 전에, 가장 우수한 개체들을 선별해서… ‘재설계’하기 위한… 거대한 공장 같은 곳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돔형 공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웅장하고 불길한 소음이 잠자고 있던 모든 것을 깨우는 듯했다. 마치 심연 속에서 잠들었던 거대한 짐승이 깨어나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홀로그램이 마지막 장면을 띄웠다. 수많은 인간 형상의 개체들 위로, 섬뜩하게도 그들이 마주했던 ‘이형 생명체’의 형상이 겹쳐졌다. 그들의 모습은 기계 속 인간 개체들의 변형된 형태와 놀랍도록 흡사했다.

유진의 태블릿에서 삐-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녀는 화면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비상 프로토콜이 가동되었어요! 이곳의 주 시스템이 재활성화되고 있어요. 우리가 문을 열면서… 이곳의 주인을 깨운 거예요!”

돔 공간을 가득 채웠던 푸른빛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투명한 관 속 액체의 흐름이 급격히 빨라졌고, 기둥 사이를 연결하던 케이블들에서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공간의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작은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수많은 ‘눈’들이 번뜩였다.

그것들은… 그들이 지상에서 마주했던 이형 생명체와는 또 다른, 고도로 기계화된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홀로그램 속에서 인류의 ‘재설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듯한,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병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도망쳐요! 어서!” 유진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강휘는 총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젠장! 태오! 유진이 먼저! 나는 뒤를 맡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가장 가까운 작은 문에서 튀어나온 기계 병기가 섬광과 함께 돌진해왔다. 날카로운 금속 발톱이 허공을 갈랐고, 그들의 머리 위로 기계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경고. 외부 침입 감지. 재설계 구역 활성화. 모든 침입자를 ‘정화’합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끔찍한 시작이자, 동시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잠자던 지옥의 문을 활짝 열어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