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녹슨 레일 위의 속삭임
강진우는 낡은 전등이 내뿜는 희미한 불빛 아래, 축축한 지하 공간을 응시했다. 공기 중에는 흙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놈들의 흔적이었다. 그의 손에 쥐인 녹슨 파이프는 차가웠지만, 심장만큼은 뜨겁게 뛰고 있었다.
“젠장, 끝이 없잖아.”
나지막이 읊조리자, 등 뒤에서 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덜거릴 시간에 한 칸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어때, 오빠? 여기서 얼어 죽을 순 없잖아.”
서아는 등에 짊어진 낡은 배낭을 고쳐 매며 앞을 가리켰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했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빛을 담고 있었다. 닳아빠진 스캔 장치에서 미미한 신호음이 울렸다.
“이쪽이야. 반응이 약하지만, 뭔가가 있어.”
그들이 들어선 곳은 과거 지하철 승강장이었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플랫폼은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과 휘어진 철근 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핏물인지 녹물인지 모를 액체가 고인 웅덩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침묵만이 이곳을 지배하는 듯했다. 그 침묵은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팽팽한 긴장을 담고 있었다.
“조심해. 이런 곳일수록 더 위험해.”
진우가 서아의 손목을 잡으며 경고했다. 그의 감각은 수많은 던전 탐험을 통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곳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였다. 웅덩이 하나에서 물보라가 튀어 오르더니, 녹슨 철근 덩어리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철근에 뒤엉킨 무언가가. 흉측하게 변형된 철근들이 마치 촉수처럼 뻗어 나오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젠장, 철근 괴물! 또 저놈들이야!”
서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저 괴물들은 끈질기고, 공격적이며, 무엇보다 죽이기가 까다로웠다.
진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한 손에 쥔 파이프를 휘둘러 가장 먼저 날아온 촉수를 쳐냈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촉수가 움찔거렸다. 파이프를 쥔 손바닥에 강렬한 진동이 울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촉수들이 사방에서 덮쳐왔다. 마치 살아있는 금속의 물결 같았다.
“서아, 뒤로 빠져! 통로 막히면 끝장이야!”
서아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허리춤에 찬 소형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낡은 총이었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조준했다. ‘탕! 탕!’ 작지만 날카로운 총성이 어둠을 갈랐다. 총알은 철근 괴물의 몸통, 철근이 가장 빽빽하게 뭉쳐 있는 부위에 박혔다. 괴물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몸을 뒤틀며 공격해 왔다.
“소용없어! 저놈은 고철 덩어리야!” 진우가 소리쳤다.
그는 괴물의 공격을 피하며, 무너진 벽에 기대어 있던 녹슨 삽을 발견했다. 삽날은 날카롭게 닳아 있었지만, 손잡이는 튼튼해 보였다. 망설임 없이 삽을 집어 든 진우는 괴물의 빈틈을 노렸다. 철근 괴물의 움직임은 둔탁했지만, 불규칙적이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 패턴에 진우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아! 저놈 움직임 둔화시켜!”
서아는 재빠르게 인벤토리에서 섬광탄을 꺼내 던졌다. ‘펑!’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자 괴물은 잠시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금속 촉수들이 일시적으로 방향을 잃고 허공을 휘저었다. 그 순간, 진우는 삽을 들어 올려 괴물의 가장 두꺼운 촉수를 찍어 내렸다. ‘꿰액!’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촉수 하나가 완전히 끊어져 나갔다. 검붉은 녹물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괴물은 더욱 격렬하게 발악했다. 끊어진 촉수에서 끈적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며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액체는 주변의 작은 금속 조각들을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점점 부피를 불려나갔다. 끊어진 촉수의 단면에서는 새로운 철근이 돋아나는 듯 보였다.
“젠장, 자가 재생까지 하는 거야?” 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괴물은 마치 진우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리는 듯, 모든 촉수를 그에게 집중했다. 섬광탄 효과가 사라지자마자, 날아드는 촉수들은 더욱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서아는 남은 총알이 몇 발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의 스캔 장치가 더 강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철근 괴물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의 반응이었다. 반응의 강도는 약했지만, 숫자가 문제였다.
“오빠! 위험해! 다른 놈들이 오고 있어!”
진우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촉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그의 팔뚝에는 얕은 상처가 났고, 옷은 찢겨나갔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서아의 경고는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른 놈들? 이 괴물 하나로도 벅찬데, 더 온다고? 이대로는 둘 다 죽는다.
그의 눈이 빛났다. 끊어진 촉수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 그리고 그것이 끌어당기는 금속 조각들. 재생… 그렇다면, 약점은? 모든 생명체에게는 약점이 존재했다. 이 기괴한 금속 생물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멀리서 또 다른 날카로운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곧 이곳은 괴물들로 우글거릴 터였다.
“서아! 저놈 중심을 노려! 제일 큰 철근 덩어리가 박혀 있는 곳!”
진우는 괴물의 가장 거대한 촉수 하나를 삽으로 힘껏 밀쳐내며 외쳤다. 서아는 다시 총을 겨눴다. 총알은 단 두 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발…!’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두 발의 총알은 정확히 괴물의 중심부, 엉겨 붙은 철근 덩어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치 오랜 시간의 부식으로 약해진 연결부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퀘에엑-!’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철근 괴물의 몸체가 크게 경련했다. 마치 내부에서부터 분열하려는 듯, 철근들이 서로를 긁으며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는 더욱 진하고 끈적했다.
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모든 힘을 실어 삽을 휘둘러 괴물의 중심부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쩌적!’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완전히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승강장을 뒤흔들었다. 괴물의 몸체가 두 동강이 나며, 엉켜 있던 철근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철근 괴물은 그대로 고철 더미가 되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검은 액체는 흐르지 않았고, 금속 조각들은 끌어당겨지지 않았다. 완전히 기능이 정지된 듯 보였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괴물을 응시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 쥔 삽은 이미 휘어져 있었다.
“오빠… 괜찮아?”
서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는 잔뜩 웅크러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살아있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겨우. 다른 놈들은?”
서아는 스캔 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사라졌어. 아마 소리에 놀라 도망간 것 같아. 아니면… 저 괴물에 끌렸던 하수인들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깊은 피로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했다.
진우는 쓰러진 철근 괴물 더미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며 빛나는 작은 금속 조각을 발견했다. 던전의 ‘핵심 잔해’였다. 이것을 모으면 언젠가 식량이나 에너지 셀로 교환할 수 있는 귀한 자원이 될 터였다. 이 암울한 세상에서 몇 안 되는 가치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주웠다. 차갑고 단단한 조각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미약하게 진동했다. 던전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듯한 진동이었다.
“하나 더 찾았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저 너머엔 분명 우리가 찾는 게 있을 거야.”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그 안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잿빛으로 물든 지하 통로 저편에서,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어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이 황폐한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