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장 – 핏빛 그림자 속, 한 줄기 이상한 시선
회색빛으로 물든 도시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먼지, 그리고 정체 모를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지우는 익숙하게 낡은 마스크를 코까지 끌어올리며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널브러진 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을 대형 마트의 잔해는 이제 좀비들의 사냥터이자 생존자들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마스크에 가려져 웅얼거렸다. 한 손에 녹슨 쇠 파이프를 든 채 다른 손으로는 텅 빈 선반을 쓸어보았다. 통조림 몇 개, 아니면 하다못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과자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곳은 이미 수십 번도 더 털린 듯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지우의 지친 눈이 천장의 구멍으로 쏟아지는 한낮의 햇빛을 힐긋 올려다보았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풍경. 그녀의 뱃속에서는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탓에 고통스러운 신호가 울렸다.
**”크르르르…”**
멀리서 들려오는 낮고 쉰 목소리에 지우의 온몸 신경이 곤두섰다. 마스크 너머로 숨을 죽이며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려 애썼다. 보통의 ‘놈들’과는 조금 다른, 묵직하고 음산한 소리였다. 그녀는 등 뒤에 맨 낡은 배낭을 고쳐 메고 손에 든 쇠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익숙한 공포, 하지만 언제나 적응할 수 없는 낯선 두려움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지우는 벽에 바짝 붙어 몸을 숨겼다. 창고처럼 보이는 복도 끝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좀비들은 어슬렁거리며 움직이지만, 저것은 분명히 다리가 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빠르고, 좀 더 목적이 있는 듯한 발걸음 소리.
이곳은 늘 그랬다. 한 번 숨을 돌렸다 싶으면 또 다른 위험이 닥쳐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 순간 죽음의 그림자와 씨름하는 일이었다. 열여덟 살, 이 지옥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아침에는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등교하고, 저녁에는 학원에 가거나 드라마를 보며 미래를 꿈꾸던.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모두 부서진 잔해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복도 끝 모퉁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지우는 숨을 들이켰다. 일반적인 좀비가 아니었다. 놈은 다른 놈들보다 훨씬 컸고, 움직임도 느릿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피부는 찢어지거나 썩어들어가지 않고 마치 단단한 나무껍질처럼 변해있었다. 눈은 핏빛으로 번뜩였지만, 그 안에는 텅 빈 광기 대신 어떤 깊은 어둠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림자는 지우를 보지 못한 채,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지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발아래 깨진 유리 조각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순간,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놈은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핏빛 눈동자가 정확히 지우가 숨어있는 곳을 향했다. 보통의 좀비들은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달려들지만, 이 놈은 달랐다. 여유로운 움직임, 그리고 그 시선은 단순한 먹이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포식자의 눈빛 같았다.
“젠장…”
지우는 이를 악물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녀가 숨어있던 선반 뒤는 막다른 길이었다. 놈은 천천히, 마치 먹잇감을 감상하듯이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가 하나하나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번엔 정말 끝인가. 이젠 더 이상 버틸 힘도 없는데.
놈이 손을 뻗었다. 검게 변한 손톱은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다. 그 손이 지우의 어깨를 붙잡으려는 순간, 옆쪽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평범한 좀비 서너 마리가 창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놈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지우에게 달려들었다. 이 절박한 순간에도, 지우의 뇌리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저 그림자 좀비는 왜 나를 덮치지 않았지? 왜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던 걸까?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일반 좀비들이 썩은 살점 냄새를 풍기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지우는 쇠 파이프를 휘둘러 가장 앞에 선 좀비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쓰러졌지만, 곧바로 다른 두 마리가 팔을 뻗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림자 좀비는, 지우를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악!”**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좀비가 지우를 공격하던 일반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훈련된 병사 같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좀비 한 마리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벽에 내던졌다. 다른 좀비 한 마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단번에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창고 안은 끔찍한 비명과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지우는 얼어붙은 듯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놈은… 나를 구해준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좀비가 좀비를 공격하다니. 이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림자 좀비가 마지막 남은 좀비의 심장을 찢어 발기자, 창고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시 고개를 돌려 지우를 바라보았다.
핏빛 눈동자.
그 시선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광기도, 굶주림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어떤 고요한 물음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듯했다. 지우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방금 구해준 것인지, 아니면 다음 사냥감으로 점찍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놈은 평범한 좀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놈의 눈은, 무섭도록 깊었다.
그 핏빛 눈동자가 지우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착각에 빠진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살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트의 깨진 비상구 문을 향해 달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지우의 등 뒤에 박힌 핏빛 시선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핏빛 어둠 속에서 마주한 그 눈빛은,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을 이상한 잔상으로 남아 그녀의 심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놈의 침묵하는 눈동자가 어떤 금지된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넌,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우는 마스크를 벗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파고들었지만, 몸속에 번지는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녀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은, 핏빛 눈동자를 가진 ‘놈’과의 기묘한 조우로부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