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덜컹거리는 증기기관의 불규칙한 박동이 도시의 모든 신경을 자극했다. 강철과 황동으로 뒤덮인 마천루는 구름을 뚫고 솟아올라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그 아래로는 수천 개의 가스등이 뱀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증기를 내뿜는 기계 장치의 굉음, 그리고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이루는 곳.
이 거대한 기계 도시, ‘강철 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크로폴리스의 심장부, 이곳이 바로 나의 삶이 시작되고, 동시에 처참한 끝을 고했던 곳이었다.
나는 강진호. 사람들은 나를 ‘황동의 연금술사’라 불렀다. 낡은 고철 더미에서도 숨 쉬는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하지만 그 칭호는 이제 비웃음거리가 될 테지. 나의 작은 작업실은 언제나 기름때와 증기 냄새, 그리고 기발한 발상으로 가득했다. 벽 한쪽에는 내가 직접 설계한 복잡한 기어 박스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계가 걸려 있었고, 중앙 작업대 위에는 이제 막 완성된 나의 역작, ‘천공의 기원’이 번쩍이는 강철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진호야! 드디어 해냈어! 우리의 ‘천공의 기원’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걸 확인했어!”
삐걱이는 문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이한결. 핏줄을 나눈 형제보다도 더 가깝다고 믿었던 나의 오랜 친구이자 공동 작업자.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유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땀에 살짝 젖은 앞머리는 열정 가득한 우리의 지난 세월을 대변하는 듯했다. 나는 작업대 위, 막 광을 마친 ‘천공의 기원’의 유려한 동체에서 시선을 떼고 한결을 마주 보았다.
“정말인가, 한결아? 엔진 효율은? 비행 안정성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모든 열정과 젊음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셀 수 없는 밤샘 작업 끝에 마침내 이뤄낸 꿈.
한결은 엄지를 치켜들며 환하게 웃었다. “완벽해! 기존 증기압의 한계를 넘어선 에테르-증기 혼합 엔진의 효율은 경이로울 정도야. 최소한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빠른 비행체가 될 걸. 이젠 더 이상 하늘의 제약 따위는 없어!”
나의 심장이 벅차올랐다. 우리의 ‘천공의 기원’은 단순한 비행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증기기관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동력원을 탑재한, 말 그대로 하늘을 여는 열쇠였다. 그 어떤 귀족도, 그 어떤 거대 기업도 성공하지 못했던, 무한한 동력을 꿈꾸는 우리의 야망 그 자체였다. 이 발명은 아크로폴리스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었다. 연료 걱정 없는 무한한 동력. 빈민가의 아이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을 꿀 수 있게 될 거라고,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었다.
“축배를 들자, 진호! 우리의 성공을 위해!”
한결은 작업실 한켠에 놓인 낡은 선반에서 먼지 쌓인 유리병과 두 개의 잔을 꺼냈다. 투박한 손으로 병마개를 따자, 달콤하면서도 알코올 향이 짙게 배어나는 오래된 술 냄새가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한결은 잔 가득 술을 따랐고, 우리는 잔을 들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미래의 꿈에,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우정에!” 내가 먼저 외쳤다.
“그래, 우리의 영원한 우정에!” 한결이 화답하며 내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쨍그랑! 맑은 소리가 작업실을 울렸다.
꿀꺽, 꿀꺽. 달콤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피로가 섞인 흥분 때문이었을까, 평소보다 더욱 강렬하게 알코올이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몽롱하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그때였다.
갑자기 작업실 문이 활짝 열리고, 무장한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갑옷은 아크로폴리스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제국 공학부의 문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쩐지 몸이 무겁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 이게 무슨…!”
내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혼란 속에서 겨우 쥐어짜내는 듯했다. 나는 한결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의 뒤, 어둠 속에 서 있는 한결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더 이상 유쾌하지 않았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승리에 도취된 악마의 미소였다.
“미안하다, 진호.”
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평온하고, 잔인할 정도로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명은 자네 같은 몽상가에게 맡기기엔 너무나 아까워. 난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어. 이 ‘천공의 기원’은 제국의 것이 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제국의 심장이 되겠지.”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나는 저항하려 애썼지만, 축배 잔에 든 약물 때문인지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입술만 겨우 파르르 떨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시야 저 너머로, 병사들이 우리의 역작, ‘천공의 기원’을 쇠사슬로 묶어 끌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차갑게 웃고 있는 한결의 얼굴. 그 잔인한 미소는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암전.
***
차가운 강철 바닥 위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폐허가 된 작업실 한가운데 버려져 있었다. 나의 모든 것, 나의 꿈, 나의 친구… 모든 것이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작업대 위는 박살 나 있었고, 수십 년간 모아온 나의 도구들은 짓밟혀 있었다. 거대한 시계는 멈춰 섰고, 부서진 톱니바퀴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나의 세계가 산산조각 난 것처럼.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며 다시 쓰러졌다. 아마도 약물의 후유증과 병사들에게 당한 폭행 때문일 것이다. 피가 흥건한 손을 들어 흐릿한 시야를 문질렀다. 흐르는 것은 땀인지, 눈물인지, 아니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몸속을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이한결. 너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나의 발명, 나의 명예, 나의 믿음, 그리고 나의 미래까지도.
나는 부서진 시계의 톱니바퀴 하나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강철 조각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검은 맹세만이 존재했다.
잊지 마. 나는 아직 살아있어.
그리고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처참하게 부숴버릴 거야. 네가 내게 준 고통보다 몇 배는 더한 절망 속으로 끌고 내려갈 테다.
나는 기꺼이 지옥으로 변해, 너를 끌고 내려갈 테다.
나의 복수는, 이제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