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의 최하층, ‘심연(アビス)’이라 불리는 곳. 이곳은 도시의 심장부에서 쏟아지는 모든 불순물과 빛을 걸러내고 남은 어둠이 영원히 정체하는 곳이었다. 거대한 기업들의 스카이라인을 지탱하는 묵직한 철골 구조물 아래, 낡은 배관에서 떨어지는 역한 오폐수가 웅덩이를 이루고 그 위로 희미한 네온사인이 마치 도시의 마지막 숨처럼 깜빡였다.
류진은 능숙하게 낡은 환풍구를 기어 나왔다. 사이버네틱 의안이 어둠 속에서도 픽셀 단위로 잔해들을 분석하며 최적의 경로를 제시했다. 그의 손에 들린 고출력 전자톱은 쉰 소리를 내며 녹슨 철문을 갈랐다. 찌르르륵, 촤르륵. 쇳가루가 공중에 흩날리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젠장, 또 여기냐.”
그가 중얼거렸다. 이번 작업 의뢰는 ‘구시대 데이터 뱅크’의 잔해를 찾아오는 것. 전설처럼 전해지는, 디지털 시대 이전의 자료가 담긴 저장소를 찾아오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다. 대부분은 허탕이지만, 아주 가끔은 상상 이상의 보물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 썩어가는 도시에서의 그의 수명은 몇 달씩 늘어나는 셈이었다.
이곳은 네오서울 건설 초기에 발견된 고대 유적지 위에 세워진 구역이었다. 건축 당시에는 모두 파괴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류진은 소문으로만 듣던 이야기들을 믿었다. 거대 도시의 그림자 아래에는 언제나 더 깊은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자톱이 마지막 철근을 끊어내자, 철문이 삐거덕거리며 안쪽으로 쓰러졌다. 안개처럼 뿌연 먼지가 훅 끼쳐왔다. 기침을 두어 번 터뜨린 류진은 방독면을 단단히 고쳐 썼다. 그의 의안이 내부를 스캔했다. 예상했던 데이터 뱅크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기이하게 잘 보존된 돌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듯, 벽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은 깨끗했다.
“이건… 뭐지?”
류진의 손가락이 벽면의 문양을 스쳤다.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 익숙한 합성수지나 금속의 질감이 아니었다. 오래된 돌이었지만, 그의 스캐너는 어떤 원자 구조도 파악하지 못했다. 미지의 물질. 그의 신경 회로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위험 신호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강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섰다. 길지 않은 복도를 지나자, 작은 원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은 무너져내린 듯했지만, 이 공간만큼은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치 제단을 연상시키는 돌기둥 위에 놓인 물체가 있었다.
검은색 돌이었다. 그러나 빛을 흡수하는 듯한 묘한 광택을 지녔고, 표면에는 방금 벽에서 본 것과 같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스캐너는 여전히 ‘데이터 없음’이라는 메시지만 띄웠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네오서울의 모든 물질은 적어도 기본적인 스캔 정보는 제공했다.
류진은 천천히 검은 돌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돌에 닿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그의 사이버네틱 의수를 타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뇌 속의 신경 회로가 불꽃처럼 튀었고, 의안의 디스플레이가 혼란스럽게 깜빡였다. ‘오류! 오류! 시스템 과부하!’ 경고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돌에서 희미한 검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깊은 심해에서 끌어올린 피처럼, 어둡고 끈적한 빛이었다. 동시에 류진의 머릿속에 수많은 파편적인 이미지가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낡은 고대어로 된 주문들이 귀청을 때렸고, 드넓은 대지 위로 거대한 건축물들이 솟아나는 광경,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아래에서 무릎 꿇은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빛과 어둠, 탄생과 파괴… 인류가 잊어버린, 아니, 애써 지워버린 잔혹한 역사의 조각들이었다.
“크악!”
류진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돌에서 손을 떼어냈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의안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돌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류진은 돌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봇들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고 있었다. 단순한 전자기적 충격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둥! 둥! 둥!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바닥을 흔들었다. 천장에서 굵은 돌덩이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어진 굉음과 함께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듯한 불길한 기운이 덮쳐왔다. 류진의 의안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하는 잔해도 함께 포착되었다. 구조물 붕괴 경고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마치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 같은 오한이 느껴졌다. 단순히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진 돌, 그가 깨운 미지의 힘이 이 모든 것을 촉발시킨 것이 분명했다.
류진은 돌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돌은 이제 그의 체온처럼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
“이런… 내가 뭘 건드린 거지?”
그의 눈앞에서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치듯 밀려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돌을 품에 안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붕괴의 진동과 함께, 네오서울 최하층의 심연 속에서, 오래된 힘의 파동이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