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맑은 햇살이 ‘청벽골’에 닿는 시간은 늘 더디었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아침 안개를 이불 삼아 밤의 서늘함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아는 그러나,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깨어나 움직였다. 그녀의 하루는 언제나 동이 트기 전, 약방의 낡은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으음, 오늘 아침 공기는 감초 향이 유난히 진하네.”

솔아는 콧등을 찡긋거리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작은 약방 안은 쌉쌀한 약초 내음과 달콤한 꿀 향, 그리고 갓 끓여낸 향긋한 차 향이 뒤섞여 오묘한 평화를 자아냈다. 스무 해 남짓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이 약방은 세상의 전부였다. 산을 오르내리며 귀한 약초를 캐고, 병든 이들에게 다가가 작은 위안을 건네는 일. 그게 솔아의 일상이었고, 삶의 전부였다.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아무리 시든 약초도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솔아는 그저 쑥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보은초’를 끓여야 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잦아진 박 씨 할아버지를 위한 약이었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약탕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솔아는 능숙하게 불 조절을 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약물 소리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바로 그때였다.

“솔아 아가씨! 솔아 아가씨!”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약방 문이 쿵, 하고 벌컥 열렸다. 떡 벌어진 문틈 사이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마을의 심부름꾼인 ‘돌쇠’였다. 그는 평소에도 늘 분주했지만, 오늘따라 얼굴은 흙빛이었고, 눈은 공포로 번뜩였다. 옷자락에는 나뭇잎과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솔아는 놀라 들고 있던 약사발을 내려놓았다. “돌쇠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돌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입을 열었다. “천… 천하제일… 무술대회… 글쎄… 글쎄 말이에요!”

솔아는 그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약방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에는 한적하기만 했던 청벽골이 오늘따라 시끄러웠다. 작은 마을이라 소식은 늘 느렸지만, 이렇게까지 한꺼번에 동요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불안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약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대회라니요? 겨울에 무슨 무술대회를… 아, 혹시 마을 씨름 대회 말씀이세요?” 솔아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청벽골에서 열리는 가장 큰 ‘대회’라고 해봐야 가을걷이가 끝난 후 열리는 씨름 대회뿐이었다.

돌쇠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딴 게 아니에요! 이건… 이건 온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이라고요! 하늘에서 내려온 방이… 방이 붙었어요!”

“하늘에서요?” 솔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보은초 약물을 저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돌쇠는 품에서 잔뜩 구겨진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솔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희고 질긴 비단에 붉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두루마리였다. 솔아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펼쳤다.

***

**천하제일무술대회 개최 공고**

**시공간을 초월한 재앙이 대륙을 위협하나니,**
**오직 위대한 무의 계승자만이 능히 이를 막을지라.**
**이에 천하의 운명을 걸고, 영웅을 선발하는 무술대회를 개최하노라.**
**각 문파와 숨겨진 고수들은 즉시 참가하라.**
**승자는 대륙의 수호자가 되어 태고의 신물을 다스릴 권능을 얻을 것이며,**
**패자는… 대륙의 패망을 지켜볼 뿐이리라.**

**날짜: 백록이 세 번 울고, 달이 가장 둥근 밤.**
**장소: 세상의 경계, 혼돈의 절벽 너머 영겁의 계곡.**

***

솔아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천하제일무술대회. 그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전설 속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산골 깊숙이 자리한 평화로운 청벽골에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전설이, 지금 그녀의 약방 문턱까지 와 있었다.

“이게… 정말이에요?” 솔아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돌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어귀 큰 바위에 저 두루마리가 박혀 있었어요. 번개처럼 꽂히면서… 온 세상에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렸다고요! 그리고… 그리고…”

그의 시선이 솔아의 작은 어깨 너머, 약방 한편에 놓인 낡은 목함으로 향했다. 약재를 보관하는 수십 개의 함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옻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함이었다. 솔아는 돌쇠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눈길을 옮겼다. 그녀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절대 열어보지 마라”는 말을 남기며 물려준 유일한 유품. 솔아는 그 함을 그저 ‘할머니의 비밀 상자’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그 안에는 어쩌면 잃어버린 보은초 뿌리나, 할머니의 오래된 쌈지 같은 것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대륙에 큰 재앙이 닥치거든… 함을 열어보라고…” 솔아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그녀는 그제야 돌쇠의 눈빛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두려움과 함께 어렴풋한 예감이 가슴을 옥죄어왔다.

돌쇠는 조용히 솔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가씨… 아가씨가… 그 함을 열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솔아는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약초 향기 속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작은 세상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천하의 운명이라니. 대륙의 수호자라니. 그녀는 그저 보은초를 끓이고, 감초 향을 맡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약방 아가씨일 뿐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낡은 목함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자, 차갑고 오래된 나무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망설임 끝에 그녀는 작은 빗장을 들어 올렸다.

끼이익—

오랜 세월 닫혀 있던 함이 마침내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은 없었다. 대신, 낡은 비단 천에 고이 싸인 무언가가 보였다. 솔아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냈다. 두 손에 올려진 것은 손바닥만 한 작은 옥패였다. 투명한 옥 안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 푸른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옥패 뒤에는, 낯설지만 익숙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천하의 운명이 너의 손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라.”**

할머니의 글씨였다. 할머니는 그저 산골 약방의 평범한 할머니가 아니었던가. 솔아는 옥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설렘이, 아주 작은 불씨처럼 가슴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청벽골의 아침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솔아의 세상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혼돈의 절벽 너머 영겁의 계곡으로 향해야 했다. 작은 약방 아가씨 솔아의, 거대한 모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