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한여름의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던 도시의 서쪽 끝, 폐기된 거대 병기 보관 구역의 봉쇄선 너머로 강태산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색 오버코트 자락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나른하게 휘날렸다. 그의 눈길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대신, 거대한 강철의 그림자를 드리운 ‘블랙 서펜트’를 향해 있었다. 한때 전쟁의 양상을 바꿀 것이라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비운의 프로토타입으로 남은 그 거대 전투 메카는 이제 죽음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강 형사님, 아니… 강 탐정님.”

봉쇄선 앞에서 기다리던 중년의 형사, 이현우가 그를 맞았다. 땀으로 얼룩진 이마에는 피곤과 당혹감이 역력했다.

“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태산은 짤막하게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이현우를 넘어, 블랙 서펜트의 거대한 다리 아래로 향하는 붉은색 출입 통제선에 닿아 있었다.

“사건 개요는 들었네. 한유진 박사라.”

“네. 오성그룹의 핵심 개발자입니다. 메카닉 공학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천재였죠. 그런데… 그만 블랙 서펜트 내부, 코어 챔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이현우는 침통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문제는, 그 코어 챔버가 외부에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겁니다.”

태산의 입술 끝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흥미가 동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밀실? 고작해야 자물쇠 하나 더 채워 넣은 정도겠지.”

“아닙니다! 블랙 서펜트의 코어 챔버는 오성그룹의 극비 개발 구역이었고, 어떤 외부 침입도 불가능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모든 공조 시스템, 통신망, 심지어 공기 흐름까지 완벽하게 차단되는 완벽한 밀실입니다. 출입구는 전자기 록으로 봉쇄되어 있었고, 내부 센서는 어떤 이물질의 침입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기록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환풍구는… 쥐 한 마리도 통과할 수 없어요.”

“그리고?”

태산은 묵묵히 블랙 서펜트의 강철 발판을 밟고 올라섰다. 둔탁한 금속음이 폐기장의 고요를 갈랐다.

“한유진 박사는… 가슴에 레이저 소사 흔적을 남긴 채 사망했습니다. 외상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내부에는 어떠한 레이저 발사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강도 침입 흔적도 없고요. 유서도 없습니다. 타살이라면 범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자살이라면, 대체 무슨 수로?”

블랙 서펜트 내부의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두터운 이중 해치 문을 통과하자 코어 챔버가 나타났다. 거대한 원형 공간. 사방이 티타늄 합금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각종 센서와 제어 패널이 가득한 콘솔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유진 박사의 시신은 그 콘솔 앞에 쓰러져 있었다. 푸른 작업복은 가슴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원형의 검은 흔적 주변으로 녹아내려 있었다.

“흠…”

태산은 시신을 훑어보지도 않고, 챔버의 천장과 벽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를 살펴보듯 꼼꼼했다.

“열 감지 센서, 음파 감지기, 압력 감지기, 그리고 미세 진동 센서까지… 과연 완벽한 밀실이군. 이 정도면 바늘 하나도 통과하기 어렵겠어.”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혹시… 범인이 미리 안에 숨어 있었다던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챔버 내부에는 대형 메카닉 부품 말고는 숨을 만한 공간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저희가 모두 확인했습니다. 인체의 흔적은 전혀 없어요.”

태산은 한유진 박사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콘솔에 쓰러져 있는 그의 손은 아직도 차가운 강철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미묘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움켜쥐려 했던 것처럼.

“박사는 뭘 하고 있었나?”

“블랙 서펜트의 코어 시스템 개량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메카는 에너지 전송 시스템이 핵심인데, 박사가 그걸 더 발전시키려 했답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극비 프로젝트였고요.”

“에너지 전송 시스템.”

태산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의 시선은 시신 옆의 콘솔 패널을 따라, 벽면에 박혀 있는 굵은 에너지 전송 도관으로 향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강철 도관이었지만, 표면에 미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도관 표면을 쓸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그을음 자국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오염과는 다른, 고온에 의한 미세한 변색이었다.

“이건…?”

이현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벽면에 아주 작은 그을음 자국이 보입니다. 박사가 죽기 직전, 이 근처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는 증거겠지.”

“하지만 저희는 어떤 발열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레이저 발사 장치도 없었고요.”

태산은 빙긋 웃었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럼, 범인은 장치를 숨길 필요가 없었던 거야. 애초에 장치가 아니었으니까.”

이현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봐, 이현우 형사. 블랙 서펜트의 코어 챔버는 완벽한 밀실이었지만, 동시에 이 거대 메카의 심장부였지. 모든 에너지가 모이고, 흐르고, 제어되는 곳. 한유진 박사는 바로 그 에너지의 흐름을 연구하고 있었고.”

태산은 코어 챔버의 중앙, 천장에서 바닥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에너지 도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도관은 흡사 거대한 뱀처럼 챔버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블랙 서펜트의 에너지 코어는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었어. 그것은 극도로 정밀하게 제어되는 에너지 무기였다고. 한유진 박사가 개발하려 했던 것은 그 무기 시스템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막고 싶었어.”

“그렇다면… 범인은 블랙 서펜트 자체를 무기로 사용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현우의 목소리에 경악이 섞였다.

“정확해. 범인은 이 밀실의 특성을 역이용했어. 챔버 외부에서, 블랙 서펜트의 오래된 정비용 백도어 인터페이스를 통해 코어 시스템에 접근한 거야. 그리고는 타이머를 설정했거나, 특정 시점에 맞춰 코어 챔버 내부로 강력한 에너지 플라즈마를 집중 방출시킨 거지.”

태산은 벽면의 그을음 자국을 다시 한번 짚었다.

“박사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에너지 방출에 당했을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마지막으로 콘솔을 움켜쥐려 했겠지. 에너지는 한 점으로 집중되어 박사를 꿰뚫었고, 그 뒤 챔버 내부의 완벽한 에너지 순환 시스템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마치 한 방울의 물이 거대한 바다에 스며들듯. 그래서 어떠한 발사 장치도, 레이저의 흔적도 남지 않았던 거지.”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에너지 플라즈마를 그렇게 정밀하게 조종해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다니.”

이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불가능하지 않아. 블랙 서펜트는 본래 전투를 위해 설계된 메카닉이야. 한유진 박사 역시 그 에너지 시스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 했고. 다만 범인은 그 기술을 박사보다 먼저, 살인에 활용한 것뿐이야.”

태산은 챔버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이현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블랙 서펜트는 밀실의 모든 감시를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밀실 자체를 무기로 삼은 거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완벽한 살인 병기였던 셈이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누가 이 블랙 서펜트의 구형 인터페이스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박사의 연구를 막으려 했는지 찾아내는 거야.”

이현우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밀실 살인 사건의 거대한 퍼즐이 강태산의 손에서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메카닉이 만들어낸 죽음의 밀실은, 결국 그 메카닉의 심장부를 꿰뚫어 보는 천재 탐정의 눈앞에서 속살을 드러냈다.

블랙 서펜트의 차가운 금속 벽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희생된 한 박사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새로운 진실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태산은, 다시금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이미 다음 퍼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