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도시의 불빛이 아득히 멀리 점멸하는 밤하늘 아래, ‘천공의 요새’라 불리던 박 회장의 펜트하우스는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아니, 침묵을 가장한 절규가 가득했다. 웅장한 로비, 금빛으로 번쩍이는 엘리베이터를 지나 최상층에 도착하자, 형사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미세한 긴장감이 공기를 짓눌렀다.

“서진아, 어서 와봐. 이건…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돼.”
김민준 형사의 목소리는 평소의 껄렁함은 온데간데없이, 피로와 당혹감으로 잔뜩 지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도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발걸음에 맞춰 스르륵 흔들렸다. 스물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동자는 심해의 빛을 담은 듯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것 같은, 그런 시선이었다.

사건 현장인 침실 문 앞에 섰다. 강철로 보강된 문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문고리는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육중한 이중 잠금장치마저 단단히 걸려 있었다. 문틈을 봉쇄라도 하듯 꼼꼼하게 붙여진 봉인 테이프는 경찰이 도착했을 때와 다름없이 온전했다.

“박 회장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가슴에 단검이 꽂혀 있었습니다. 자상은 단 한 번, 매우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했죠. 고통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김 형사가 낮게 설명했다.

서진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펜트하우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통창 너머로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지만, 창문은 안쪽에서 육중한 잠금쇠로 이중, 삼중 잠겨 있었다. 환기 시설은 성인 남자가 드나들 수 없는 좁은 구조였고, 벽난로도 없었다. 완벽한 밀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내부에서 스스로 잠근 흔적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자살이 아니죠.”
서진의 시선은 시신을 한 번 훑고, 방의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핏자국은 단검이 꽂힌 부위에만 응고되어 있었고, 흐트러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단정했다. 너무나도.

김 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네, 부검의 소견도 그렇습니다. 자살이라면 단검을 쥔 손에 힘줄 자국이나 망설인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마치 누군가 뒤에서 찔렀다가 단검을 손에 쥐여준 것 같다는군요. 하지만 침실엔 박 회장 혼자였습니다.”

서진은 눈을 감았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 따뜻하고 끈적한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남다른 감각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거짓을 비명처럼 외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방 안을 거닐었다.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시선은 바닥을 훑다가, 천장을 응시하다가,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에 멈췄다.

박 회장은 세상의 이목을 끄는 괴팍한 수집가로 유명했다. 특히 고대 유물이나 주술적 의미를 지닌 물건에 집착했는데, 이 방은 그 박물관의 한 부분 같았다.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흑단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와, 검게 빛나는 흑요석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서진은 흑요석 조각을 손에 들었다. 차가운 금속 같은 감촉과 달리, 돌덩이 안에서는 희미한 잔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 중의 끈적한 기운이 마치 그 조각에 반응이라도 하듯 잠시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이거… 낯설지 않은 기운인데요.” 서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김 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운이요? 뭔 기운이요? 박 회장이 모으던 괴상한 주술품 때문에 이런 감각적인 말을 하시면….”

서진은 흑요석을 내려놓고, 탁자 뒤편의 벽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거울이 걸려 있었다. 고풍스러운 주석 테두리에 둘러싸인 거울은 마치 이 방의 심장처럼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서진은 거울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거울 속에 비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거울 표면을 스윽 쓸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매끄러운 유리였다. 하지만…

“이 거울, 원래 이 벽에 붙어 있던 겁니까?” 서진이 물었다.
김 형사는 자료를 확인하고 답했다. “네, 박 회장이 이 펜트하우스를 사면서 인테리어에 같이 설치한 겁니다. 워낙 골동품을 좋아해서요. 이동시킨 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 방은 밀실이 맞습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형사의 얼굴에 일말의 안도가 스치는 듯했다. “하지만 범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죠.”

김 형사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서진아, 너도 알잖아. 아무도 들어오고 나갈 수 없었다고!”

서진은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흑요석 조각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대 그림자술사들이 차원간 이동을 위해 사용했던 유물 조각입니다. 정확히는 그림자 영역을 물질 세계에 투사하여, 일시적으로 육체를 비물질화하거나 공간을 왜곡시키는 데 쓰였다고 하죠.”

“그림자… 술사요?” 김 형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서진아, 아무리 네가 괴짜라도 이건 너무 나갔다. 지금 살인 사건 현장이야!”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범인은 그 ‘나감’을 이용했으니까요.” 서진은 자신의 그림자를 거울에 비춰보다가, 거울 주변의 미세한 공기의 일렁임을 감지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희미한 왜곡이었다. 그리고 그 왜곡은, 거울이 걸린 벽을 따라 흐르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박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박 회장이 문을 잠갔을 겁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혹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해. 하지만 그건 범인을 가두는 행위가 아니었죠. 오히려 범인은 그 완벽한 밀실을 이용해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대체 어떻게! 공중부양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김 형사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더 교묘하게, 이 방의 가장 완벽한 부분을 이용했습니다. 이 거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에요. 이 거대한 주석 테두리는 일종의 에너지 증폭 장치입니다. 그리고 이 벽 뒤에는 아마… 비상용 엘리베이터 통로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평소에는 완벽하게 밀봉되어 외부에서 열 수 없고, 내부에서도 숨겨진 장치로만 조작이 가능했을 테죠.”

김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상용 엘리베이터? 하지만 도면에도 그런 건….”

“박 회장이라면 충분히 비공식적으로 그런 통로를 만들었을 겁니다.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위해, 혹은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요. 문제는 그 통로가 이 방에서는 벽으로 완벽하게 막혀 있다는 겁니다.” 서진은 손가락으로 거울이 걸린 벽의 한 지점을 짚었다. “범인은 이 방으로 침입할 때 평범하게 들어왔을 겁니다. 박 회장을 만났고, 말다툼을 했거나, 혹은 순식간에 기습했겠죠. 그리고 박 회장이 스스로 잠금장치를 걸거나, 범인이 빠져나간 뒤 회장이 잠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나가는 건요? 그 완벽한 벽을 어떻게 뚫었다는 겁니까?” 김 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서진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바로 이 흑요석 조각과 거울을 이용한 겁니다. 이 흑요석은 그림자술사들이 그림자 영역과 물질 세계의 경계를 흐리게 할 때 사용하던 촉매제입니다. 범인은 아마 이 조각과 같은, 혹은 더 강력한 그림자 유물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이 방의 거울은 그런 에너지를 모으고 증폭시키는 일종의 장치 역할을 했던 거고요.”

“범인은 살해 후, 이 흑요석과 자신의 유물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육체를 비물질화했습니다. 그림자 영역으로 몸을 일부 이동시켜, 마치 연기가 벽을 통과하듯 이 벽을 통과해 비상용 엘리베이터 통로로 빠져나간 겁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한 기술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희미한 잔열과 공기의 왜곡이 제가 감지한 ‘끈적한 기운’입니다.”

김 형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진이 가리킨 벽을 바라봤다. 완벽하게 견고해 보이는 벽. 그 뒤에 숨겨진 비밀 통로,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탈출.

“밀실은 완벽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요. 하지만 범인은 물리적인 법칙을 잠시 비껴가는, 이 세계의 또 다른 법칙을 이용했습니다. 이 방은 사실, 범인의 ‘탈출구’가 숨겨져 있던 장소였던 겁니다.” 서진은 거울이 걸린 벽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희미한 떨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범인은 이 트릭이 너무 완벽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김 형사는 고개를 숙였다. 한숨이 아니라, 깨달음의 탄식이었다. “젠장… 그림자술사라니. 그럼 이제 뭘 해야 합니까? 그림자술사를 잡으러 가야 합니까?”

서진은 피식 웃었다. “아니요. 그림자술사라고 해도 결국 인간입니다. 이런 고대 유물을 다루는 자들은 대체로 박 회장처럼 기이한 수집가들과 연관이 깊습니다. 박 회장의 거래 기록이나, 그가 접촉했던 인물들을 다시 조사하십시오. 이 흑요석 조각과 같은 유물을 거래했던 자들, 혹은 그림자술에 능통하다고 알려진 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눈은 다시 심해의 평온을 되찾았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그림자 뒤에 숨은 자를 찾아내는 일뿐입니다.”

김 형사는 서진의 어깨를 툭 치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아득히 멀리서 점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빛은 더 이상 박 회장의 죽음을 감추는 장막이 아니었다. 그림자 속에 숨겨진 진실을 향한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