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운현동 괴담: 첫 번째 밤

늦은 밤, 이진우는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아파트 거실에 규칙적인 리듬을 새겼다. ‘운현 아파트’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십 층 높이의 이 건물은 지어진 지 채 삼 년도 안 된 신축이었다. 진우의 자그마한 월세방은 갓 페인트칠을 마친 듯한 새집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몇 달 전 이사 온 이후로, 그는 낡은 가구 몇 개와 최소한의 짐으로 이 깨끗한 공간을 채웠다. 딱, 이진우의 삶처럼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밤 열두 시가 훌쩍 넘었지만, 진우의 하루는 이제 막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겨야 하는 마감이 코앞이었다. 한 손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이, 다른 한 손에는 소설의 다음 문장을 고민하는 머리가 놓여 있었다.

“젠장, 이 문장이 아닌데…”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방금 쓴 문단을 지워버렸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늘 이런 식이었다. 만족할 만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씨름하는 건 예사였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딸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같았는데. 싱크대에 설거지할 게 남아있었나? 그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주방을 쳐다봤다. 불 꺼진 주방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컵이 제대로 놓이지 않아서 쓰러졌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벽에 혼자 덜그럭거리는 소리는 꽤나 크게 들리는 법이다. 피곤한 탓에 예민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한참 후, 마침내 만족스러운 문장을 찾아냈다.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손목을 돌리며 뻐근함을 풀었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불 꺼진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했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우는 아까 그 ‘딸그랑’ 소리의 근원을 알아차렸다. 싱크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컵 하나가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눕혀져’ 있었다.

“이상하네.”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컵은 평소 자신이 컵걸이에 걸어두는 방식대로 잘 걸려 있었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옆으로 스르륵 밀려나 넘어진 모양새였다.

‘지진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컵 하나만 쓰러질 리가 없잖아.’

어젯밤의 미진한 기억을 더듬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컵을 걸어두면서 혹시 비스듬하게 걸어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혼자 이렇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는 컵을 다시 세워놓고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퍽 상쾌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컵 사건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피로와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뒤섞여 뒤척였다. 이 집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그의 유일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누군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처럼.

* * *

다음 날 오후, 진우는 약속대로 원고를 보냈고,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늦은 점심을 겸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 어제 사둔 반찬을 꺼내고, 밥을 데웠다.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또 다시 알 수 없는 소리가 진우의 귀를 때렸다.
이번에는 침실에서 들려왔다. ‘툭, 툭.’ 마치 작은 돌멩이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다.

진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을 열자, 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지만, 고층 아파트라 주변에 그 무엇도 날아올 리 없었다. 이상하다. 창문에 금이 간 것도 아니었다.

‘바람 소리인가? 아니, 너무 선명했는데.’

그는 침실을 꼼꼼히 살폈다. 옷장 문은 잘 닫혀 있었고, 책꽂이의 책들도 가지런했다. 바닥에 떨어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독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진우는 문득 어제 엎어져 있던 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서늘한 기운이 마치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주방에서 느껴졌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 노력하며 침실 문을 닫았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지만, 식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밥그릇을 밀어놓고 휴대폰을 들었다. 혹시 오래된 아파트 건물이라 어딘가 고장이 났거나, 환풍구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볼까? 그러나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혼자 집에 있어 외로워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진우는 자신을 납득시키려 했다. 며칠 밤샘 작업 때문에 피곤해서 헛것이 들린 거라고.

하지만 다음 날, 일상은 더욱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려는데, 커피잔이 평소와 다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늘 같은 위치, 싱크대 오른쪽 상단 선반에 커피잔을 두었다. 그런데 컵은 왼쪽 선반에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밤사이에 위치를 바꿔 놓은 것처럼.

“내가 깜빡했나?”

진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사소한 습관에도 철저한 사람이었다. 이건 그저 착각일 뿐이라고, 그는 애써 넘어가려고 했다.

오후에는 서재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막히는 부분에서 잠시 펜을 놓고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책상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띠링’ 소리를 내며 잠금 화면이 켜졌다. 아무 알림도 없는데. 그리고 화면이 켜진 채로 다시 꺼졌다. 마치 누군가 휴대폰을 살짝 건드린 것처럼.

진우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서둘러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아무런 앱도 실행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텅 빈 서재는 고요하기만 했다.

‘누가 장난치는 건가? 옆집에서 몰래카메라 같은 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식탁에 앉아 멍하니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창밖의 도시 야경이 아름다웠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때, 거실 불이 ‘팟’ 하고 꺼졌다.
그리고 곧바로 ‘팟’ 하고 켜졌다.
깜빡임이 아니었다. 스위치를 눌렀다가 다시 켠 것처럼.

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실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향해 더듬거리며 다가갔다.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려는데, 차가운 공기가 그의 손목을 스쳤다. 마치 차가운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가 놓는 것처럼.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거실의 모든 불이 ‘팟!’ 하고 동시에 켜졌다. 너무나 밝아 눈이 부셨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실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도 잠겨 있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이건…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니야.’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거실 구석으로 물러섰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솟구쳤다.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며칠 사이 그의 집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젠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명백하고 소름 끼치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 꽃병이 스르르 공중으로 떠올랐다.
진우의 눈앞에서, 투명한 유리병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것처럼 서서히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입술만 파르르 떨었다.

꽃병은 한참을 공중에 떠 있다가, 아주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소리가 진우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말도 안 돼…”
그의 입에서 겨우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 ‘운현 아파트’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와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명백히,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유리 파편이 흩뿌려진 바닥을 바라봤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