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황량한 잿빛 대지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먼지와 모래가 뒤섞인 바람이 뼈를 깎는 듯한 소리를 내며 불어왔고, 저 멀리 앙상한 철골 구조물들이 유령처럼 솟아 있었다. 한때 번영했던 도시의 흔적들이었지만, 이제는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다. 강하준은 낡은 방진 마스크를 고쳐 쓰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옆에는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유진이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뒤따랐다.

“하준 오빠, 저기, 저게 우리가 가려던 곳 맞아요?”

유진의 목소리는 마스크 때문에 조금 뭉개져 들렸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지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접시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한때 통신을 담당했을 위성 기지국. 폐허가 된 세상에서 그곳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어쩌면 아직 가동 중인 시스템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 저기까지 가면 오늘 밤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쓸 만한 장비라도 찾을 수도 있고.”

하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기대감과 함께 깊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지난 몇 주간 그들은 식량과 식수를 찾아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독성 먼지에 시달렸고, 밤에는 정체 모를 그림자들이 배회하는 위험에 노출되었다.

정오를 넘어서자, 하늘이 더욱 탁해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태양조차 완전히 가려지며 세상은 더욱 어둠 속으로 잠식당했다. 그리고 이내, 맹렬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젠장, 모래 폭풍이 온다!”

하준의 외침과 동시에, 황토색 장벽이 지평선 너머에서 솟아오르며 미친 듯이 다가왔다. 시야가 순식간에 희미해지고, 먼지 알갱이들이 살갗을 후려쳤다.

“유진! 빨리, 저쪽으로!”

하준은 근처에 널브러진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 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한때 고층 빌딩이었을 잔해로, 절반쯤 파묻힌 채 거대한 동굴을 이루고 있었다. 완벽한 은신처는 아니었지만, 이 미친 폭풍 속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두 사람은 남은 힘을 쥐어짜 달리다시피 하며 콘크리트 잔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쿵, 쿵, 쿵! 폭풍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마치 거대한 괴물이 포효하는 듯했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날카로운 먼지 알갱이들이 더 이상 피부에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거친 모래바람은 여전히 내부까지 스며들어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준은 마스크를 더욱 단단히 고쳐 썼고, 유진 역시 잔뜩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괜찮아?” 하준이 유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안한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하준 오빠, 여기에… 아무도 없겠죠?”

그녀의 질문에 하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유진이 괜한 불안감을 느낀 건 아니었다. 이런 폐허 속의 임시 은신처들은 종종 다른 생존자들이나, 더 위험한 존재들의 소굴이 되곤 했다. 그들 역시 이곳으로 숨었으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터.

하준은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흙먼지가 자욱한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바닥에는 낡은 천 조각들과 부식된 금속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벽면에는 검은색으로 긁힌 자국들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는,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으로 긁어낸 흔적이었다.

긴장감이 목구멍을 조여 왔다. 하준은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폭풍 소리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규칙적이지 않은, 불쾌한 마찰음.

“쉿.”

하준은 유진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유진의 눈이 불안하게 커졌다. 그녀 역시 무언가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하준은 조심스럽게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탄창에 남아있는 탄환은 고작 다섯 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점점 더 명확해지는 소리. 그것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콘크리트 벽을 긁어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흐읍, 흐읍, 하는 거친 숨소리. 그것은 인간의 숨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야수 같았다.

하준은 손전등의 빛을 최대한 낮추고, 잔해 더미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비췄다. 빛이 닿는 곳에서, 움직이는 검은 형체가 순간적으로 포착되었다. 몸집은 개만큼 작았지만, 그 형체의 움직임은 기괴할 정도로 빨랐다. 여러 개의 다리, 혹은 팔이 뒤엉켜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변이된 생물체 특유의 핏발 선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이미 그들의 은신처였다.

“젠장…!”

하준의 나지막한 욕설과 동시에, 어둠 속의 괴생명체가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하준과 유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좁은 공간에서 회피할 여유도 없이, 하준은 본능적으로 권총을 들어 발사했다.

탕! 굉음이 콘크리트 동굴을 뒤흔들었다. 괴생명체는 비명을 지르며 벽에 부딪혔지만, 이내 몸을 비틀며 다시 달려들었다. 강철 같은 피부는 총알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치명타를 입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유진, 도망쳐!”

하준은 외치며 두 발째 총알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괴생명체의 목덜미를 정확히 맞췄다.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지는 괴생명체.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탕! 탕!

어둠 속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총성. 하준은 당황했다. 이건 자신의 총에서 나간 총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잔해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괴생명체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마리, 세 마리… 그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방금 들린 총성은… 다른 생존자들이, 이곳에 숨어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하준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유진의 비명소리가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그녀의 옆구리에 날카로운 발톱이 스쳐 지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유진!”

하준은 남은 총알 두 발을 연달아 쏘며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쓰러지는 괴생명체들 사이로, 그는 유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도망쳐야 해! 이쪽이야!”

그들은 필사적으로 좁은 통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등 뒤에서는 끈질긴 괴생명체들의 그림자가 따라붙었고, 폭풍 소리는 그들의 귀를 찢어놓는 듯했다. 유진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자꾸만 휘청거렸고, 하준은 그녀를 부축한 채 몸을 거의 끌다시피 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들은 콘크리트 잔해의 반대편 출구로 몸을 내던졌다. 바깥은 여전히 맹렬한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에 충분했다.

“젠장…!”

하준은 이를 악물었다. 피 흘리는 유진을 보며 그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죄여왔다. 사방이 적이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끝이었다.

그때, 유진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저 멀리 흐릿한 어둠을 가리켰다.

“오빠… 저기… 빛….”

하준이 고개를 돌리자, 폭풍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파란색 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멀리서 자신들을 유인하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신호일 수도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하준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그는 유진을 더 단단히 부축하고,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빛은 그들을 구원할 빛일까,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이끄는 유혹의 불빛일까?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잿빛 폭풍 속에서, 그들은 미지의 빛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