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붉은 흙먼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고철 덩어리들이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낸 고층 건물들의 그림자 아래, 나의 애기이자 유일한 생존 도구인 ‘고철’은 묵묵히 전진했다. 삐걱이는 관절음이 삭막한 침묵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젠장, 또 헛걸음인가.”
조종석 안, 나는 마른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잔여 에너지 13%’라는 경고 문구가 깜빡였다. 이대로는 돌아갈 연료도 빠듯하다. 사흘째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물통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비상 식량도 마지막 한 조각만 남아 있었다.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물’과 ‘에너지’는 곧 생명이었다.
고철의 거대한 발이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위를 밟았다. 한때는 번화했을 도시의 중심부였을 곳. 지금은 모래와 폐허만이 남아 과거의 영광을 조롱하고 있었다. 부서진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스산한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쪽은 더 이상 가망 없어. 방향을… 읍, 잠깐.”
내가 무심코 핸들을 꺾으려던 순간, 레이더가 희미한 신호를 잡았다. 북서쪽 3시 방향, 약 2킬로미터. 에너지 반응.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오래된 발전소, 아니면… 데이터 센터?
내 심장이 희망으로 두근거렸다. 어쩌면 쓸만한 배터리 셀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하다못해 작동하는 폐기물 처리 장치라도.
“그래, 이거라도 찾아야지. 가자, 고철.”
조심스럽게 기체를 움직였다. 고철은 이름처럼 여기저기 덧대고 고쳐서 만든 누더기 기체였다. 낡은 장갑은 긁히고 패였고, 동력원도 여러 번 교체되어 효율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수많은 위기에서 나를 구해낸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내가 조작하는 대로 정직하게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
수백 년 전의 건물 잔해를 헤치고 나아가자, 이내 한때 거대했을 것으로 보이는 통신 중계탑의 뼈대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땅속으로 꺼져 있었다. 분명 옛날의 주요 시설이었을 터였다. 주변은 오랜 풍화와 전쟁의 상흔으로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지만, 지하 입구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다.
” Bingo.”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조심스럽게 고철을 지하 입구 쪽으로 몰았다. 입구는 두꺼운 철문으로 막혀 있었지만, 한쪽이 떨어져 나가 통로가 확보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고철의 헤드라이트가 빛을 뿜어냈다. 먼지투성이의 통로, 부서진 환기구, 그리고 곳곳에 흩어진 금속 파편들. 묵직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와 부식된 금속의 냄새.
통로를 따라 100미터쯤 내려갔을까.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한때는 서버 랙이 빼곡했을 공간. 지금은 거대한 기둥들만이 듬성듬성 서 있고, 바닥에는 엉겨 붙은 전선 더미와 깨진 유리 조각이 뒹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발전기…”
낡았지만, 분명히 전력을 생산했을 법한 거대한 원통형 발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망이 더욱 선명해졌다. 발전기가 있다면, 그 주변에 보조 배터리나 하다못해 동력 제어용 장치라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면!
나는 서둘러 고철을 발전기 쪽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팔의 집게를 이용해 주변의 잔해들을 치웠다. 먼지가 폭풍처럼 일었다.
*콰직!*
그때였다. 홀의 반대편 어둠 속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등골이 서늘해졌다. 레이더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바닥이 무너지는 소리였나? 아니면 쥐 같은 게… 아니, 이 규모의 소리는 쥐가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철의 왼팔에 장착된 에너지 캐논을 활성화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오른팔의 강화 드릴도 준비 태세를 갖췄다.
“어이, 거기 누구 있냐?”
내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답은 없었다. 하지만… 섬뜩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스스슥… 콰직!*
이번에는 훨씬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어둠 속, 기둥 뒤편.
*부우우우웅…*
고철의 센서가 경고음을 울렸다. 레이더에 거대한 녹색 점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내 위치로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너무 늦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끔찍한 형상의 괴물이었다. 여섯 개의 다리, 마치 낫처럼 날카로운 앞다리 두 쌍, 그리고 등에서는 검고 거친 가시들이 솟아 있었다. 육중한 몸뚱이는 기괴한 근육질로 뒤덮여 있었고,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듯한 머리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여섯 개의 눈이 나를 향해 번뜩였다. ‘지하 맹수’. 녀석은 햇빛이 없는 지하에서만 서식하는 끔찍한 포식자였다.
*크와아아아악!*
괴물의 울부짖음이 홀을 뒤흔들었다. 녀석은 망설임 없이 고철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앞다리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철을 오른쪽으로 급선회시켰다. 쇠 긁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녀석의 앞다리가 고철의 왼쪽 어깨 장갑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충격이 조종석까지 전해졌다.
“젠장, 빠르잖아!”
에너지 캐논을 발사했다. *쉬이이이잉!* 푸른 에너지 볼이 굉음을 내며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녀석은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몸을 비틀어 에너지 볼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에너지 볼이 녀석의 오른쪽 앞다리에 스쳤다.
*끼이이이익!*
괴로운 비명과 함께 다리에서 검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이빨이 잔뜩 박힌 거대한 입이 벌어지며 고철의 조종석을 노렸다.
“안 돼!”
나는 황급히 고철의 오른팔 강화 드릴을 작동시켰다. *위이이이이잉!* 육중한 드릴이 맹렬히 회전하며 괴물의 턱을 향해 뻗어 나갔다.
*콰아앙!*
쇠와 뼈가 부딪치는 끔찍한 소리. 괴물은 강철 드릴의 위력을 예상하지 못한 듯, 옆으로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녀석의 턱은 온전히 버텨냈다. 강화 드릴이 겨우 녀석의 단단한 껍질에 흠집을 냈을 뿐이었다.
“이게 뭐야, 괴물인가!”
녀석의 껍질은 마치 강화 강철 같았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씨알도 안 먹힐 위력이었다.
나는 전술을 바꿨다. 근접전은 위험했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에너지 캐논으로 지져야 했다. 고철의 후진 기어를 최대로 올렸다. *끼이이이익!* 낡은 모터가 비명을 지르며 고철을 뒤로 밀어냈다.
하지만 괴물은 더욱 빨랐다. 녀석의 여섯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맹렬히 추격했다. 홀의 기둥들을 이용해 시야를 가리려 했지만, 녀석은 감각만으로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듯했다.
“젠장, 에너지가 얼마 안 남았는데!”
디스플레이에는 ‘잔여 에너지 8%’ 경고가 깜빡였다. 에너지 캐논을 한두 발 더 쏠 수 있을까?
녀석이 다시 점프했다. 이번에는 홀의 천장을 박차고 날아와 고철의 위로 떨어지려 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고철의 왼팔에 장착된 캐논의 충전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팔의 강화 드릴로 바닥을 긁었다. *지지지지직!*
괴물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고철을 옆으로 크게 기울이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충전이 완료된 에너지 캐논을 녀석의 배 쪽을 향해 발사했다.
*콰아아아아앙!*
푸른 섬광이 홀을 가득 채웠다. 에너지 볼이 괴물의 부드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배 부분을 정확히 강타했다. 녀석의 몸에서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거친 경련을 일으키며 꿈틀거렸다. 에너지 볼이 녀석의 약점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다. 녀석의 희미한 눈빛이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철의 오른팔을 뻗어 강화 드릴을 녀석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
*꿰에에에에엑!*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괴물의 몸이 굳어졌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고철의 드릴이 괴물의 뇌수를 찢어발겼다.
이윽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홀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피 냄새가 역하게 풍겨왔다.
“하아… 하아…”
조종석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이 떨렸다. 간신히 이겼다. 고철의 장갑은 곳곳이 찌그러지고 파손되었다. 에너지도 거의 바닥이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레이더를 다시 확인했다. 더 이상 움직이는 생명체는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발전기뿐.
나는 고철을 다시 발전기 쪽으로 움직였다. 어깨 장갑은 너덜너덜했고, 한쪽 다리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내 말을 들었다.
발전기 근처에는 다행히도 옛날의 보조 전력 공급 장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고철의 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장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오염된 전력일 수도 있었지만, 비상용으로는 충분했다.
몇 개의 배터리 셀을 겨우 건져낼 수 있었다. 그것들을 고철의 보조 동력 슬롯에 연결하자, 디스플레이의 잔여 에너지 표시가 조금이나마 올라갔다. ‘잔여 에너지 15%’. 아직 부족했지만,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배터리 셀 외에도, 나는 한 가지 뜻밖의 발견을 했다. 발전기 뒤편의 부서진 제어판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장치가 발견된 것이다. 낡고 먼지가 가득했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색 LED가 그것이 아직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얇은 케이블을 연결하자, 장치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록 복구 중… 최종 보고… 시스템 전복… 생존 가능성 0.001%… 새로운 에너지원… 탐색…」
목소리는 끊겼지만, 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새로운 에너지원’?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생존 가능성 0.001%’. 그 절망적인 수치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나는 작은 장치를 조심스럽게 고철의 보조 인터페이스에 연결했다. 이 작은 정보 조각이, 어쩌면 나의 다음 목표가 될 수도 있었다.
“고철, 이제 돌아가자.”
나는 중얼거렸다. 육중한 기체가 홀을 벗어나 지하 통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피 냄새, 먼지, 그리고 희미한 희망이 뒤섞인 공기를 마시며. 바깥세상은 여전히 황폐하고 위험했지만, 나는 이 작은 정보 조각을 안고 다시 햇빛 속으로 나아갔다. 내일, 그리고 또 다음 날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