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달의 잔흔, 붉은 입술**

한설아는 익숙한 비릿함 대신, 기이하도록 달콤하고도 차가운 금속성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명동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성북동 꼭대기, 고풍스러운 기와집과 현대식 미니멀리즘이 오묘하게 뒤섞인 호화 맨션이었다. 피해자는 고동현. 국내 미술 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미술품 감정사였다.

“팀장님, 현장 이상 없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 전혀 없고요. CCTV는 작동 중이었는데, 어젯밤 10시부터 오늘 새벽 6시까지 화면이 멈춰있었습니다.”

막내 형사의 보고에 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닫힌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발끝에서부터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고급스러운 서재 안, 앤티크 책상에 엎드린 고동현은 흡사 밀랍 인형 같았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했고, 눈동자에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손끝으로 그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체온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야.”

설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피가 마른 것도, 내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공허했다. 마치 영혼까지 텅 비어버린 듯한, 기묘한 허탈감만이 고동현의 잔해에 남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력반 베테랑 형사들도 침묵에 잠긴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 냄새… 못 느끼겠어?”

설아의 말에 동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후각은 유독 예민했다. 시체의 부패향이나 혈흔과는 다른, 미묘하게 유혹적이면서도 섬뜩한 냄새가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동현의 입술 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은빛 가루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마치 달빛 한 조각을 머금은 듯한.

그때였다. 통제선 밖에서 한 인영이 서서히 다가왔다. 검은색 수트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남자였다. 짙은 밤색 머리카락과 더 짙은 눈동자는 어둠을 머금은 듯했고, 날렵한 콧날과 단단히 다문 입술은 차가운 조각 같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 기묘한 정적을 깨뜨리는 듯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통제선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설아는 직업적인 경계심으로 그를 응시했다. 남자는 설아의 질문에도 표정 변화 없이 고동현이 엎드려 있는 책상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시체에 닿는 순간, 설아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기시감을 느꼈다. 무언가, 깊고 오래된 존재가 고동현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죄송합니다.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끌렸군요. 고동현 씨에게 중요한 용무가 있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낮고 중후했다. 나직이 울리는 듯한 그의 음성은 이 차가운 공간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설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저도 모르게 정신을 차렸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류진입니다.”

류진. 설아는 그의 이름을 되뇌며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사진 속 남자와 실물은 놀랍도록 흡사했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의 흔적이 거의 없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듯했다.

“고동현 씨와는 어떤 관계시죠?”

“개인적인 거래 관계였습니다. 최근 제 소장품에 대해 조언을 받을 일이 있었죠.”

그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잘 짜인 대본처럼, 감정이 배제된 완벽한 문장이었다. 설아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고동현에게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 설아는 류진의 눈에서 아주 희미한, 붉은빛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류진은 정중하게 물었지만, 그의 말투는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설아는 그의 비정상적인 침착함에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그를 구금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아뇨. 협조 감사합니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류진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몸을 돌렸다. 어둠이 드리운 복도를 지나 통제선을 넘어설 때, 창문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그의 짙은 머리카락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설아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찌릿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희미하게 퍼져나가는, 그 달콤하고도 차가운 금속성 냄새. 현장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류진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설아는 한참 동안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그의 모습이 자꾸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이성과는 달리, 그녀의 심장은 이상하게도 거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그저 꿈속의 잔상이었을까?

수사 회의는 난항을 겪었다. 고동현의 사인은 ‘장기 부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잠정 결론 났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혈액 검사에서는 어떤 독극물도 검출되지 않았다. 몸 안에 있는 수분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건조함, 그리고 세포 단위에서부터 느껴지는 기묘한 ‘공허함’.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팀장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고동현 씨 주변인들을 조사했는데, 류진이라는 사람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요. 서류상으로는 분명 존재하는 인물인데, 그 어떤 사회 관계망에서도 깊이 있는 연결 고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몇십 년 전에 나타난 듯한 느낌이랄까요.”

후배 형사의 보고에 설아는 직감했다. 역시나. 그녀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류진. 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그녀는 사무실에 남아 밤늦도록 관련 자료들을 뒤졌다. 유사한 미해결 사건들을 다시 펼쳤다. 수십 년 전, 백여 년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망한 시체들이 발견된 기록이 있었다. 모두 기이한 ‘장기 부전’ 혹은 ‘심장 마비’로 처리되었고, 어떤 사건은 도시 괴담으로, 어떤 사건은 동물에 의한 소행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 혹은 그 전후로 발생했다는 것.

설아는 인터넷을 헤매다 고서적 데이터베이스에서 우연히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밤의 춤꾼’, ‘영혼을 탐하는 자’, ‘붉은 달의 맹세’. 고대 동양 설화에 나올 법한 키워드들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인간의 심장을 매혹하며, 가장 붉은 사랑을 탐한다. 허나 그 사랑은 금지된, 저주받은 맹세이니, 영원한 고통을 약속할지어다.”

오래된 필체로 쓰인 문구는 섬뜩하도록 고동현의 죽음과 겹쳐졌다. 인간의 생명 에너지를 취하고, 영혼을 공허하게 만들며, 달빛 아래에서 활동하는 존재들. 그들은 인간들 사이에 스며들어 살아가며, 그 누구도 그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매혹된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처한다는 경고.

설아의 머릿속에 류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고요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 비정상적인 침착함,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던 달콤하고도 차가운 금속성 냄새. 그의 존재는 이 모든 설화 속 존재들과 겹쳐졌다.

불현듯 찾아온 진실의 조각들이 설아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러나 동시에,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류진에게로 이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녀의 본능은 그를 탐하고 있었다. 마치, 금지된 과일에 매혹된 것처럼.

설아는 서둘러 그의 행방을 추적했다. 류진의 거주지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오래된 한옥이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숨어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밤은 깊었고, 보름달은 핏빛으로 물든 듯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옥의 높고 낡은 담장 너머로 스며드는 달빛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차가운 금속성 냄새가 더욱 짙게 풍겨왔다. 설아는 조심스럽게 대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요한 정원 한가운데, 류진이 서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또 다른 인영이 그와 마주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설아가 이해할 수 없는 고대의 언어였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류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의 눈동자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뜩이는 것을 설아는 똑똑히 보았다.

망토를 두른 인영이 손가락으로 한옥의 안채를 가리켰다. 류진의 얼굴에 순식간에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분노, 슬픔, 그리고 체념. 그는 망토 속 존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톱이 길고 날카롭게 변하는 것을 설아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은 정원 한쪽에 시들어가는 붉은 장미 덤불을 향했다. 그의 손끝이 닿는 순간, 시들었던 장미는 거짓말처럼 생생한 핏빛으로 피어났다. 활짝 만개한 꽃잎들은 잠시 후, 마치 시간이 가속된 듯 바스러져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생명을 주고 다시 거두어가는, 초월적인 힘의 현현이었다.

설아는 저도 모르게 옅은 숨을 들이켰다. 작은 소리였지만,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류진의 고개가 번개처럼 설아를 향해 돌아갔다. 붉은 빛을 내뿜던 그의 눈동자는 설아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맹수 같은 날카로움과 동시에,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온 듯한 깊은 슬픔이 공존했다. 그 안에는 그녀를 향한 경고와 동시에, 알 수 없는 강렬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토를 두른 존재 역시 자취를 감췄다.

설아는 홀로 남아, 심장이 격렬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류진이 서 있던 자리, 장미 덤불이 재가 된 곳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흙바닥 위에는 핏빛 장미 한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그의 손이 닿았던 장미 덤불에서 유일하게 남은, 시들지 않은 꽃잎이었다. 그녀는 꽃잎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류진. 대체 당신은… 무엇인 거죠?

차갑고도 달콤한 냄새가 여전히 그녀의 코끝을 맴돌았다. 보름달은 여전히 붉게 타오르며, 그녀의 손에 들린 핏빛 꽃잎을 비추고 있었다. 금지된 사랑의 서막을 알리는 듯,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