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돌려줄 그림자
천정에서 드리워진 차가운 백색광이 텅 빈 방 안을 무심히 비추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는 강화유리 탁자 위에는 오직 검은색 노트북 한 대만이 놓여 있었고, 그 화면 속에서 이현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마치 5년 전, 모든 것을 앗아가기 직전의 그날처럼.
강지훈은 화면 속 현우의 사진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선량한 사업가, 혁신적인 기업의 수장으로 언론에 비치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미소 아래에 도사린 독(毒)을 아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자신뿐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 독에 완전히 중독되어 현우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이들이 너무나 많을 뿐.
“흐음.”
낮게 깔린 쉰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지훈의 손가락이 노트북 트랙패드 위를 스치자, 화면 속 현우의 사진이 사라지고 복잡한 도표와 그래프가 나타났다. 기업의 재무 상태, 주가 변동, 해외 투자 유치 현황…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된 숫자들의 향연이었다. 현우가 쌓아 올린 견고한 왕국은, 겉으로 보기엔 티끌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훈의 눈에는 그 견고함 사이사이에 깃든 미세한 균열들이 보였다. 5년. 그 모든 것을 되돌려 놓기 위해 피를 말리며 기다려온 시간이었다. 폐허가 된 삶의 잔해 속에서 그는 자신을 단련시켰다. 이현우가 자신을 짓밟고 일어서는 동안, 지훈은 바닥 밑 가장 깊은 곳에서 칼날을 갈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 현우. 네가 딛고 선 그 땅은, 사실 네가 직접 파놓은 함정일 뿐이니까.”
지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손끝에서 마우스 클릭음이 작게 울렸다. 틱, 틱. 화면 속 한 지점이 확대되고, 또 다른 파일이 열렸다. 익명으로 전송된 한 통의 이메일. 그 안에는 현우의 가장 가까운 오른팔, 김민준 실장의 개인 정보와 최근 그가 겪고 있는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가 담겨 있었다.
“시작은 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지훈은 한때 현우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꿈을 키우던 자신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시절. 그랬던 현우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락으로 떨어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족의 명예, 연인의 신뢰, 그리고 젊은 날의 모든 희망까지. 산산조각 난 파편 위에서 지훈은 홀로 생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감정이라는 사치를 버리고,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기계처럼.
한때 따스했던 손길은 이제 타인의 목을 조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한때 타인을 향해 웃던 눈은 이제 오직 파괴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현우가 그의 등 뒤에 꽂아 넣은 칼날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훈이라는 존재 자체를 산산이 부수고 새로운 형태로 재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지훈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탁자 한편에 놓인 작은 은색 액자를 집어 들었다. 낡은 사진 속에는 웃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현우, 지훈, 그리고 지훈의 여동생, 유진. 유진의 해맑은 미소가 현우의 옆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랬지. 현우는 단순히 지훈의 모든 것을 앗아간 것뿐만이 아니었다. 유진의 꿈까지 짓밟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지훈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유진은 현우의 뒤를 쫓아갔다. 오빠를 버린 그 사람을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날 이후, 유진은 더 이상 예전의 유진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공허했고, 말수는 극도로 줄어들었다. 지훈은 유진의 망가진 모습을 보며, 복수의 불꽃을 더욱 활활 태웠다.
액자를 내려놓으며 지훈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민준 실장님, 당신이 바로 그 첫 번째 도미노가 될 겁니다.”
그는 화면 속 김민준 실장의 재정 보고서에서 중요한 항목 몇 개를 클릭했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익명의 계정으로 몇 개의 파일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는, 미세한 균열. 하지만 일단 균열이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으리라. 마치 오랜 세월 지하수를 맞은 거대한 바위가 작은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듯이.
지훈은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빛나고 있었다. 그 불빛들 중 어디쯤에 현우가 있을까. 아니, 그는 지금 지훈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거미줄의 한가운데서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먹이가 될지도 모른 채, 환희에 차 웃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될 거야. 네가 지었던 그 웃음, 내가 고스란히 돌려줄 테니까.”
지훈의 눈빛은 마치 심연의 바닥을 응시하는 듯 차가웠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작은 스위치를 만지고 있었다. 그 스위치를 누르면, 모든 것이 시작될 터였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이 거대한 복수의 파도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
차갑고도 고요한 밤이었다. 완벽한 사냥을 위한, 완벽한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