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학원.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유서 깊은 마도학원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엘리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고고한 비룡의 기상이 서린 듯 솟아오른 웅장한 누각들, 영기가 충만한 연무장,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학도들의 영술 연습 광경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진호는 그런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그는 비록 청룡학원에 발을 들였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입학한 수재들과는 달리 간신히 문턱을 넘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기 운용 시험에서 실수를 연발한 끝에, 재시험 과제로 ‘밤그림자초’ 세 뿌리를 구해오라는 지령을 받았다. 밤그림자초는 어둠 속에서 영기를 흡수하며 자라나는 희귀한 약초로, 학원 내의 약초원에선 자라지 않는 종류였다.
“젠장, 밤그림자초라니… 이걸 어디서 구하라고.”
진호는 학원 외곽, 오래된 서고 뒤편의 허름한 창고 벽에 기대어 투덜거렸다. 밤그림자초는 주로 영기가 탁하고 음습한 곳에서 발견되는데, 학원 내에서는 그런 곳이 극히 드물었다. 학원 뒤편의 흑영산 깊은 곳에 가야 겨우 몇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 말까였다. 그러나 산은 일반 학도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뭐라도 단서가 있지 않을까…”
진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서가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먼지 쌓인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밤그림자초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오래된 지리서나 약초학 서적이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책장 사이를 헤매던 진호의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낡은 마도구 상자였다. 상자를 걷어차듯 옆으로 밀어내자, 바닥의 큼지막한 석판 하나가 삐걱거렸다. 이상한 느낌에 진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석판을 자세히 살폈다. 다른 석판들과는 달리, 이 석판은 가장자리에 희미한 균열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새어 나왔다.
“이게 뭐지?”
진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영등을 내려놓고, 석판의 틈새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감쌌다. 그는 조심스럽게 석판을 밀어보았다. 처음에는 꼼짝도 않던 석판이, 이내 깊은 탄식을 내뱉는 듯한 소리를 내며 스르륵 옆으로 밀려났다.
그 아래는 어둠이었다. 아찔한 심연이 펼쳐진 듯한 검은 구멍. 코를 찌르는 습하고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역겨우리만치 달콤한 핏빛 향기. 진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학원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그는 망설였다.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밤그림자초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함께,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잠깐만… 이 아래라면, 밤그림자초가 있을지도 몰라.”
진호는 영등의 영력을 강화해 빛을 밝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어둠 속으로 내려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은 영겁의 세월이 흐른 듯 닳아 있었고, 벽면에는 이끼와 곰팡이가 두텁게 앉아 있었다. 내려갈수록 한기는 더욱 강해졌고, 공기는 폐부를 짓누르는 듯 무거워졌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심장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냉기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은 끊어지고, 진호의 발은 넓은 통로에 닿았다. 통로의 벽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두운 돌벽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문양들은 흡사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경고인지, 아니면 봉인 의식의 일부인지 알 수 없었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호는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의 끝에는 거대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역시 기괴한 문양으로 가득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쇠사슬이 여러 겹으로 얽혀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진호는 문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 너머로, 희미하게 진동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철문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 툭… 툭…’
마치 뼈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 혹은 굳은살이 단단한 벽을 긁는 듯한 소리. 불규칙하면서도 섬뜩한 리듬이었다. 진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쾅거려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용기를 내어 철문 틈새로 영등의 빛을 비춰보았다. 좁은 틈새 너머로 보이는 것은, 더욱 깊은 어둠과, 그 어둠 속에 아련하게 빛나는 수많은 붉은 점들이었다. 마치 수십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붉은 점들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거대한 형체였다.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살아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나무뿌리처럼 거대하고 뒤틀려 있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촉수들이 어둠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촉수 사이사이에는 이따금 날카로운 뼈 같은 돌기들이 솟아 있었고, 붉은 점들은 그 돌기 끝에서 깜빡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움직이는 형체 주변으로, 희미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둡고 탁한 연기. 그 연기는 거대한 촉수들을 감싸며 위로, 위로 솟아올랐다. 마치… 이 학원의 영기 흐름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진호의 머릿속에서 섬뜩한 가설이 스쳤다.
이 학원의 영기… 이 아래에 봉인된 ‘무언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이 학원은, 이 끔찍한 존재의 힘을 빨아들여 번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끼이이익…’
갑자기 철문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붉은 점들이 일제히 진호를 향해 고정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듯한 끔찍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갈망이 정신을 잠식하는 듯했다. 진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때, 저 멀리 통로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진호는 이성을 부여잡았다. 들키면 안 된다. 절대로. 그는 철문에서 재빨리 손을 떼고, 영등의 불빛을 최소화하며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미친 듯이 울렸다. 폐가 찢어지는 듯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 창고로 돌아온 진호는, 석판을 다시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자로 입구를 가리고, 그대로 창고를 뛰쳐나왔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학원 연무장에 도착해서야 진호는 겨우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공포와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청룡학원 지하. 그곳에는 단순히 밤그림자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금기는, 어쩌면 이 위대한 학원의 뿌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진호의 온몸을 옥죄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평화롭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호에게 그 빛은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어둠 속에 갇힌 희미한 등불 같았다. 언제든 꺼질 수 있는, 위태로운 빛.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체… 저건… 뭐였지?”
그리고 그 질문은, 그의 평범했던 학원 생활을 영원히 바꿔놓을 서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