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도시의 핏줄과 같은 고가도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네오 서울’의 심장부, 그곳에 자리한 새벽별 연구소는 최첨단 기술의 성지이자 비밀의 요새였다. 층고가 아득한 연구소의 최상층,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제1 실험실’ 앞에서 김형사는 초조하게 이마를 긁었다. 비상등의 붉은 불빛이 스산하게 깜빡이며 거대한 금속 문을 비췄다.

“이건, 도대체… 불가능합니다.”

김형사의 목소리는 메마른 사막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짙은 회색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늘어뜨린 앞머리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을 숨긴 남자, 류은하였다. 네오 서울 최고의,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천재 탐정.

“불가능이라… 김형사, 자네는 아직도 이 세상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믿나?”

류은하의 말은 비아냥거림처럼 들렸다. 김형사는 억울한 듯 대꾸했다.

“하지만 은하 씨! 이 방은 생체 인식 잠금장치로만 열리고 닫히는 곳입니다. 벽은 초고밀도 복합강으로 되어 있어 외부에서 침입은 물론이고, 미세한 균열 하나 만들 수도 없어요. 환기구는 머리카락 하나 빠져나갈 틈도 없고요. 박사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태산 박사님이 안에서 죽어 있었어요. 심장에 정확히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작은 구멍이 뚫린 채로 말입니다!”

류은하는 대꾸 없이 연구실 문을 바라봤다. 경비대원 몇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중대한 사건에 온갖 국장들이 들끓었겠지만, 이번 사건은 그들의 상식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밀실’ 살인이었기에, 모두가 류은하라는 이단아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정보는?”

류은하가 짧게 물었다. 김형사는 서둘러 태블릿을 내밀었다.

“피해자는 강태산 박사입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메카닉 공학의 선구자이자,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 메카 ‘타이탄’의 개발 총책임자였죠. 사망 시각은 오늘 새벽 3시경으로 추정됩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예리한 고속 관통체에 의한 심장 파열… 어떠한 발사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무하고, CCTV는 박사님이 홀로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만 기록했습니다.”

류은하는 태블릿을 대충 훑어보더니, 문득 고개를 들었다.

“타이탄.”

그의 눈이 문득 빛났다.

“자, 그럼 이 불가사의한 방으로 들어가 보실까.”

생체 인식을 통해 잠금장치가 해제되자, 육중한 강철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듯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모두의 시선은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존재에게로 향했다. 미완성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위압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타이탄’이었다. 유려한 은색 합금으로 빚어진 그 몸체는 거대한 기둥처럼 서서 천장에 닿을 듯했다.

그리고 그 발치, 메카의 제어 패널에 기댄 채 쓰러져 있는 강태산 박사의 시신이 있었다. 흰색 연구복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심장 부위에는 지름 1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구멍이 선명했다.

김형사는 시신 주변에 설치된 폴리스 라인을 가리켰다.

“발자국도, 지문도, 외부 물질도 전혀 없습니다. 박사님 외에는 누구도 이 방에 없었어요. CCTV는 방 내부를 실시간으로 촬영했지만, 박사님이 쓰러지는 순간 외에는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유령 살인입니다.”

류은하는 시신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타이탄’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흡사 스캐너처럼 메카의 광택 나는 표면 위를 훑었다. 한참을 그렇게 돌다가, 그는 거대한 메카의 왼쪽 다리 부근에서 멈춰 섰다. 무릎 관절 부근의 매끄러운 은색 표면에 아주 미세한, 정말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스크래치가 있었다. 거의 빛에 반사되어야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

“이건 뭔가요?” 류은하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가리켰다.

김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타이탄은 아직 시제품이라 완벽하게 마감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부품 교체 과정에서 생긴 흠집일 수도 있고요.”

“흠… 그렇군.”

류은하는 다시 시선은 ‘타이탄’의 머리 부분, 즉 조종석이 있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메카의 외형은 매끈했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패널과 연결 부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한참을 그곳을 응시했다. 마치 메카가 그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형사, 이 ‘타이탄’은 외부 정비 인력 없이도 자체 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아, 네! 박사님의 특허 기술이죠. ‘블랙맘바’라는 이름의 초소형 정비 드론들을 메카 내부에 탑재하여, 외부의 도움 없이도 긴급 수리나 부품 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현재는 아직 초기 단계라…”

“블랙맘바라…” 류은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블랙맘바는 살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김형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닙니다! 오직 정비와 수리를 위한 초정밀 로봇 팔과 초음파 커터가 전부입니다. 공격용으로는 사용 불가능합니다.”

“흐음… 불가능이라.” 류은하는 다시 한번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킬킬거렸다.

그는 다시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강 박사의 심장을 관통한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박사의 흰색 연구복 소매 끝을 집어 들었다. 소매 끝자락에는 미세한 그을음과 함께, 마치 초고온으로 절단된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형사, 강 박사의 평소 루틴은 어땠습니까? 특히 심야 작업 시에는?”

“보통 새벽에는 혼자 남아 연구에 몰두하셨습니다. 외부 연락은 일절 받지 않으셨고, 주로 타이탄의 시스템 점검이나 새로운 모듈 개발에 집중하셨다고 합니다.”

류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마침내 모두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아까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이, 강철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김형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류은하를 바라봤다.

“방 안에 있었다고요? 하지만…!”

“네, 김형사. 그 누구도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인은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타이탄’의 도움으로 말이죠.”

류은하의 말에, 거대한 메카 ‘타이탄’이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강태산 박사는 이 방에서 ‘블랙맘바’ 드론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김형사가 소리쳤다. “블랙맘바는 공격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박사님이 직접 조종하지 않는 한, 어떻게 살인이 가능하죠?”

“물론, 박사님이 직접 자신을 살해했을 리는 없겠죠. 하지만 ‘블랙맘바’는 박사님의 손에 죽었습니다. 정확히는 박사님을 대신하여, 박사님이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겁니다.”

류은하의 설명은 마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듯했다.

“강태산 박사는 오늘 새벽, 평소처럼 ‘타이탄’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어 패널에 연결된 채, ‘블랙맘바’ 드론의 성능을 테스트 중이었을 겁니다. ‘블랙맘바’는 고도로 정밀한 움직임과 초음파 커터를 가지고 있죠. 그 초음파 커터는 단순히 부품을 자르는 용도뿐 아니라, 특정 주파수를 통해 생체 조직을 미세하게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위력을 조절한다면, 완벽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죠. 그리고 박사님 연구복 소매 끝의 미세한 그을음, 이것은 ‘블랙맘바’의 초음파 커터가 작동하며 발생한 열에 의한 것입니다.”

류은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강 박사는 아마 ‘블랙맘바’의 원격 조종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치명적인 보안 허점을 발견했을 겁니다. 혹은, 누군가가 이미 그 허점을 이용해 ‘블랙맘바’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누군가’는 강 박사를 제거하기 위해 ‘블랙맘바’를 이용한 겁니다. 그 ‘누군가’는 이 연구소 내부에 있거나, 혹은 연구소의 네트워크에 접근 가능한 외부인이겠죠.”

김형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어떻게 ‘블랙맘바’가 박사님을 공격하고, 다시 ‘타이탄’ 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모든 과정은 CCTV에 찍혔을 텐데!”

“바로 그겁니다, 김형사. ‘블랙맘바’는 ‘타이탄’의 내부 정비 드론입니다. 평소에는 ‘타이탄’의 몸체 내부에 완벽하게 도킹되어 있죠. 이 방에 강 박사 외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이 ‘타이탄’의 시스템에 접근 가능한 자입니다.”

류은하는 손가락으로 ‘타이탄’의 무릎 부근에 있던 미세한 스크래치를 다시 가리켰다.

“이 스크래치. 이것은 ‘블랙맘바’가 ‘타이탄’의 몸체에서 발진하거나 도킹할 때 생긴 흔적입니다. 평소에는 완벽하게 감춰져 있을 테지만, 급하게 작동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접촉이 발생했을 겁니다. 범인은 강 박사가 ‘타이탄’ 시스템을 점검하는 동안, 원격으로 ‘블랙맘바’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아주 작은 드론이니, 강 박사는 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은 그저 드론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류은하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블랙맘바는 소리 없이 ‘타이탄’의 몸체에서 빠져나와 강 박사의 등 뒤로 다가갔을 겁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초정밀 타격으로 박사님의 심장을 꿰뚫었죠. 그 모든 과정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박사님이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쓰러지는 순간, ‘블랙맘바’는 다시 ‘타이탄’의 몸체 속으로 완벽하게 도킹되어 들어갔습니다. CCTV에는 박사님이 쓰러지는 모습만 포착되었을 뿐, 살해 도구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겠죠. 왜냐하면, 살해 도구는 애초에 이 방 안에 있었고, 살인을 저지른 후 완벽히 은폐되었으니까요.”

정적이 흘렀다. 김형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타이탄’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메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서 있었다.

“블랙맘바의 데이터 로그를 확인해야 합니다. 강 박사가 사망하기 직전, ‘블랙맘바’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누구로부터 명령을 받았는지. 그리고 ‘타이탄’의 메인 시스템 로그를 철저히 조사하면, 외부에서 침투한 흔적, 혹은 내부에서 악의적으로 접근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박사님을 살해한 ‘블랙맘바’는 지금도 저 ‘타이탄’ 안에 잠들어 있을 겁니다. 다만, 그를 조종한 진정한 살인마는 지금 어딘가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죠.”

류은하는 트렌치코트 깃을 다시 세우며 연구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뒤로, 거대한 메카 ‘타이탄’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침묵은 단순한 기계의 것이 아니었다. 한 천재의 살인을 은폐한, 차가운 살인 도구의 침묵이었다. 김형사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류은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천재 탐정의 뇌리 속에서는, 이미 다음 단계의 추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기술의 진보 속에서, 인간의 악의는 더욱 교묘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은하는 그 악의의 틈새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