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삭막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지가 부스러진 시멘트 가루와 뒤섞여 폐허가 된 도시의 허파 속을 파고들었다. 희뿌연 하늘 아래, 앙상한 철근만이 뼈대처럼 남은 고층 빌딩들이 저승의 문지기처럼 솟아 있었다. 그 그림자 아래를, 유리(柔璃)는 묵묵히 걸었다. 낡은 방한 점퍼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였다.

축축한 신발 밑창이 깨진 유리 조각과 금 간 아스팔트 위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익숙한 소음이었지만, 유리는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세계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었다. 식량이 바닥난 지 사흘째. 마지막 남은 비상 식량 캔을 어제 동생에게 먹였다. 오늘은 반드시 뭔가를 찾아야 했다.

도착한 곳은 한때 거대한 쇼핑몰이었을 잔해였다. 층층이 무너져 내린 건물 사이로 빗물이 고여 썩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어쩌면 아직 쓸 만한 통조림이나 의약품, 하다못해 버틸 수 있는 자재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후우…”

유리는 굳게 닫힌 입술 새로 희미한 숨을 내쉬었다. 코끝으로 스치는 곰팡이 냄새, 퀴퀴한 흙냄새, 그리고… 이질적인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위험 신호였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이 저절로 허리춤에 찬 녹슨 단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붕괴된 건물 내부로 발을 들였다. 천장에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한때 화려했을 옷가지들은 찢겨 너덜거리고, 진열대의 마네킹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채 기괴하게 쓰러져 있었다. 유리는 망가진 에스컬레이터를 조심스럽게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식료품 코너는 분명 위층에 있었다.

두 층을 그렇게 올라갔을까.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이 저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는 금속 캔들을 포착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생존본능이 아우성쳤다.

“저기…!”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천장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회색빛 잔해가 우르르 쏟아져 내리며 거대한 형체가 유리의 눈앞에 떨어졌다. 전신에 시커먼 촉수가 돋아난, 짐승이라기엔 너무나 기괴한 존재. ‘잔해수’였다. 한때 인간이었을지도 모르는, 혹은 어떤 동물의 변이체였을지도 모르는, 세상이 망가진 후 나타난 존재들. 녀석의 찢어진 입에서는 지독한 악취와 함께 초록색 침이 흘러내렸다. 여섯 개의 눈은 붉게 빛나며 유리를 꿰뚫어 보았다.

유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잔해수의 거대한 팔이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하며 바닥을 파헤쳤다. 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젠장…!”

도망칠까? 아니. 저 캔들. 저것들을 놓칠 수는 없었다. 동생이 굶고 있었다.

유리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날붙이에 희미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저 거대한 잔해수를 이 단검 하나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 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몸을 감싸던 낡은 점퍼가 빛의 입자들로 부서지며 사라졌다. 이윽고 순백의 옷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길었던 머리카락은 은빛으로 빛나며 허리까지 쏟아져 내렸고, 이마에는 푸른색 보석이 박힌 티아라가 솟아났다. 차가웠던 단검은 눈부신 은빛의 지팡이로 변모했다. 모든 과정은 찰나에 불과했다. 이 세계가 그녀에게 부여한, 혹은 저주한 힘. ‘마법소녀’의 힘이었다.

“크으으…”

변이한 유리의 모습을 본 잔해수가 으르렁거리며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거대한 촉수들이 채찍처럼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리는 몸을 가볍게 틀어 공격을 피했다. 민첩성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찮은 것들 주제에…”

그녀의 목소리가 맑고 단단하게 울렸다. 은빛 지팡이를 든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자, 지팡이 끝에서 푸른색 마법진이 섬광처럼 피어났다. 마법진이 그려진 곳으로 촉수 하나가 날아들자,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빛의 방패!”

하지만 잔해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놈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촉수들이 솟아나더니, 그녀의 시야 밖에서부터 그녀를 감싸려 들었다. 유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힘은 강력하지만, 유지하는 데 막대한 마력을 소모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했다.

“흩어져라, 섬광!”

유리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티아라의 보석이 밝게 빛났다. 지팡이 끝에서 응축된 빛의 파편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나가 잔해수의 전신을 강타했다. 키이이이익! 잔해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시커먼 살덩이가 빛의 파편에 맞아 타들어가며 지독한 연기를 내뿜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리는 지팡이를 휘둘러 몸을 회전시켰다.

“심판의 빛!”

최고의 공격 마법이었다. 지팡이 끝에 거대한 푸른색 구체가 형성되었다.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어둠 속에서, 구체만이 맹렬하게 빛났다. 유리가 구체를 향해 지팡이를 내리찍자, 구체가 잔해수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콰아앙!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쇼핑몰의 잔해가 흔들렸다. 거대한 구체가 잔해수의 몸에 명중하자, 녀석의 몸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파편과 검붉은 피를 흩뿌렸다. 끔찍한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잔해수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 났다.

유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감쌌던 빛의 장막이 사라지고, 순백의 옷은 다시 낡은 점퍼로 돌아왔다. 이마의 티아라와 은빛 지팡이도 사라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젠장… 너무 많이 썼어…”

지팡이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후유증은 언제나 혹독했다. 손끝이 저릿했고, 전신이 한대 맞은 것처럼 쑤셨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녀의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력 소모가 극에 달하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유리는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잔해수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끔찍한 피웅덩이와 시커먼 재만이 남아 있었다. 그 너머로, 그녀가 목숨 걸고 지켜낸 통조림 캔들이 보였다. 몇 개가 잔해수의 공격에 찌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었다.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캔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힘겹게 캔들을 주워 담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은 오늘 밤 굶지 않을 것이다.

그때였다.

멀리서, 어둠에 잠긴 쇼핑몰의 더 깊은 곳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낮은 대화 소리.

“…이쪽이다. 방금 큰 소리가 났어.”
“…변이체 녀석들이 이렇게 큰 소리를 내진 않지. 분명히 ‘그것’이다.”
“…움직여라. 놓치지 마.”

유리의 심장이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잔해수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
다른 생존자들.
그녀는 황급히 주워 담던 캔을 품에 끌어안고 몸을 숨겼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위험하다. 저들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단어.

‘마법소녀 사냥꾼.’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다. 오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