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검은 진흙이 발목을 삼키는 소름 끼치는 물웅덩이 속을 지우는 터벅터벅 걸었다. 한때는 번화했던 도시의 잔해는 이제 거대한 존재의 뼈대처럼 을씨년스럽게 솟아 있었다. 핏빛 노을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지우는 어깨에 멘 낡은 배낭을 고쳐 매고 녹슨 철근이 튀어나온 건물 잔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젠장,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갈라진 입술 새로 터져 나온 건 한숨이었다. 며칠째 식량은커녕 마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뱃속에서는 굶주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벽을 긁어대는 듯했다.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끈적한 이끼처럼 건물 표면을 뒤덮은 알 수 없는 푸른 균사체와, 가끔 진흙 속에서 들려오는 축축한 소음뿐이었다.

지우는 벽에 기대어 지도를 펼쳤다. 종잇장은 습기에 절어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이곳은 한때 ‘신시가지’라고 불리던 곳.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괴하게 느껴지는 폐허였다.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오래된 지하철역을 노리고 있었다. 지상보다는 오염이 덜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거기, 뭐가 있지?”

머리 위에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혹은 숨 쉬는 듯한 소리였다. 지우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낡은 쇠지렛대를 움켜쥐었다. 손잡이에는 닳고 닳은 천 조각이 감겨 있었다. 이 쇠지렛대는 수많은 밤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놈들이 보낸 괴물들과 싸우고, 잠긴 문을 부수고, 때로는 살아있는 마지막 증거처럼 묵직하게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 노을 너머, 구름은 기묘한 패턴으로 흐느적거렸다. 마치 거대한 액체가 뒤섞이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잠깐. 무언가 거대한 형태가 꿈틀거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겨진, 셀 수 없는 촉수와 눈알을 가진 무언가가.

지우는 재빨리 시선을 내렸다. 보면 안 된다. 그게 언제나 그녀의 첫 번째 규칙이었다. 그 존재들의 형태를 온전히 담아내려 할수록, 영혼이 부식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미 많은 것을 보았고, 그 대가로 잃은 것도 많았다.

어둠이 짙어지자, 공기 중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역 입구는 예상보다 더 깊숙한 곳에 묻혀 있었다. 무너진 빌딩의 잔해와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게 다 누구 짓이야, 대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대답해 줄 존재는 없었다. 대재앙 이후, 인간은 사라지고 미지의 존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전염병과 기상이변이었다. 그 다음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운석들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 운석들 틈에서 기어 나온 것들이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와 능력을 가진 것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고, 육체를 뒤틀었다.

지우는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낡은 배터리 팩에서 간신히 빛을 뿜어내는 손전등은 초라했지만,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먼지투성이의 잔해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새를 찾아냈다. 몸을 낮춰 기어가자,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대부분 무너져 있었다. 대신 그녀는 옆쪽으로 파고든 굴을 발견했다. 아마 다른 생존자들이 만들었을 법한 굴이었다. 희미한 희망이 스쳤다. 혹시 이곳에 다른 생존자가 있을까?

굴은 예상외로 길었다. 미끄러운 진흙과 축축한 돌벽을 더듬으며 한참을 기어가자, 드디어 공간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희미한 불빛이 저 멀리서 아른거렸다.

“누구… 있나?”

지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말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이 샘솟는 동시에, 공포가 엄습했다. 이 세상의 다른 생존자들은, 대부분 살아있는 시체보다 더 끔찍한 존재였다. 그들은 인간성을 잃었거나, 놈들의 노예가 되었거나, 아예 다른 존재로 변모한 채였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불빛은 점점 선명해졌다. 낡은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화학 물질이 타오르는 듯한, 붉고 어두운 빛이었다. 그 빛 아래, 몇몇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봐! 거기, 누구야!”

지우는 쇠지렛대를 꽉 쥐고 외쳤다. 그림자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인간이었다. 넝마 조각을 걸치고 있었지만, 분명 인간의 형태였다.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눈은 깊은 절망과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르고 쇠약해 보였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새로운 얼굴이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꽤나 운이 좋았거나… 아니면 제 발로 지옥을 찾아온 거겠지.”

남자의 목소리는 거칠고 메말라 있었다. 지우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당신들은… 누구죠?”

“이곳의 쓰레기들이지. 버려진 것들. 세상의 끝에서 썩어가는 벌레들.” 남자가 픽 하고 웃었다. 그의 웃음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철이었다. 이제는 그냥 ‘칼날’이라고 불린다.”

“칼날…?”

“그래. 이 낡은 칼날 하나로 여기까지 살아남았거든.” 그는 허리춤에 찬 녹슨 단도를 가리켰다. 단도는 닳고 닳아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다른 생존자들도 다가왔다. 그들의 수는 대략 다섯 명 정도였다. 모두 지우와 비슷한 차림새였다. 피폐하고 지쳐 있었지만, 어딘가 섬뜩한 광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뭘 찾아서 여기까지 온 거야, 아가씨?” 칼날이 물었다. 그의 눈은 지우의 배낭을 훑고 있었다.

“식량과 물… 그리고 잠시 머물 곳.”

“하! 식량과 물?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져 버린 지 오래다. 그저 찌꺼기들만 남았을 뿐이지. 그리고 머물 곳이라… 이곳도 언젠가는 놈들이 찾아낼 거야. 아니, 이미 찾아냈을 수도 있고.”

칼날의 말에 다른 생존자들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체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놈들이라니, 뭘 말하는 거죠?” 지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하늘을 봐라. 밤마다 귀를 기울여 봐라. 네 꿈속에 기어들어 오는 녀석들을 봐라. 우리가 ‘놈들’이라고 부르는 건, 그 모든 것들이지. 우리를 잠식하고, 세계를 망가뜨린 것들.” 칼날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낡은 콘크리트 천장에는 알 수 없는 무늬가 거미줄처럼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갇혔다. 놈들이 지상에서 활개 치는 동안,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뿐.”

그들은 지우에게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더 던지고는, 그녀를 그룹에 받아들였다. 생존자 그룹에 합류한다는 것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보호와 동시에 위험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며칠 밤낮을 그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은 지하철역의 폐기물과 잔해 속에서 쥐나 곤충, 혹은 더 기괴한 것들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물은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오염된 빗물을 받아 필터링해서 마셨다.

지우는 그들의 방식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식량과 물을 내놓았고, 대신 그들의 경험과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꽤 오랫동안 이 지하에서 생존해 온 듯했다. 이 주변의 지형과 위험 요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들의 광기가 점점 자신을 잠식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헛소리를 중얼거렸고, 텅 빈 공간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였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저기… 저쪽에 있는 건 뭔가요?” 지우는 어느 날, 천장 한쪽에 새겨진 기이한 그림들을 가리켰다. 손전등 빛이 닿자, 푸르스름한 이끼 같은 것이 그림을 덮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어딘가 비틀리고 왜곡되어 있었다. 팔다리는 너무 길고 가늘었고, 얼굴에는 눈 대신 뻥 뚫린 구멍이 있었다.

“아, 저건 ‘기억 그림’이야.” 칼날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전에 여기서 살던 녀석들이 그린 거지. 놈들에게 사로잡히기 전에, 자신들이 본 것을 남겨 놓은 거야.”

“놈들에게 사로잡혔다고요?”

“그래. 저 그림 속의 존재들은 말이지… 그림이 아니야. 한때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 하지만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저렇게 변해 버리는 거야. 영혼을 빼앗기고, 육체는 저들의 하수인이 되지. 저 그림은 일종의 경고이자, 기록인 셈이지.”

지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그림들을 너무 오랫동안 응시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그림들이 마치 자신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았다.

며칠 뒤, 지하철역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끈적한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점액 덩어리가 기어오는 것 같은 소리. 칼날과 다른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렸다.

“놈들이야… 놈들이 여기까지 온 거야.” 칼날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은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들이 지내던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지우는 어둠 속에서 쇠지렛대를 꽉 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놈들의 기척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는 끈적한 소리뿐만 아니라, 희미한 속삭임도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모든 논리와 이성을 파괴하는, 고대의 언어였다. 그 속삭임은 그녀의 뇌를 직접 긁어대는 듯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낯선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거대한 바다 속에서 잠든 도시, 셀 수 없는 별들 사이에서 춤추는 거대한 존재들, 그리고 인간의 왜소함과 무의미함.

“안 돼… 보면 안 돼…!” 지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 환상들이 자신의 정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으려 했다.

“서둘러! 저쪽 터널이야!” 칼날이 소리쳤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부서진 잔해에 부딪히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제는 끈적한 소리뿐 아니라, 축축한 육중한 발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터널 끝에는 막다른 벽이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갇혔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생존자들이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체념과 절망이 그들의 눈을 채웠다.

“망했어… 이제 끝이야…” 한 생존자가 울부짖었다.

지우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촉수와 수많은 눈알, 그리고 끈적이는 체액으로 뒤덮인 끔찍한 존재였다. 그 형태는 너무나 비정상적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될 것 같았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과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었다. 수십 개의 팔다리가 뒤틀려 있었고, 얼굴은 찢겨진 입과 셀 수 없는 송곳니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거대한 눈이 박혀 있었다. 그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를 담고 있는 듯했다.

“젠장… 저게 대체…” 지우는 무릎을 꿇을 뻔했다. 이성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숨이 턱 막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저 끔찍한 존재와, 그 앞에 선 자신의 나약함뿐인 것 같았다.

“도망쳐봤자 소용없어… 우리의 영혼은 이미 놈들의 것이다…” 칼날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포는 광기로 변해 그들의 정신을 잠식했다.

하지만 지우는 달랐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미친 듯이 주변을 탐색했다. 살 방법.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방법.

그녀의 시선이 천장 한쪽에 꽂혔다. 낡은 환풍구 덮개가 보였다. 위로 통하는 유일한 길. 저곳이라면…!

“칼날! 저기! 환풍구!” 지우는 소리쳤다.

칼날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놈들의 영향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놈들이 왔어… 놈들이… 나를…”

“정신 차려! 살고 싶으면 움직여야 해!” 지우는 칼날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저 너머로 가버린 듯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거대한 존재는 한 발짝, 한 발짝 육중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발걸음마다 지하철역 전체가 흔들렸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린내와 끈적한 습기가 그녀의 폐를 압박했다.

지우는 쇠지렛대를 휘둘러 환풍구 덮개를 내려쳤다. 낡은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지하철역을 뒤흔들었다. 두 번, 세 번. 마침내 덮개가 떨어져 나갔다. 좁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미안하다…”

지우는 칼날을 뒤로한 채 환풍구 안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녀는 미친 듯이 기어 올라갔다. 뒤에서는 놈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과 절망, 그리고 파괴의 정수였다. 그 소리는 그녀의 귓속을 뚫고 뇌 속으로 파고들어 이성을 마비시켰다.

환풍구는 예상보다 길었다. 그녀는 팔과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좁은 통로에 몸이 끼어버릴 것 같았지만, 죽음의 공포가 그녀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고 오직 전진만을 명령했다.

얼마나 기어갔을까. 통로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바깥이었다. 지상이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통로를 빠져나오자, 그녀는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뒤집자,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보였다. 핏빛 노을은 사라지고, 대신 밤하늘이 그녀를 맞이했다. 수많은 별들이 흩뿌려진 평화로운 밤하늘…이 아니었다.

별들 사이로, 거대한 균열이 보였다. 칠흑 같은 공간에 뚫린 균열. 그리고 그 균열 너머로, 셀 수 없는 눈알들이 반짝였다. 그녀는 또다시 그 존재들을 봐버린 것이다.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아악…!”

지우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모습들은 너무나 강렬하고 끔찍해서, 그녀의 시신경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그 균열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이 그녀의 뇌를 파고들었다. 그것은 이름 없는 신들의 언어였다.

그녀는 울부짖었다.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었다. 자신의 정신이 한 조각, 한 조각 찢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은 희미해졌지만, 그 잔재는 영원히 그녀의 영혼에 새겨졌다. 지우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정신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아직은.

밤하늘의 균열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것을 이전처럼 공포스럽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그녀는 그저 그 존재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본래 그랬던 것처럼.

지우는 일어섰다. 그녀의 몸은 지치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녀는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그녀는 쇠지렛대를 다시 꽉 쥐었다. 녹슨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현실로 그녀를 이끌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끔찍하고 황폐한 세상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놈들에게서 도망치고, 굶주림과 광기에 맞서 싸우며, 자신이라는 존재의 조각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낡은 배낭이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남은 짐이자,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붉고 불길한 여명이 동쪽 하늘을 물들였다. 지우는 그 빛을 등지고, 또다시 미지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가, 이내 어둠 속에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