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정적을 찢는 건 오로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뿐이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전력 불안정 탓에 보일러는 이미 사망한 지 오래였고, 식어버린 아파트 내부는 마치 거대한 냉동고처럼 지영을 옥죄고 있었다. 창문은 두꺼운 박스와 테이프로 빈틈없이 막아두었지만, 여전히 바깥세상은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히는 썩은 냄새와, 가끔씩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것들’은 도처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트 복도를 배회하고 있을 터였다.
지영은 낡은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소파에 몸을 웅크렸다.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은 깜빡이며 ‘서비스 없음’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런 식이었다. 처음엔 전화가 끊기고, 다음엔 문자 메시지가 불통이 되고, 이젠 아예 먹통이었다.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가 끊어진 지영은 고립감 속에서 천천히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춥네.”
작게 중얼거렸지만, 텅 빈 거실은 그녀의 목소리를 집어삼킬 뿐이었다. 텔레비전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만 토해냈다. 가끔씩 희미하게 잡히는 채널에서는 “감염”, “봉쇄”, “탈출 불가” 같은 단어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뉴스는 공포가 아닌, 그저 배경 소음일 뿐이었다. 진짜 공포는, 이곳, 이 아파트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스스스…*
찬 공기가 발목을 감쌌다. 지영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분명 모든 창문과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는데, 이 서늘한 기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고작 몇 시간 전만 해도 벽에 걸려있던 가족사진 액자가 지금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액자를 다시 똑바로 걸었다. 스트레스성 환각이거나, 이 오래된 아파트의 노화 현상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녁 식사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딱딱하게 굳은 빵 조각을 씹으며 지영은 부엌에 서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보았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저장해 둔 생수는 겨우 한 병.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끼이익… 쿵!*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심장이 발끝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몸을 획 돌리자, 방금 전까지 닫혀있던 싱크대 위쪽 찬장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쾅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닫혔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손에 든 빵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구… 누구 있어요?”
갈라지는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부엌 한구석에서 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쨍그랑!* 지영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봐요! 장난치지 마세요!”
그러나 컵이 깨진 곳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찬장 문을 열고 닫거나, 컵을 떨어트릴 만한 그 어떤 것도. 오직, 공기만이 차갑게 맴돌고 있었다. 지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빵 조각을 주웠다. 이성을 유지해야 했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거나, 심한 스트레스 탓에 그녀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리라.
밤이 깊어질수록 아파트의 기이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지영은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밖에서는 가끔 ‘그것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이제 더 이상 도움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때, 방문이 *끼이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숨을 멈췄다. 분명 잠그고 잤는데.
“누구세요?”
어둠 속에 가려진 문틈 너머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아니, 착시가 아니었다. 서늘한 기운이 방안으로 스며들었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거실 쪽에서 터벅터벅, 마치 무언가를 질질 끄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터벅.
점점 더 가까워졌다. 지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고막을 울렸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아니기를. 제발 그냥 꿈이기를.
그때, 침대 발치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숨을 참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용기를 내어 이불 틈새로 눈을 떴다.
침대 발치 바닥에는 그녀의 오래된 테디베어가 엎어져 있었다. 분명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그리고 그 옆에는, 붉은색 크레용으로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그림이 놓여 있었다. 종이의 여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혼자… 아냐.’
지영은 순간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림 속에는 지영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려져 있었고, 그 뒤로는 검은 형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크레용은 그녀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이사를 올 때부터 살던 흔적들.
“젠장…!”
그녀는 벌떡 일어나 그림을 움켜쥐고 구겨버렸다. 그리고는 침실 구석으로 달려가 옷장을 열고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옷가지들을 헤집었다.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녀를 지켜줄 유일한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쿵! 쿵! 쿵!
옷장 안쪽 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옷장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췄다. 벽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마치, 벽 너머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듯한. 아니, 벽을 부수고 나오려는 듯한.
*스르륵.*
옷장 문이 그녀의 손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열렸다. 지영은 뒷걸음질 쳤다. 공포에 질린 눈은 벽을 응시했다. 벽 한가운데, 석고보드 위에 검은 얼룩이 점점 넓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룩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게 뭐야…!”
벽면의 얼룩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형태는 이내 핏기 없는 얼굴의 형상이 되었다. 텅 빈 눈동자는 지영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와.”**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지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얼굴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벽에서 튀어나오려는 듯 돌출되기 시작했다.
그때, 거실 쪽에서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현관문을 부술 듯이 격렬하게.
지영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벽에서 튀어나오려는 섬뜩한 존재, 그리고 현관문을 격렬하게 두드리는 바깥의 존재.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아파트는 이제, 이중의 지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철컥.*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문이 서서히, 아주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밖의 존재는 과연 ‘그것들’일까? 아니면, 이 아파트 속에서 지영을 괴롭히던 존재가 스스로 문을 열어젖힌 것일까?
지영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등 뒤에서는 벽 속의 얼굴이 더욱 크게 벌린 입으로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새까만 어둠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