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16화

새벽 4시. 미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심장은 마치 쿵쾅거리는 북처럼 갈비뼈 안에서 미친 듯이 울렸다. 꿈이었다. 아니, 악몽이었다. 최근 들어 매일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 끔찍한 잔상들. 눈을 감으면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손쓸 수 없이 추락하는 음표들이, 그리고 냉기 어린 관객들의 시선이 생생하게 재현되곤 했다. 깨어나면 현실과 뒤섞여 숨통을 조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꿈을 파는 상점’에서 백선생을 만나 ‘꿈의 노래’를 산 이후, 그녀는 잃었던 목소리를 되찾았다. 아니, 되찾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과거의 미숙했던 자신을 뛰어넘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완벽한 음색과 가창력을 얻었다. 그녀의 노래는 공기 중에 떠도는 작은 먼지조차도 음표로 만들어내는 듯 섬세했고, 이내 거대한 파도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휘몰아쳤다. 세상은 그녀에게 열광했고, 미나는 꿈속에서 그리던 무대 위에 섰다. 박수갈채와 환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마침내 진정한 가수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균열이었다. 어느 날 문득, 중요한 순간에 가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엔 음정이 살짝 흔들렸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이제는 공연 도중 목소리가 제멋대로 갈라지고, 음이탈이 나는 일이 잦아졌다. 완벽했던 ‘꿈의 노래’는 삐걱거리는 기계처럼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호는 의아함으로, 이내 실망과 싸늘한 침묵으로 변해갔다.

미나는 공포에 질렸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다시 예전처럼 아무것도 부를 수 없었던 암흑기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때보다 더 참혹했다. 한 번 맛본 빛을 다시 빼앗기는 고통은 죽음보다 더했다. 그녀는 결국 마지막 희망을 찾아 새벽의 냉기를 뚫고 발걸음을 옮겼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그곳, 기묘한 골목길 끝에 숨어 있는 ‘꿈을 파는 상점’으로.

낯선 그림자

상점의 문은 항상 그랬듯 소리 없이 열렸다. 맑은 풍경 소리 대신, 삭막한 침묵이 미나를 맞았다. 내부는 여전히 어둠침침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활력이 감돌았다. 오래된 가구들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은 먼지 쌓인 진열장의 수많은 유리병을 비췄고,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꿈 조각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였다. 붉은색의 열정, 푸른색의 평온, 노란색의 환희… 그리고 그녀가 샀던 ‘꿈의 노래’는 어떤 색이었을까.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오랜만이군, 미나 아가씨.”

어둠 속에서 백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존재감이 희미한 듯 강렬한 그의 모습이 진열장 뒤편에서 서서히 나타났다. 그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미나에게 내밀었다. 찻잔에서는 알 수 없는 풀 향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군.”

백선생은 미나의 핼쑥한 얼굴과 떨리는 손을 한눈에 알아보는 듯했다. 미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선생님… 제 노래가… 망가졌어요. 다시는 부를 수 없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백선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천천히 돌렸다.

“망가졌다니. 꿈이란 본래 완벽하지 않아. 아니, 완벽해 보이는 것일 뿐이지. 모든 꿈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야.”

“그림자라니요? 제가 샀던 건… 완벽한 노래였어요!”

미나는 거의 울부짖듯이 말했다. 백선생은 고개를 젓더니, 진열장 안의 한 유리병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어두운 검붉은 빛깔의 꿈 조각이 유독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가씨가 가져갔던 ‘꿈의 노래’는 아가씨가 잃어버렸던 그 목소리의 씨앗을 찾아서 심어준 것에 불과했어. 하지만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햇빛과 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지. 외부의 힘으로 강제로 키워낸 열매는 결국 허약해지기 마련이야.”

“제 노력이라면… 저는 매일 연습했어요! 피나는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요!”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야. 아가씨는 ‘꿈의 노래’가 대신해 준 완벽함에 기대어 정작 자신의 진짜 목소리가 내는 불완전한 소리를 외면했어.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정한 개성이 피어나는 법인데 말이지. 어쩌면… 아가씨의 무의식이 이 가짜 완벽함을 거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백선생의 말은 차가웠지만, 미나의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진실 같았다. 그녀는 그동안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 꿈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완벽한 목소리’를 얻는 것에 집착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꿈의 노래’가 준 재능에 안주하며,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대로 다시 모든 걸 잃어야 하나요?”

미나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짙게 깔렸다. 백선생은 다시 한 번 진열장 안의 어두운 꿈 조각을 바라보았다.

“두 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진정한 자신을 되찾기 위해 불완전한 목소리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길겠지만, 그 끝에는 온전한 아가씨만의 노래가 있을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미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백선생이 가리켰던 검붉은 꿈 조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하나는… 더 강력한 꿈을 사는 거지. 아가씨의 ‘노래에 대한 갈망’에서 추출해낸 거야. 이 꿈은 그 어떤 불완전함도 허락지 않아. 완벽함을 향한 아가씨의 열망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외부의 힘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완벽함을 선사할 거야. 하지만… 이 꿈을 택하면 아가씨의 모든 불완전한 면모, 즉 아가씨의 본질적인 부분까지도 지워버릴 수도 있어. 진정으로 ‘미나’라는 사람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지.”

백선생의 마지막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미나는 경악했다. 완벽한 노래를 얻기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그녀의 마음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검붉은 꿈 조각은 미나의 눈앞에서 유혹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완벽한 무대, 환호하는 군중,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신의 모습을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뒤편에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만 같았다.

미나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심장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하나의 선택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모든 것을 걸고 얻으려 했던 꿈이, 이제는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