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밤, 별들이 수런거리는 시간. 익숙한 스튜디오의 공기 속에서 수아는 헤드폰을 고쳐 썼다. 희미한 불빛 아래 아날로그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지난 방송에서 마주했던 익명의 메시지들이 그녀의 마음 한편에 아련한 물음표를 남긴 채였다. 오늘 밤은 또 어떤 이야기가 별빛을 타고 그녀에게 가닿을까.
차분하게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수아는 손을 뻗어 쌓여있는 사연 봉투 중 가장 위에 놓인 것을 집어 들었다. 별 스티커가 붙어있는 낡은 봉투였다. ‘별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온 사연이었다.
별바람의 사연
수아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인쇄된 글씨가 아닌, 정성껏 손으로 쓴 글자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있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에 DJ 수아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 방송을 오래도록 듣고 있는 한 청취자입니다. 오늘 밤, 제가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볼까 합니다.”
수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문단을 읽었다. “아주 어렸을 적, 저에게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매일 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며 작은 베란다에 앉아 약속을 하곤 했죠. ‘가장 빛나는 별을 찾으면, 그 별이 우리의 암호가 될 거야.’라고요. 우리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하지만 아무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작은 별 하나를 우리의 ‘잃어버린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언젠가 그 별을 함께 찾아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죠.”
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잃어버린 별’. 그 단어가 그녀의 심장을 세게 울렸다. 잊고 지냈던 기억의 파편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읽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는 저의 곁을 떠났어요. 아무 말도 없이, 어떤 예고도 없이. 저는 한참을 밤하늘의 ‘잃어버린 별’을 바라보며 그 친구를 불렀습니다. 어쩌면 그 별이 친구를 데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했죠. 시간이 흐르고, 저는 그 약속을 잊은 채 살아가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별이 빛나는 밤이 올 때마다, 저는 여전히 그 친구와 ‘잃어버린 별’을 찾던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립니다.”
수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손에 든 사연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이어진 문장들이 그녀의 숨을 멎게 했다.
“그 친구와 저만이 알던 비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잃어버린 별’ 지도에는 유난히 길게 꼬리를 그리는 별똥별 하나가 그려져 있었죠. 그리고 그 별똥별 옆에는 우리가 함께 지어낸 주문처럼 ‘다시 만나면, 이 별빛 아래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혹시 이 사연을 듣고 계신다면, 저에게 작은 신호를 보내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아직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요.”
잊혀진 약속의 조각들
마이크 앞에서 수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잃어버린 별’. ‘긴 꼬리를 그리는 별똥별 지도’. ‘다시 만나면, 이 별빛 아래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기억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있는 파편들이었다.
그녀에게도 ‘잃어버린 별’이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 준이와 함께 만든 그들만의 별. 여섯 살 어린 준이는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수아는 그런 준이를 위해 밤마다 별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느 날 준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며 수아에게 내밀었다. 조악하지만 세밀하게 별들이 그려진 종이 한 귀퉁이에는 유난히 꼬리가 긴 별똥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잃어버린 별, 준이 누나’ 라고 적혀 있었다.
“누나, 우리 나중에 어른 되면 이 별 찾아서 우주여행 가자!”
“그럼 그때 이 별 아래서 준이 하고 누나가 서로 이름 불러주는 거야?”
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었다. 그 웃음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준이는 수아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수아는 그날 이후로 한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잃어버린 별’은 그녀에게 가장 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 그 약속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이제, 이 사연이 그 잃어버린 약속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별바람. 혹시… 혹시 준이가 살아있다는 걸까? 아니면 준이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일까? 하지만 사연 속의 디테일은 너무나 정확했다. 그 꼬리 긴 별똥별. 그들만의 주문.
수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방송 중이었다.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곡을 선택했다. 준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다. 아련한 멜로디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애써 숨을 고르며 마음을 정리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메시지였다. 준이로부터, 혹은 준이와 연결된 누군가로부터 온 간절한 신호.
별빛 아래의 작은 신호
음악이 끝나고, 수아는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청취자, 특히 ‘별바람’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별바람님께서 보내주신 사연,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가슴 저릿한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수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용기를 냈다. “저는 ‘잃어버린 별’이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우리 시야에서 멀어졌을 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가장 적절한 순간에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요. 어쩌면… 오늘 밤이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마이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별바람님, 만약 그 별똥별이 그려진 지도를 기억하고 계시다면, 그 지도의 가장자리에 아주 작게, 우리가 함께 만든 또 다른 별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그 별을 ‘희망의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별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의 증표였죠.”
수아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 이야기는 준이와 그녀만이 알던 또 하나의 비밀이었다. ‘별바람’이 만약 준이라면, 혹은 준이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이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별 아래에는 이런 글귀도 함께 있었죠. ‘어떤 길을 걷든, 이 밤의 별빛이 너를 인도할 거야.’ 제가 지금 드리는 이 말이, 당신에게 그 별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그 희망의 별을 잊지 말고, 이 밤의 별빛을 따라 와주세요. 제가 여기,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아는 마지막 멘트를 끝내고 마이크를 내렸다. 스튜디오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녀는 헤드폰을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가, 과연 ‘별바람’에게 가닿을까? 그리고 그 ‘별바람’은 정말…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일까?
창밖을 보니 어둠 속에서 별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아는 그 별들 사이 어딘가에, 자신과 준이가 함께 이름 붙였던 ‘잃어버린 별’과 ‘희망의 별’이 빛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준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얼어붙게 할 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오늘 밤, 별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고, 동시에 너무나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