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40화

밤은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깊은 침묵만을 남겼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낡은 주택가 골목, 현우는 낡은 검은색 세단 안에 몸을 숨긴 채 한 곳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축축한 공기가 옷 속으로 스며들어 살을 에이는 듯했다. 벌써 다섯 시간째였다. 십오 년의 세월에 비하면 이깟 다섯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긴장감은 그의 심장을 집어삼킬 듯 쿵쾅거렸다.

눈앞의 2층짜리 단독 주택은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했다. 회색빛 담벼락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낡은 대문 옆에는 이름 없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알고 있었다. 이 조용한 집 안에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단 하나의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제 저녁,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한 장의 사진. 낡은 종이 위에 흐릿하게 인쇄된 그 사진 속에는,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적힌 짧은 문구. ‘서윤 씨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서윤. 그녀가 새롭게 부여받은 이름, 혹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이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쫓아왔던 그림자였다. 몇 번이고 잡힐 듯 다가섰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던 환상이었다. 때로는 그녀의 흔적을 좇다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했고, 때로는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희미해진 시절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었다.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이자, 살아갈 이유를 되찾기 위해서.

잃어버린 시간의 그림자

현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맑고 깊은 눈동자, 조그만 웃음에도 한껏 휘어지던 눈꼬리, 그리고 언제나 따뜻했던 손길. 벚꽃잎이 흩날리던 고등학교 뒷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널 좋아해”라고 속삭이던 순간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그 순간 이후로, 그의 세상은 온통 그녀로 채워졌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다. 잔인한 운명은 이유도 설명 없이 그녀를 그의 곁에서 빼앗아 갔다. 그리고 십오 년. 벚꽃은 몇 번이나 다시 피고 졌을까. 그의 마음속 벚꽃은 여전히 그날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였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자,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조용히 열렸다. 현우의 심장이 발작하듯 뛰었다. 낡은 패딩을 입은 노인이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골목 끝으로 향하는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노인이 그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미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인은 인적이 드문 허름한 슈퍼마켓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쭈뼛거리며 슈퍼 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슈퍼 문이 열리고, 노인은 종이봉투를 받아 들고 나왔다.

현우는 노인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차를 세웠다. 노인은 갑자기 나타난 차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현우는 차에서 내려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마주한 노인의 얼굴은 창백했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요.” 현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면의 떨림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노인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현우를 올려다봤다. “누구신데 이 밤중에 이러시오? 난 아는 사람 없소.”

“김영감님 맞으시죠? 이 근처에서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현우는 노인이 슈퍼에서 “김영감”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들었다. 그의 말투는 더 이상 형사의 그것이 아니었다. 절박한 한 남자의 간청에 가까웠다.

노인은 움찔하더니 시선을 회피했다. “이름을 어떻게… 내가 김씨인 건 맞지만, 당신이 날 어떻게 아시오?”

“어르신, 오래 전부터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이 집에 살고 있는 서윤 씨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현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낱같은 희망과 깊은 두려움이 함께 묻어났다. 그녀가 정말 이 집에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헛된 희망일까?

노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서윤이라니… 그런 사람은 없어. 난 혼자 살고 있소.” 노인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그의 떨리는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르신, 저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입니다. 어르신께서 혹시 그녀를 보호하고 계신다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녀를 해치려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주십시오.” 현우는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애원했다. 십오 년간 굳게 닫혔던 그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려는 듯했다.

결정의 순간

현우의 절박함에 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주변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설마…” 노인의 시선이 현우의 눈을 꿰뚫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시간 숨겨왔던 비밀을 들킨 사람의 당혹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아십니까? 제발,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현우는 노인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노인은 뒷걸음질 쳤다.

“알아. 알지만… 당신이 만나는 건 안 돼.” 노인의 목소리는 더 낮고 단호해졌다.

“왜요? 왜 만날 수 없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현우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드디어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왔는데, 또 다른 벽이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노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아. 아니, 평범하게 살 수 없는 몸이 됐어. 병이 깊어. 아무도 만나지 못해. 특히 당신은 안 돼.”

“병이라뇨? 무슨 병입니까? 제가… 제가 어떻게든 도울 수 있습니다!” 현우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병이라는 말에 그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 찼다.

노인은 현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에는 뼈마디가 튀어나와 있었고, 그립은 의외로 강했다. “당신이 누군지 알아. 당신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 서윤이 너 때문에 얼마나 아파했는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기억 속에서 지우려 발버둥쳤는지… 너를 만나면, 그녀는 모든 게 무너질 거야.”

현우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 때문에 아파했다는 사실, 기억에서 지우려 했다는 사실이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서윤이는… 지금도 아주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 간신히 평정을 찾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어. 그런데 당신이 나타나면… 그 평정이 깨질 거야. 그녀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라. 아니,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

“알아보지 못한다고요? 그게 무슨… 기억을 잃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현우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첫사랑이 눈앞에 있는데,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상상했던 어떤 절망보다도 깊었다.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잃었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네. 당신과의 추억도… 그녀에게는 칼날 같은 아픔이었을 거야. 내가 그녀를 돌보는 이유는… 더 이상 그녀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현우는 휘청거렸다. 그의 눈앞의 집이 갑자기 거대한 절벽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다다랐다고 생각한 절벽 끝에서, 그는 또다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아프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이 그녀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도 있다.

노인은 다시 현우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경계심이 아닌, 진심 어린 걱정으로 가득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젊은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찾아 헤맸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녀를 위해… 잠시 기다려야 해.”

바로 그때였다. 닫혀 있던 집 2층 창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아주 작게,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그 불빛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곳에… 그녀가 있다. 그의 눈에 뜨거운 액체가 차올랐다. 십오 년 만에 듣는 그녀의 숨소리, 혹은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의 소리.

“내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우는 거의 흐느끼듯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이제 겨우 그녀의 존재에 닿았지만, 그 존재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알던 그 지수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첫사랑은 이제 자신을 잃어버린 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상처 입은 영혼이 되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노인은 현우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이더니, 조용히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닫히는 대문 소리는 그의 심장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현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2층 창문은 다시 어둠 속에 잠겼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더 깊고 가혹한 미궁 속으로 던져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그가 그녀를 기억하는 한, 그의 잃어버린 첫사랑은 여전히 그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