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64화

깊어가는 밤, 꿈을 파는 상점의 고풍스러운 시계는 자정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낡은 나무 바닥은 낮 동안의 발걸음 소리를 잃은 채 고요했고, 진열장의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꿈의 조각들이 마치 살아있는 별처럼 반짝였다. 상점 주인 지훈은 카운터에 기대어 붓꽃 향이 나는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오래된 서책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정신은 아득히 먼 과거의 어느 꿈 조각을 헤매고 있었다.

“사장님, 아직 안 주무세요?”

은하가 상점 뒷문에서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지훈은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아서. 오래된 기록들을 좀 보고 있었어.”

“혹시 서진 씨 때문에요?”

은하의 물음에 지훈은 말없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서진, 오래전 지훈의 상점에서 ‘잃어버린 사랑과의 재회’라는 꿈을 구매했던 여인이었다. 당시 그녀의 슬픔은 너무나 깊어, 지훈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 꿈은 섬세하고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위험한 환상이었다.

“그때는 그 꿈이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생각했어. 상실의 고통이 너무나 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위안이 그녀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어.”

지훈의 목소리에는 깊은 후회가 배어 있었다. 최근 서진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진이 현실과의 접점을 잃고, 꿈속의 세상에 너무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방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그녀의 대화는 늘 꿈속의 연인과 나누었던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꿈이 그녀의 삶을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꿈을 구매하는 건 항상 본인의 선택이잖아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지훈의 상점이 꿈을 사고파는 곳이지, 그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곳은 아니라고 배웠었다.

“그렇지. 하지만 어떤 꿈은 너무나 강력해서, 선택의 영역을 넘어설 때가 있어. 특히 서진 씨처럼 상처 입은 영혼에게는 더더욱. 나는 그녀에게 그 꿈의 그림자를 분명히 경고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녀의 절망 앞에서 나는… 비겁했지.”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결연해 보였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바로잡아야 해.”

***

다음 날 아침, 지훈은 서진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지훈은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후에야 문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깊은 꿈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몽롱했다. 하지만 그녀는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아마도 꿈속의 행복이 그녀의 외모를 찬란하게 가꾸었을 것이다.

“지훈 씨… 이곳까지 왜 오셨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꿈처럼 부드럽고 나른했다.

“서진 씨, 당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요.”

서진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지훈을 안으로 들였다. 집 안은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모든 창문이 닫혀 있었고, 은은한 아로마 향과 함께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앨범들이 가득했다. 아마도 꿈속의 풍경을 기록한 것들일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 꿈은… 더없이 행복해요. 매일 밤 그 사람과 만나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 영원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훈 씨가 주신 이 꿈 덕분에 저는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녀의 눈빛은 행복으로 가득했지만, 그 행복은 현실의 빛을 거부하는 듯 위태로웠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진 씨, 그 꿈은 당신에게 큰 위안을 주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꿈은 없어요. 모든 꿈에는 끝이 있고, 어떤 꿈은 현실을 잠식해버리기도 합니다.”

서진의 얼굴에서 행복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무슨 소리예요? 제 꿈은 영원해요. 그 사람과의 약속이에요. 제가 그 꿈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지훈 씨는 잘 아시잖아요.”

“그 꿈은 당신의 과거를 아름답게 가꾸어주었지만, 동시에 당신의 미래를 앗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 않고 있어요. 햇빛을 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이건 당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충분히 행복해요! 이보다 더 완벽한 삶은 없어요. 그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요.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어요. 지훈 씨가 제 행복을 질투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가진 이 꿈을 회수하러 온 건가요?” 서진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신경질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몽롱함에서 벗어나 분노로 이글거렸다.

지훈은 침착하게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서진 씨, 그 꿈은 당신의 기억을 조금씩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진짜 추억과 꿈속의 환상이 뒤섞여 당신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어요. 당신의 진짜 웃음, 진짜 슬픔, 진짜 사랑이… 꿈의 그림자 아래에서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품에서 작은 은색 병을 꺼냈다. 투명한 병 속에는 진주처럼 영롱한 액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은 ‘깨어나는 이슬’이었다. 꿈을 완전히 깨트리지는 않지만, 꿈의 환상으로부터 잠시 현실의 빛을 비추게 하는 귀한 꿈의 파편이었다.

“이것은 당신의 꿈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잠시 그 꿈의 그림자 밖으로 나와 현실의 빛을 보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진짜 서진임을 다시 기억하게 해줄 거예요.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서진은 병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야… 난 이대로가 좋아. 제발, 내 행복을 빼앗지 마세요!”

그녀는 지훈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얼굴에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제 위태로운 슬픔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지훈은 그녀의 눈빛 속에서, 꿈속의 연인을 잃었을 때와 비슷한 깊은 고통을 보았다. 그녀는 꿈속의 행복을 잃는 것을 또 다른 상실로 여기는 듯했다.

“서진 씨, 그 꿈속의 당신은 온전한 당신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가족, 친구들, 그들을 기억하세요. 그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당신의 삶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는 병을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것은 선택입니다. 당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준비가 되었을 때, 마셔주세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지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진의 찢어지는 듯한 눈빛을 뒤로하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닫히는 문틈으로 마지막까지 보았던 그녀의 얼굴은 슬픔과 혼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지훈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아팠다.

***

상점으로 돌아온 지훈은 말없이 카운터에 앉았다. 은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었어요, 사장님?”

“모르겠어. 그녀는 지금 자신이 갇힌 꿈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어. 내가 놓아둔 ‘깨어나는 이슬’을 마실지, 아니면 영원히 그 꿈속에 머무를지… 이젠 그녀의 선택에 달렸어.”

지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꿈을 파는 상점이지만, 때로는 꿈이 가장 잔인한 상인이 되기도 해. 꿈은 행복을 주지만, 현실을 앗아가고, 기억을 왜곡하며, 심지어 영혼마저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은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지훈과 비슷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었다. 상점 진열장의 꿈 조각들이 여전히 반짝였다. 아름답고 유혹적인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훈은 차가 식은 찻잔을 들고, 멀리 텅 빈 거리 너머를 응시했다. 서진의 선택이, 부디 현실을 향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